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희망
열왕기하 11장
역사를 통해 우리는 절대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목도해 왔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던 이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본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실로 충격적입니다. 우리 민족의 전래담에 등장하는 구미호가 온갖 계교를 부려도 마침내 그 정체가 폭로되듯이,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악은 언젠가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세상에 자신의 본질을 영원히 감출 수 있는 존재는 없으며, 그럴 만한 완전한 방법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선과 악의 경계는 더욱 분명해지며, 각자의 진정한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선한 본성을 지닌 이들에게는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지만, 악한 의도를 품은 자들은 그들의 세력이 미약할 때 교묘하게 정체를 감추며 때를 기다립니다.
악의 은밀한 계획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달랴는 정치적 혼맥을 통해 남유다 왕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을 남유다의 여호람 왕에게 시집보냄으로써 두 왕국 간의 정치적 연합을 공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여호람 왕의 왕비가 된 아달랴는 어머니 이세벨과는 달리 처음부터 자신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신중하게 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남편의 생전에는 그 어떤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북이스라엘 이세벨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달랴만큼은 그 어머니와는 다른 인물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여호람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조용한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은밀한 계획이나 진정한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시야가 왕위에 오른 지 단 일 년 만에 예후의 혁명으로 목숨을 잃게 되자, 아달랴는 비로소 오랫동안 감춰왔던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모두 멸절하였으나" (왕하 11:1)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즉각 일어나 왕족의 혈통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왕의 후손이란 바로 그녀 자신의 손자들을 의미합니다. 친혈육임에도 불구하고 아달랴는 아들의 서거를 애통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권력 장악의 기회로 삼아 자신의 후손까지 제거해버렸습니다.
물론 여성의 신분으로 직접 왕족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손으로 손자들을 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잔혹한 일을 수행한 것은 아마도 그녀의 지휘 하에 있던 군대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달랴가 결정적 순간에 군대를 동원하여 왕족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상당한 세월에 걸쳐 치밀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왔음을 의미합니다.
악은 이처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은밀하게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심각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남유다의 백성들은, 왕실은, 그리고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할 지도층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달랴가 북이스라엘에서 시집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까지 교묘하게 세력을 구축해 나가는 동안, 남유다의 지도층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에서 보호하다
그러나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니라" (왕하 11:2)
아하시야 왕의 후손 중 단 한 명이 살아남았습니다. 바로 요아스라는 어린 왕자였습니다. 그의 고모 여호세바가 이 아이를 구해냈습니다. 여호세바가 요아스의 고모라면, 그녀는 아달랴의 딸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자행하는 가운데서도, 여호세바는 용기 있게 조카 요아스를 구출했습니다. 아달랴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달랴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왕족을 전멸시켜 남유다에서 다윗 혈통을 완전히 끊어버렸다고 확신하며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을 보존하시고 돌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당신의 영원한 언약을 이어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6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왕하 11:3)
생존한 왕자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6년간 은신하며 성장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성전이야말로 그 시대에 가장 안전한 피난처였습니다. 아달랴는 바알 숭배에 심취한 우상 숭배자였기에 여호와의 성전은 그녀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성전은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고, 그녀는 그곳에 발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가장 확실한 안전지대가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유모와 함께 요아스는 보호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폐허된 성전, 먼지가 쌓여가는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의 소망이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중요한 진리는, 비록 성전이 황폐해지고 무너져가며 사람들이 떠나간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당신의 소망의 인물을 양육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 버려진 성전에서 조용히 미래의 왕 요아스를 길러내고 계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가 과거와 같지 않다는 말들을 자주 듣습니다. 한때 교회는 성도들로 가득 찼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교회학교에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아이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회 상황은 그때와는 사뭇 다릅니다. 이러한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는 종종 낙심하고 절망감에 빠지곤 하며, 앞으로 이삼십 년 후 이 땅의 교회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깊은 우려를 품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소망은 여전히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희망은 여전히 성전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전체의 교회와 교회학교를 마음으로 품고 기도하며, 지원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닙니다. 비록 황폐해져 가는 성전이고, 먼지가 내려앉은 성전일지라도,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요아스 한 아이를 향해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악이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에서도, 온 유다 백성들이 하나같이 바알 우상에게 절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성전에서 당신의 소망을 키워내고 계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희망은 성전이며, 하나님의 소망은 사람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해야 하고, 그곳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그곳에서 양육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오늘날에도 악의 세력은 여전히 생존해 있으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그들의 세력이 미약하여 정체를 완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 그들은 항상 기회를 엿보며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이 교회 내부로 침투하여 때를 기다리며 세력을 확장하는 것과 동일한 패턴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는 교회, 깨어있는 성도라면, 이단들이 활동할 여지를 주지 않도록 먼저 영적으로 철저히 무장하여 그들을 분별하고 차단하며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영적 전투를 벌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내면의 영적 영역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반대로 이를 방치한다면, 내면의 탐욕과 정욕이 자라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시간이 흘러갈수록 우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타락하게 됩니다. 사소한 불평불만이 결국 우리의 전 영혼을 지배하게 되고, 작은 탐심과 정욕이 마침내 우리의 육체까지 장악하게 됩니다. 따라서 악은 우리가 영적으로 날카롭게 깨어있을 때 초기 단계에서 아예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근본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아달랴의 활동을 장기간에 걸쳐 방관한 것은 분명히 그들의 책임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악의 교묘한 계략을 영적 분별력으로 간파해야 합니다. 아달랴의 경우에서 보듯이 악은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신중하게 때를 기다리며 세력을 확장합니다. 우리는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세한 악의 요소들을 간과하지 말고, 초기 단계에서부터 영적으로 깨어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사소한 불평이나 작은 욕심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전 인격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교회가 여전히 소망의 터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비록 교회가 과거와 같지 않고 교회학교가 침체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시선은 여전히 성전을 향해 있습니다. 황폐해진 성전, 먼지 쌓인 성전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소망인 요아스를 양육하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희망은 성전이며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보존 섭리를 굳건히 신뢰해야 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현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며 희망의 씨앗을 보존하십니다. 아달랴가 다윗 혈통을 근절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요아스를 통해 다윗 언약을 계속 이어가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과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지속되고 있음을 믿고, 성전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시고,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며, 이 시대에 하나님의 소망이 되는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