열왕기상 4장

성경
열왕기상

평화의 가치

열왕기상 4장

한 가정의 가장이 벌어오는 수입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액면가로만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이면의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면의 가치는 바로 땀의 가치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땀 흘려서 가족의 안전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수고하여 얻은 수입이 바로 눈에 보이는 액면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한 가정의 가장이 다른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을 짓밟고 혹은 그것을 가로채서 가져온 수입이라면, 어릴 때는 몰랐는데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서 아버지가 가져온 수입의 정체를 자식들이 알게 되었다면 그때 자녀들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차라리 우리가 가난하고 힘들었다면 그 당시는 고통스러웠더라도 시간이 지나서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는 오히려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감사했을 텐데, 나도 함께 공범이 된 것 같은 그런 불편한 마음, 그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손에 잡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그 이면에 있는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한 법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는 평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외면적인 평화라고 해서 다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평화의 출처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지방 통치 체계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 나라를 정치적으로 또 지방적으로 행정적으로 정리정돈합니다.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되 각기 일 년에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하였으니" (왕상 4:7)

이스라엘은 원래 열두 지파에게 하나님께서 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 요셉 지파의 두 지파를 나누어서 열두 지파가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땅을 나누어서 열두 지파가 함께 공존하는 정치체계였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난 이후에 각 지파별로 왕과 왕실을 위해서 양식을 공급하게 했습니다. 즉 각 지파가 1년에 한 달씩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지방 관리들이 임금님의 식탁을 책임지기 위해서 각 지방의 특산품을 진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윗 때는 이런 말을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솔로몬 때에 와서 지방에서 열두 지파가 1년에 한 달씩 돌아가며 조공을 바치고 왕과 왕실의 식탁을 책임진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불편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왕은 특수한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목자장이 되시고 왕은 목자가 되고 백성들은 양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구조는 왕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여타의 다른 나라 왕들과 똑같이 통치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백성들은 워낙 지금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이런 모습은 다른 나라의 왕들이 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외국의 다른 나라의 여러 나라 왕들이 조공을 바치기 때문에 이 나라는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 (왕상 4:21)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여러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자기 나라 12지파를 이런 식으로 통치하고 있습니다.

외면적 평화

그런데 백성들은 이런 것이 피부에 와닿지 않습니다. 워낙 다윗이 기틀을 튼튼히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왕상 4:24-25)

포도나무 아래, 무화과나무 아래는 번영을 상징하고 배부름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평안히 살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두 단어로 얘기하자면 평화와 평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치세가 행복했을 것입니다. 전쟁하지 않아도 되고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누리고 자기들이 노동한 일, 모든 것들을 왕에게 진상해도 괜찮은 시절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준 이 평화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그 평화가 정말 100% 하나님으로부터 온 평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자신할 수 없습니다.

타협의 대가

왜냐하면 이집트의 바로 왕과 혼인 관계를 맺고 그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주변 여러 나라들을 다 복속시켰지만 이집트는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강력한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잠재적 위협 세력이 될 수 있는 이집트와 혼인 관계를 맺고 바로의 사위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바로의 딸이 데리고 들어온 우상과 이집트의 제사장들, 그들이 살 공간을 열어주고 하나님의 땅,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가능하도록 법을 만들어주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한 평화입니다. 이로 인한 평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는 평화와 안정의 대가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만 영적으로 깨어 있었다면 이 평화가 그들에게 정말 좋은 평화, 행복한 평화, 하나님으로부터 온 평화라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누리는 평화가 아마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을 것입니다.

다윗이 그들에게 가져온 평화는 피 흘린 이후에 주는 평화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전쟁하라고 하면 전쟁해서 얻은 평화였습니다. 비록 때로는 고통도 따르고 아픔도 따르지만 그러나 명분 있는 평화였고 그들에게는 값진 평화였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때 그 평화는 세상의 악과 사탄과 손잡고 얻은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피 흘리고 나서 주신 평화입니다. 요한복음 19장과 20장에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 숨어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서 만나셨습니다. 제자들을 만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그 평강은 악과 손잡은 후의 평강이 아니라 피 흘리고 죽고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한 이후에 누리고 주시는 평강이고 평화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바로 예수님의 피값 위에 서 있는 평화라는 사실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평화의 진정한 가치를 분별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물질이 내 손에 오기까지의 과정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세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내가 누리는 평화의 진정한 내면적인 가치는 무엇인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편안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상의 악과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평화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훨씬 더 편안했을지 몰라도 다윗의 평화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치 있는 평화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달아보시고 지금도 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는 진정한 평화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의 악과 타협하지 말고 사탄의 권세와 손잡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믿음생활하시면서 때로는 투쟁할 것이 있으면 투쟁하고 세상의 악과 싸워야 될 것이 있으면 싸워서 진정한 평화의 주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준 평화가 악과 손잡은 후에 얻은 평화였음을 아셨습니다. 바로와 혼인 관계를 맺고 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허락한 후에 얻은 평화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평화는 전쟁하고 피 흘리고 하나님이 주신 명분 위에 세운 평화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강의 가치는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 위에 세운 평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평화 위에 서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터, 삶의 자리, 살아가는 모든 한 걸음 한 걸음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떳떳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손에 잡히는 물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벌어오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가장이 되고 떳떳한 부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값진 평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믿습니다.

icon
핵심 주제
icon
제목

날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