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5장

성경
열왕기하

하나님 중심 신앙

열왕기하 15장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종교적 신념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마다 신을 섬기는 방식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종교들은 자신들의 기호와 편의에 따라 신상을 제작하여 섬기며, 때로는 거대하게 만들어 숭배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형으로 제작하여 휴대하며 다니기도 합니다. 가정에 모셔두고 섬기며 그 앞에 엎드려 경배를 올리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며 개인의 주관적 욕망에 따른 신앙 행위입니다.

기독교 신앙과 타종교 신앙 사이의 근본적 차별점은 바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냐 인간 중심의 신앙이냐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신 말씀이 신앙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참된 기독교 신앙은 신앙의 주체인 믿음의 백성들이 자신의 임의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방식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영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상 제작을 금하셨기에 기독교 신앙에서는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않습니다.

반쪽짜리 신앙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이십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왕하 15:1)

유다왕 아마샤는 과연 어떠한 인물이었을까요? 그는 전형적인 반쪽짜리 신앙인이었습니다. 분명히 정직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다윗의 그 완전한 정직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며, 자신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 외적으로는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정적으로 산당 제거라는 과제는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개혁을 추진하려면 철저하게 완수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절반의 순종, 반쪽짜리 헌신만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정확히 절반의 성공만을 허락하셨습니다. 에돔과의 전투에서는 승리를 주셨으나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는 참담한 패배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마샤의 신앙적 현실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아사랴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과연 아들의 통치는 아버지와 어떻게 달랐을까요?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왕하 15:3-4)

안타깝게도 아들 아사랴 역시 아버지와 전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확실히 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나 산당 제거라는 핵심 과제는 여전히 미완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백성들이 계속해서 산당에서 분향하며 제사를 드리는 것을 방치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극도로 악하게 여기셨습니다. 절반에 안주하며 반쪽짜리 신앙에 머무르는 그들의 태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엄중한 심판을 내리십니다.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왕하 15:5)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왕을 징계하셨습니다. 치명적인 나병이 발병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별궁에 유폐되어 지내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왕으로서 위임하셨던 거룩한 사명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그의 아들이 국정을 대신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그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백성들로부터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점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산당의 유혹

도대체 산당이란 무엇이기에 남유다 백성들과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산당을 애호하고 선호했으며, 역대 왕들은 이 산당 제거라는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산당을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 살펴보면 '바마'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바마'는 '높은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 개념을 'high places', 즉 '높은 곳'이라고 직역하여 그 본래 의미를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의 '산당'은 곧 산꼭대기에 위치한 신당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산당들은 단지 산에만 위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지에도 설치되어 있었고, 심지어 개인의 사유지나 가정에도 존재했습니다.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산당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 모세오경에 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민수기 33장 5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주시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 내리신 세 가지 엄중한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가나안 땅에 입성하거든 첫째,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완전히 축출하라. 둘째, 모든 우상을 철저히 파괴하라. 셋째, 산당들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거룩하고 엄중한 명령을 받들고 약속의 땅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산당 제거라는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대로 방치해두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이미 이방 민족들은 곳곳의 높은 지대와 산당에서 각종 이방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상숭배의 근원지들을 모조리 철거하고 완전히 소거하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 제거라는 사명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당을 그대로 존치시킨 채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그 시대에는 엄연히 성막이 존재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건립되기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거룩한 성막이 마련되어 있어서,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성막에 나아가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 시대 이후에는 장엄하고 화려하며 웅장한 성전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막도 외면하고 성전도 외면한 채, 왜 굳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예배를 드렸던 것일까요?

편의적 신앙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막과 성전에서 드리도록 제정하신 예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나치게 번거롭고 불편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다섯 가지 제사 규정들이 있지 않습니까? 레위기를 정독해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예배 규정들이 상당히 정교하고 엄격함을 알 수 있습니다.

번제만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이는 가축을 희생시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인데, 번제물을 준비해온 예배자가 직접 소를 도축해야 했고, 양을 잡아야 했습니다. 한 사람이 소 한 마리를 처리하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해체하고 각을 뜬 후 그것을 모두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를 완수하고 나면, 온몸의 기력이 완전히 고갈될 정도였습니다. 소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첨가해야 할 재료와 금지된 재료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소제물에는 누룩과 꿀을 첨가하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첨가하고 싶어도 하나님께서는 금지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등 각종 제사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부 규정들과 엄격한 제약들이 수반되어 있었습니다. 성막이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려면 이러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모든 규정들을 완벽하게 준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산당에서는 그런 제약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의 기호와 편의에 따라 예배를 드리면 그만이었습니다. 번제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무방했고, 소제물에 누룩을 첨가하고 싶으면, 꿀을 넣고 싶으면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행위를 신앙의 타락이라고 단정하셨습니다. 자신의 임의대로 드리고 개인적 기호에 따라 드리는 예배는 결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진정한 예배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제정하신 규범에 따라,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대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드리는 예배가 바로 참된 예배라고 명시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산당이 제거되지 않았던 근본 원인을 여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 존재입니다. 성전에 가는 것이 불편하고 성막에 가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자신의 편의와 기호에 따라 신앙 행위를 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이방인들의 제사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왕들은 백성들의 여론과 정서를 의식하여 산당을 철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산당을 완전히 폐지해버리면 백성들의 격렬한 반발과 여론의 집중 공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왕들은 백성들의 눈치를 살피며 산당 제거라는 과제를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정상에 위치한 산당은 접근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평지에도 설치하게 되었고, 집이 넓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유지에도 산당을 설치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제사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산당에 이방신들의 신상들이 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과거 모세 시대에 불뱀에 물린 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놋뱀의 형상까지도 그 산당들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방인들의 산당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현실을 극도로 악하게 여기셨습니다.

말씀 중심 신앙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왕들과 남유다의 왕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엄중한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우리 안에 존재하는 산당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는 무관하게 나의 주장과 견해에 따라, 나의 사고와 판단에 따라, 나의 의지와 욕망에 따라 하나님을 나의 방식대로 섬기려고 하는 우리 마음 깊숙한 곳의 이기적 욕망들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든 것들을 철저히 파괴하고 완전히 무너뜨리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신앙이며 동시에 말씀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자 한다면 반드시 말씀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숙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유일한 길이며,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는 확실한 길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의 기질에 맞춰 나의 성향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려고 한다면 성경을 읽을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극도로 혐오하시고 철저히 거부하시는 신앙적 태도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변질되고 타락하는 과정은 바로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이탈할 때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던 신앙에서 내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자기가 바라는 형태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 이것을 우리는 신앙의 변질이요 영적 타락이라고 정의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중요하고 깊이 있는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섬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과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지나치게 번거롭고 불편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방식에 대해 세밀하고 정교하게 규정해두신 것들이 그들에게는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남겨둔 산당들을 그대로 활용하여, 평지에도 설치하고 자신들의 가정 내에도 설치하면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행위를 극도로 악하게 여기시며 엄중한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둘째는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산당들을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산당들에는 각종 이방 신상들이 반입되었고, 자기중심적이고 자의적인 신앙이 바로 또 다른 형태의 산당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마음 중심부에 은밀히 자리 잡고 있는 산당들을 면밀히 성찰하고 과감히 제거하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참된 신앙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말씀 중심이어야 합니다. 신앙은 결코 나의 편의나 기호 중심이 될 수 없으며, 나의 욕망이나 선호도를 기준으로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함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온전하게 섬기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순종하고 실천하며, 그 말씀에서 제시하는 원칙과 기준에 따라 하늘 아버지를 올바르게 섬기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 성숙한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우리의 인생 여정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예배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신앙생활이 우리 모두의 올바른 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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