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마음
열왕기하 14장
최근 한 강의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부부가 서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표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나를 좀 사랑해 달라"는 식의 추상적인 말 대신, "오늘 30분만 나와 시간을 내서 차를 한 잔 나누면 좋겠다"거나 "함께 산책을 하자", "요즘 꽃이 만발하니 함께 꽃구경을 가자" 등의 구체적인 표현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고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가까운 사이라도, 심지어 가족이라 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해도 잘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지금도 함께하시며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계획하는 일과 그 계획이 선한지 악한지 모든 것을 다 읽어보시고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을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너희는 내 앞에서 온전하라"라는 말씀을 하나님이 자주 하셨습니다. 반쪽짜리로 살지 말고 불완전한 상태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말고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온전한 마음을 가지라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반쪽짜리 믿음
반쪽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사람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아마샤가 바로 반쪽짜리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했습니다. 아마샤는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업적과 그의 일을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하 14:3-4)
어떤 느낌이십니까? 아마샤를 성경은 이렇게 압축해서 그의 사적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정직했으나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습니다. 그의 정직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모습으로 보였지만,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윗처럼 정직했으면 좋겠는데 다윗에게는 미치지 못한 정직이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행위와 다 같이 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이 산당에서 우상 숭배하고 그곳에서 제사하고 분향하는 것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그의 아버지 유다 왕 요아스는 성전을 청소하고 성전을 개혁하고 성전을 재건한 인물입니다. 그는 아버지 요아스의 뒤를 이어서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자기 마음대로 예배하고 제사드리는 것을 막지도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를 보면 그는 반쪽짜리 혹은 절반 정도로 하나님 앞에 아쉬움이 남는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는 다윗만큼 정직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산당도 문을 닫고 제거해서 조금 더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도왔으면 좋겠는데 그는 완전하지 못하고 하나님 보실 때 온전하지 못했고 반쪽 절반에 그친 인물이었습니다.
반쪽짜리 성공
이제 그가 이웃나라를 대상으로 전쟁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왕하 14:7)
에돔과의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에돔을 이긴 겁니다. 만 명을 죽이고 셀라를 취합니다. 백성들이 아마 열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세를 몰아서 이 여세를 몰아서 지금 우리가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이제 내친김에 북이스라엘까지 치자고 합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는 처참하게 패배합니다.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왕하 14:12-14)
전쟁에서 지고 자신은 포로로 잡히고 예루살렘에 있는 왕궁과 성전 기명 곳간을 다 털렸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까지 볼모로 사로잡혀 가는 치욕과 굴욕을 당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에돔에게는 승리하고 이스라엘에게는 패배한 것이었으나,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북이스라엘에게 패배한 것이 훨씬 더 뼈아팠습니다. 동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에돔에게는 이겼어도 북이스라엘에게는 이겼어야 되는데, 그런데 내용상 이스라엘에게 처참하고 처절하게 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부하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고야 맙니다. 그의 성공도 완전한 성공이 아닌 반쪽짜리 성공,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용상은 절반의 성공이라고도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는 이런 성공을 거두고 이 정도의 패배를 거둔 인물이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했더라면, 하나님이 그에게 기대하신 대로 다윗이 정직한 것처럼 다윗만큼 정직했더라면,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고 사모했던 것만큼 그의 아버지 요아스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고 성전을 개혁하는 데 열심이었다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했더라면 그의 성공도 온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쪽짜리 마음은 반쪽짜리 성공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계산에 철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우리의 마음을 달아보시고 살피고 감찰하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면 하나님도 우리에 대해서 열심이시고 하나님도 우리에 대해서 온전하게 모든 것을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우리 마음이 온전한지 나뉘어져 있는지 반쪽짜린지 10분의 1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결단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한 설계도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첫 삽을 뜨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온전했습니다. 순전했고 하나님 보시기에 그 마음이 진심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성전 건축을 만류하시고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온전함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마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으나 다윗만큼은 갖지 아니하였고, 성전을 사랑했으나 아버지 요아스처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반쪽짜리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반쪽짜리로 살지 말고 온전한 하루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철저한 감찰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계산에 철저하신 분이십니다. 철저하게 우리의 마음을 달아보시고 살피고 감찰하는 분입니다. 사람은 우리 마음이 온전한지 반쪽짜린지 알 길이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 알고 계시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올려드려야 합니다.
셋째는 온전한 마음에는 온전한 축복이 따릅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한 설계도도 만들지 않았고 첫 삽을 뜨지도 않았지만, 그의 마음이 온전했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도 반쪽짜리가 되지 않고 온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하게 하나님께 봉사하고 충성하는 믿음의 백성이 될 때, 하나님이 우리 인생도 온전하게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되 온전히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봉사하고 충성하되 다윗처럼 온전히 봉사하여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지키시는 그 온전함을 오늘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