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개혁의 의지
열왕기하 12장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학업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어느 정도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집스러운 면이란 성격이 모나거나 악한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집요함과 성실함, 그리고 꾸준히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단순히 좋은 사람이기만 한 것은 중요한 일을 성취하는 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위기와 어려움이 닥칠 때 쉽게 좌절하고 지속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학문이든 운동이든 각자의 영역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룬 사람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자신의 일을 계획적으로 추진해온 이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개혁 역시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현재의 안락한 위치에 머물기를 원하며 변화를 회피하려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현 상황이 잘못되었으니 변화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면, 이성적으로는 동의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지금 상황이 문제입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나서고 개인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며, 특히 그 손실이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 사람들은 개혁을 향한 실질적 행동을 취하기 어려워합니다. 개혁에는 찬성하면서도 개혁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지 않고, 오히려 개혁을 저해하는 세력이 되어 장애물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에 개혁을 결심한 지도자의 확고한 의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집니다.
지속적 개혁 의지
소수든 다수든 조직적으로 개혁을 저해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굴복하지 않고 전략을 수정해가며 올바른 방향성을 견지한 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때로는 강경하게, 때로는 온건하게, 때로는 공론화를 통해, 때로는 압박을 가하면서도 필요한 개혁은 반드시 지속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남유다 요아스 왕이 바로 그러한 개혁 지도자의 전형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남유다로 시집와서도 결정적 순간까지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조용히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른 지 불과 1년 만에 사망하자, 그때 비로소 본색을 드러내며 자신의 손자들을 모조리 살해했습니다. 이제 천하가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요아스 한 사람을 성전에 보존하시고 그곳에서 성장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무려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 아래 요아스는 성전에서 양육되었습니다. 7년째 되는 해, 여호야다가 세력을 결집하여 마침내 아달랴를 제거하고 요아스를 정당한 왕으로 즉위시켰습니다.
요아스에게 성전은 모태와도 같은 신성한 공간이었습니다. 비록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고 찾는 이 없는 황폐한 성전이었으며, 백성들은 성전을 멸시하고 외면한 채 아달랴를 추종하여 바알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지만, 그에게 성전은 그 어떤 장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6세까지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은밀히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요아스가 왕위에 오른 후, 비록 7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분별력이 생기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착수한 사업이 바로 성전 복구 사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목격했던 성전의 참담한 모습이 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성전을 완전히 새롭게 복구하는 중대한 과업을 대제사장과 여러 서기관들, 그리고 책임 있는 관리들에게 위임했습니다.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왕하 12:4-5)
즉, 제사장들에게 조세 징수의 전권을 부여한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제사장들이 은화로 징수한 세금으로 성전의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도록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조세 징수권이라는 막강한 권한과 함께 성전 복구라는 중대한 책임을 동시에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아스가 왕위에 오른 지 23년이 지나도록 성전의 파손된 부분들이 전혀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왕하 12:6)
과연 무엇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을까요? 제사장들이야말로 성전의 핵심 인물들이 아니었습니까? 왕이 성전 복구를 위해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과 의무를 맡겼다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으로 환영했어야 할 사람들이었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요아스 즉위 후 2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추정됩니다. 첫째, 그들이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했을 가능성입니다. 백성들로부터 은화를 징수하면서도 그 자금을 자신들의 가정과 개인적 필요를 위해 사용하고, 정작 성전 복구에는 투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 성전을 굳이 복구하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대로 지내왔는데 특별한 불편함이 없으니, 굳이 왜 성전을 복구해야 하느냐는 안일한 사고였습니다. 그들은 정직하지 못했고, 떳떳하지 못했으며, 재정 관리에 있어서도 청렴하지 못했습니다.
강력한 개혁
제사장들이 조직적으로 이처럼 반발한다면 요아스의 개혁 동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대제사장은 자신을 성전에서 보호하며 양육해준 은인 여호야다였습니다.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모든 제사장들이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에서 과연 홀로 어떻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겠습니까? 동역자들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이러한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왕하 12:7-8)
제사장들을 엄중히 책망했습니다. 심지어 대제사장 여호야다까지 소환하여 질책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부여했던 모든 권한과 의무, 책임을 전면 박탈해버렸습니다. 은화 징수권도 박탈하고 성전 복구 책임도 제거했습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맡기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결단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인 정의와 의리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푼 분인데 어떻게 이토록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방향성이 올바르고 방법론이 정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성전 복구를 원하시고 이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이며 백성들이 와서 예배드려야 할 신성한 공간인데, 이를 이렇게 방치해 놓고서야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그는 제사장 여호야다까지도 불러서 책망하고 그에게서 은화 징수권을 박탈하며 성전 복구 책임도 제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가 선택한 새로운 방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성전 문 어귀 오른쪽 곧 제단 옆에 두매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산하여 봉하고" (왕하 12:9-10)
이제 성전의 헌금함을 직접 관리하기로 한 것입니다. 제사장들에게는 단순한 보조 업무만을 맡겼습니다. 헌금함을 설치하도록 하고 백성들이 직접 그곳에 헌금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헌금함이 가득 차면 왕의 서기관을 파견했습니다. 제사장과 함께 그 전체를 봉인하도록 했습니다. 이어서 그 은화가 충분히 모이면 성전 복구 담당자들에게 직접 자금을 배분했습니다.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왕하 12:11)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왕하 12:14)
부정을 저지르던 제사장들을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복구를 위해 백성들로부터 조세 징수권을 부여했더니,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고 개인적 욕심만 채웠습니다. 이러한 제사장들을 전면 배제했습니다. 그리고 헌금함의 은화를 직접 관리하게 하고, 그 자금을 실제 작업자들에게 왕의 서기관이 직접 배분하도록 했습니다. 실로 집요하고 지속적인 개혁을 요아스 왕이 추진해온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성전 복구의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중도에 포기했다면 어떠한 성과도 거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방향성이 올바르다고 확신한다면 그 올바른 방향을 따라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뛰어넘으며 돌파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개혁이 실현됩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그 중심에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있다고 해서, 자신이 큰 신세를 진 사람이라고 해서, 그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여 침묵한다면 그 역시 동일한 부류에 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훗날 심판의 날 하나님 앞에서 그들과는 다른 자리에 서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요아스 왕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집요하게 끝까지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옳다고 확신하면서도 성급하게 포기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혹은 번거로움을 이유로 회피하는 것이 있다면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훗날 이 세상의 모든 여정을 마무리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날,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둘째는 방해 세력이 존재하더라도 굴복하지 말고 방법을 수정해가며 개혁을 지속해야 합니다. 요아스 왕처럼 "저는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제 손은 깨끗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다가 이 자리에 왔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셋째는 방관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사역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자세조차 갖추지 못한다면, 우리의 몸은 교회 안에 있을지라도 실상은 불신자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입니다. 요아스의 개혁을 통해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깊이 새기고 실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