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의 비결
열왕기하 19장
동일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완전히 상반된 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우리는 일상에서 빈번히 관찰하게 됩니다. 같은 학교의 동일한 교실에서 수학하며 같은 학원에 다니는 두 학생이 있다 하더라도, 한 학생은 탁월한 성취를 이루는 반면 다른 학생은 평범한 성과에 머물 수 있습니다. 동일한 국가의 유사한 기업 환경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에도 어떤 기업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는 반면, 다른 기업은 지속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곤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결코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일입니다.
외적으로는 모든 조건이 동일해 보이는데, 과연 무엇이 이토록 극명한 차이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면밀히 살펴보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차이가 내재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처럼 상반된 결과가 나타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히스기야 왕이 자신과 나라에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해 나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던 호세아는 유사한 위기 상황에서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동일한 위험과 압박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극명한 대조의 비결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명확히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신앙적 선택
히스기야는 남유다 왕위에 오른 지 불과 6년 만에 전례 없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가 통치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족인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는 참혹한 현실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비록 오랜 세월 갈등과 분열 속에 있었지만 여전히 같은 혈통의 형제 나라였던 북이스라엘의 소멸은 히스기야에게 말할 수 없는 충격과 두려움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땅에는 강력한 앗시리아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그들의 다음 정복 목표가 남유다가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통치자라면 생존을 위해 강대국에 굴복하는 현실적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에 굴복하여 조공을 바치며 속국이 되는 대신, 오히려 담대한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입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들을 파괴했고, 각처에 설치된 산당들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심지어 모세 시대부터 유다 백성들이 신령하다고 여겨 숭배해 온 놋뱀까지도 주저 없이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느후스단", 즉 "놋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명명하며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금속 조각일 뿐이니, 이런 헛된 것을 섬기느라 참 하나님을 등한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선포하며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려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히스기야의 진실하고 순수한 신앙을 보신다면, 마땅히 하나님께서 그의 충성된 마음을 기뻐하시며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남유다를 보호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과 강력한 능력으로 앗시리아의 위협을 물리쳐 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히스기야 자신도 그렇게 기대했을 것이고, 백성들 역시 그러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냉혹한 현실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은 기존의 정복 계획에 따라 북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킨 후, 예정대로 남유다를 향해 진군해 왔습니다. 앗시리아 왕은 정예 군대 장관인 랍사계를 파견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강력한 심리전을 펼쳤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너희도 북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저항은 무의미하니 조속히 항복하라"는 위협적인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히스기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의 마음은 깊은 절망과 혼란으로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의 뜻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왔는데, 어찌하여 이런 시련이 저희에게 닥치는 것입니까?"라는 원망과 의문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충분히 이해할 만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러한 절망적 위기 상황에서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선택을 내렸습니다. 그의 행동은 진정한 신앙 지도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19:1)
그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여호와의 성전으로 향한 이유는 단 하나,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매우 비현실적인 선택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백성들과 신하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신속히 앗시리아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바치고 왕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닌가?" 인간의 상식과 정치적 판단으로는 당연히 그러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신앙적 통찰력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이 위기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힘과 정치적 협상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저 없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도움을 구했습니다.
지속적 기도와 연합의 힘
히스기야의 기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개인적 기도와 함께 공동체의 연합된 기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러서 아모스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음과 같도다" (19:2-3)
히스기야는 당대의 하나님의 사람인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신들을 파견하여 기도의 동참을 요청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간절하고 겸손했습니다. "저 혼자의 기도로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접근법에서 우리는 그의 영적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연합기도의 놀라운 능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하여 드리는 기도가 훨씬 더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성경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증거되고 있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과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줄 아는 영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형식적이고 세속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아닌,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분별력 또한 참된 신앙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이와 동시에 히스기야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직접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펼쳐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의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9:14-16)
히스기야가 기도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의 기도 방식의 탁월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추상적이고 막연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살아계시며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인격적인 분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앗시리아 왕의 위협적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으면서 "보시옵소서, 들으시옵소서"라고 간곡히 아뢰는 모습은 하나님과의 깊은 신뢰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형식이나 의례를 넘어선, 진정한 신앙인의 기도 자세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가장 가까운 분, 자신의 모든 사정을 세세히 아시고 도우실 수 있는 분으로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절망이 아닌 소망이, 체념이 아닌 기대가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 히스기야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 사이의 근본적 차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대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호세아 왕은 앗시리아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정치적 현실주의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치러 갔으며, 성경은 이를 "그의 종이 되어 조공을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협상이 아니라 완전한 굴복과 항복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앗시리아 왕 앞에 완전히 엎드려 생존을 간청했을 뿐만 아니라, 앗시리아가 섬기는 이방 신들에게까지 절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에게 의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허무한 행위입니다. 그 어떤 우상이나 인간의 권력도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실질적 변화나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왕이 직면한 외적 상황은 동일했습니다. 호세아도, 히스기야도 모두 강력한 앗시리아 제국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호세아는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고, 히스기야는 놀라운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든 것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의지처였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이 나타났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라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9:35-37)
이는 인간의 상식과 이해를 완전히 초월하는 기적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사자를 보내시어 단 하룻밤 사이에 십팔만 오천 명의 앗시리아 정예군을 전멸시키신 것입니다. 이는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앗시리아 제국의 군대였습니다. 그런 막강한 군대가 어떠한 전투도 없이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소멸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앗시리아 왕 산헤립 자신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했던 대가로 결국 자신이 섬기던 우상 니스록의 신전에서 자신의 아들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동일한 위기 상황에서 두 왕이 선택한 길은 완전히 달랐고, 그 결과 또한 천양지차였습니다. 한 사람은 인간과 우상에게 의지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한 사람은 개인적 기도에만 머물렀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공동체의 연합된 기도까지 요청했습니다. 그 선택의 차이가 멸망과 구원이라는 극명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의지처를 선택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처럼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위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권력이나 물질에 의지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는 개인 기도와 함께 공동체의 연합 기도를 구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혼자만 기도하지 않고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동역자들과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할 때, 그 기도는 더욱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있을 때 신앙의 동역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함께 기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며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보시옵소서, 들으시옵소서"라고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추상적인 존재가 아닌 살아계시고 응답하시는 인격적인 분으로 믿고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위기 극복의 핵심은 결국 누구에게 의지하며 누구 앞에 엎드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믿음과 기도가 보여준 이 영원한 진리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동일한 능력으로 역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