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동역자
열왕기하 16장
세상을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는 대개 단독으로 자행되지 않습니다.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그토록 거대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여러 사람이나 집단이 연합하여 범죄를 저지를 때 그 피해는 심각해지고, 사회에 미치는 충격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집니다.
악은 본래 서로 연합하고 결탁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악이 한번 연합하게 되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을 조기에 차단하고 그 고리를 끊어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경각심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의 공범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 왕 아하스와 제사장 우리아가 바로 그러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악의 동역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참된 선의 동역자로 살아갈 수 있는지 깊이 성찰해보겠습니다.
위기와 굴복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이 남유다를 침공했을 때, 왕위에 있던 아하스는 처음에는 이를 성공적으로 방어해냈습니다. 그러나 적군은 한 차례의 침입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유다를 노리며 끊임없이 위협을 가해왔습니다. 아무리 용맹한 왕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지속적인 압박을 홀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유다왕 아하스는 강대국 앗시리아에 구원을 요청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서 그들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왕하 16:7)
이러한 구원 요청 자체가 이미 굴욕적이었지만, 아하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도움 요청을 넘어 막대한 조공까지 바치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앗수르 왕이 그의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왕하 16:8-9)
이 방법은 즉각적인 효과를 보였습니다. 조공을 받은 앗시리아 왕은 신속히 움직여 아하스의 적들을 제압했습니다. 위기가 해결되자 아하스는 직접 아시리아 왕을 찾아가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우상의 유혹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랓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작법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아에게 보냈더니" (왕하 16:10)
다메섹에서 앗시리아 왕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던 아하스는 그곳에서 웅장하고 화려한 앗시리아 신전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에는 그릇된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앗시리아의 막강한 군사력과 제국의 위용이 바로 저 신전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동시에 그는 고국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앗시리아의 웅장한 신전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게 보였던지 모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위험한 계산이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도 저와 같은 신전을 짓고 그들의 신을 섬기면 외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며, 진정한 자주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고 무지한 발상이었습니다. 그는 자국의 찬란했던 역사를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룩했던 영광과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로 건설했던 태평성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무지한 지도자였습니다.
결국 아하스는 그 신전의 설계도와 건축 양식을 세밀하게 그려서 본국의 제사장 우리아에게 보내며 그대로 복제하여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타협의 결과
그런데 제사장 우리아는 왕이 귀국하기도 전에 이미 신전 건설을 완료해버렸습니다.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아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 대로 하여 제사장 우리아가 제단을 만든지라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왕하 16:11-12)
제사장 우리아는 참으로 분별력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제사장이라면 왕이 이와 같은 명령을 내릴 때 목숨을 걸고서라도 저지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유다가 국력이 쇠약해지고 외침에 시달리는 근본 원인은 왕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고 믿음의 길을 말씀에 따라 온전히 행한다면 이 나라는 다시 강건해지고 견고해질 것입니다. 현재의 위기는 신앙의 기초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우리아는 왕에게 분명히 고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침묵을 택했습니다.
도리어 우리아는 왕이 보내온 설계도에 따라 충실히 이방 신전을 건설했습니다. 왕이 귀국한 후에는 그 신전에서 앗시리아 왕이 행하는 방식 그대로 이방 제사를 드리는 일에까지 동참했습니다. 타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두니라" (왕하 16:14)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전의 놋제단마저 임의로 이동시켜버렸습니다.
"제사장 우리아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왕하 16:16)
이것이 모든 것을 요약하는 결론입니다. 제사장 우리아는 아하스 왕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제사장의 존재 의미가 무엇입니까? 목숨을 걸고서라도 "안 됩니다"라고 반대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제사장 우리아와 왕 아하스가 손을 잡자 남유다는 이처럼 영적으로 완전히 황폐화되었습니다. 악은 이렇게 연합하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악의 분별
한 사람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 때,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 그 잘못을 분별했다면 마땅히 막아서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 됩니다"라고 말해야 하며,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저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동체가 건전하게 유지됩니다.
우리가 아무런 경각심 없이 별 생각 없이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의 물결에 휩쓸려가게 됩니다. 악은 그만큼 강한 전염성과 확산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보낸 40년 여정을 보십시오. 불평과 불만, 원망의 소리가 순식간에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휩쓸어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무리들의 목소리가 삽시간에 모든 이를 잠식해버렸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겠는가? 나는 그런 위치도 아니고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는데...' 이러한 소극적 태도가 지속되는 동안 세상은 점점 악해져가고 공동체는 죄로 병들어갔습니다.
제사장 우리아 역시 그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나는 힘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원해서가 아니라 혈통상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목숨 하나 지키고 내 가정 하나 보호하는 것도 벅찬 사람이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를 통해 그는 악의 동조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나라는 멸망의 길로 치달았고,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우리아를 악하게 보셨습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실 때 '돕는 배필'을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에제르 크네그도'인데, 이는 '맞서는 동역자', '반대하는 조력자'라는 의미입니다. 참된 돕는 배필이란 무조건적으로 돕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적절한 반대와 제동을 가하고,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동역자요 조력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이 악의 동역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선한 일에 함께 힘을 모으고 마음을 합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일에 지혜로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에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선과 악을 정확히 분별하고 신중히 살펴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일에도 동역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결코 혼자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한 일을 발견하고 그것이 옳고 바른 일이라는 확신이 서면, 그 일을 위하여 힘을 모으고 마음을 다하며 때로는 목숨까지 걸고 동역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는 상당한 에너지와 날카로운 분별력이 요구됩니다.
셋째는 악한 일에 동조하는 데는 별다른 분별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시류에 순응하며 가만히 있기만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일의 협력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세심히 살펴서 악한 일의 동역자가 되지 말고 선한 일의 조력자요 동역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앞에는 항상 여러 가지 핑계거리들이 놓여 있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해온 인간관계 때문에 체면이 서지 않는 일도 있고, 때로는 관계 단절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일에는 동조하지 않고 선한 일에 동역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 일을 위해 서로 손을 잡고 무릎을 꿇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