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7장

성경
열왕기하

여로보암의 죄와 북이스라엘의 멸망

열왕기하 17장

확고한 신념과 소신을 지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어리더라도 주변으로부터 함부로 대접받지 않습니다. 명확한 가치관과 일관된 행동 원칙이 그 사람만의 품격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나이와 지위, 물질적 풍요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철학이나 확신이 부족한 이들은 외부의 영향에 쉽게 흔들리며, 결국 주변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경박한 인물로 평가받게 됩니다.

영적인 차원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신앙의 연륜이 짧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확고한 영적 좌표를 설정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사탄의 공격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신앙적 기준과 말씀의 근거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영적 원수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의 주인공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입니다. 그는 분명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왕실 교육을 받았고 왕으로 세움받았지만, 정작 영적이든 인간적이든 자신만의 확고한 중심축을 갖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의 이러한 나약함이 북이스라엘 전체를 파멸로 이끌고 만 것입니다.

분열 왕국과 여로보암의 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통일된 왕국을 허락하시며 사울과 다윗,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왕조의 역사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사후, 이 영광스러운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때 북왕국의 초대 왕으로 등극한 인물이 바로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통치에는 심각한 영적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행위를 '여로보암의 죄'라는 특별한 표현으로 규정하며, 이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우상숭배의 제도화입니다. 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 백성들로 하여금 참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게 만들었습니다.

둘째는 제사장 제도의 왜곡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레위 지파가 아닌 일반 백성 중에서 자의적으로 제사장을 임명했습니다.

셋째는 절기 제도의 변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절기들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맞게 임의로 변경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이방신을 섬기는 것도 아닌, 자신만의 종교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저지른 영적 타락의 본질이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후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예외 없이 이 여로보암의 죄악된 전통을 계승했다는 사실입니다.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이 죄악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고, 오히려 대를 이어 지속시켜 나갔습니다.

호세아 왕의 영적 타락

"유다의 왕 아하스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년간 다스리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왕하 17:1-2)

성경의 이 평가는 겉보기에는 호세아에 대한 상대적 호평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오십보백보에 불과했습니다. 이전 왕들보다 조금 나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역시 여로보암의 죄악된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악한 통치자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 바로 다음 구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앗시리아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왕하 17:3)

'종이 되었다'는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물론 국제정세의 역학관계상 강대국에 조공을 바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외교적 현실과 국력의 한계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순한 정치적 행위를 넘어서 호세아의 영적 타락과 의지의 나약함을 '종이 되어'라는 표현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왕으로서, 다윗 왕조의 영광스러운 유산을 이어받은 자로서, 그가 이방 왕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굴복을 넘어서 영적 배교를 의미했습니다.

이방인의 종이 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들까지도 함께 받아들인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완전히 저버리고 우상숭배의 길로 나아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신실함을 상실한 이중 외교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의 종이 되어 우상을 섬기는 호세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묵과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호세아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의 신의조차 저버리는 파렴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시리아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함에 앗시리아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왕하 17:4)

지정학적으로 앗시리아는 북이스라엘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습니다. 반면 이집트는 바로 인접한 지역에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이러한 지리적 조건을 계산하여 가까운 이집트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 하에 이중 외교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배신 행위를 앗시리아의 살만에셀이 좌시할 리 없었습니다. 결국 앗시리아군이 침입하여 호세아를 체포, 감금시켜 버렸습니다. 이는 호세아가 국제 외교에서도 전혀 지혜롭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해서도 신실하지 못했고, 인간관계에서도 신의와 원칙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이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자신의 파멸을 자초하게 만들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비참한 종말

"앗시리아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곳을 삼년간 에워쌌더라 호세아 제구년에 앗시리아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시리아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왕하 17:5-6)

이로써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앗시리아 군대가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3년간 포위했습니다. 3년이라는 긴 포위전 끝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사마리아는 결국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정면 대결조차 시도하지 못한 채, 그저 말라 죽듯이 허무하게 북이스라엘의 역사가 막을 내린 것입니다. 기원전 722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국가 멸망의 직접적 책임은 마지막 왕 호세아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이방인의 종이 되고 이방신의 종이 되어서 조공을 바치며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서도 신실함과 중심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추적해 올라가면,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죄로 귀결됩니다. 그 죄악을 그 누구도 끊어내지 못했다는 데에 진정한 멸망의 원인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위대한 선지자들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찬란했던 때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였습니다. 이들만큼 놀라운 이적과 기사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한 선지자들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상대로 홀로 맞서 승리를 거둔 용기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늘에서 불을 받아 제물을 태운 기도의 선지자였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불말과 불병거,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 엘리야의 시대에도 여로보암의 죄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내게 주옵소서"라고 간구했던 선지자입니다. 실제로 그의 모든 사역을 살펴보면 갑절의 영감을 받아 활동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의 시대에도 여로보암의 죄는 뿌리 뽑히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8세기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위대한 선지자들 요나, 아모스, 호세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강력한 회개 촉구와 심판 예언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의 죄는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작은 죄가 불러온 치명적 결과

죄의 시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죄가 시간이 흐르면서 고착화되고, 결국에는 누구도 끊어낼 수 없는 거대한 악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부모 세대로부터 시작된 사소해 보이는 죄가 자녀 세대로 전수되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큰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들어온 작은 여로보암의 죄가 시간이 지나면서 끊어낼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여,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주 작은 것부터 경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은 죄가 우리 가정에, 내 마음에, 우리 교회에 침투할 때 바로 그 순간부터 끊어내고 막아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단순히 과거에 흘러간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개인에게, 가정에게, 공동체에게 매 순간 일어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무서운 경고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작은 죄라도 즉시 끊어내는 결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며 우리는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우리 마음을 잘 다스리고 여로보암의 죄를 살펴서 끊어내는 능력으로 죄에서 떠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영적 중심을 잃지 않는 신실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호세아는 스스로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던 어리석은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사람이 이방의 왕을 섬기고 이방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신의도, 인간적인 절개도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앗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셋째는 죄와의 철저한 투쟁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여로보암 왕에서부터 시작된 세 가지 무서운 죄가 누구도 끊어내지 못하는 큰 죄가 되었고 결국 그 죄로 말미암아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습니다. 주여, 우리 가정에 어떤 죄가 들어와 있습니까? 내 마음속에 무엇이 무너져 있습니까? 우리 교회를 흔드는 죄들이 무엇입니까? 이 나라와 민족과 공동체에서 끊어내야 할 악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돌아보게 하시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투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피 흘리기까지 투쟁하게 하시고, 끊임없이 죄를 돌아보고 죄를 끊어내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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