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의 분기점
열왕기하 20장
성공과 실패는 언뜻 하늘과 땅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을 깊이 살펴보면, 실상 종이 한 장만큼의 미세한 차이에 불과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잘못된 습관을 교정하고 그 변화된 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반면 잘못된 습관을 방치한 채 그대로 살아간다면 실패가 뒤따르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결국 성공과 실패 사이의 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성공과 실패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때로는 자신을 절제하며 깨어 있지만, 때로는 성공의 달콤함에 취해 자만하다가 오히려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에는 히스기야의 빛나는 성공과 아픈 실패가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위기와 간절한 기도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됨에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왕하 20:1)
히스기야가 치명적인 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에게 죽음을 앞둔 현실을 직시하고 마지막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가 왕위에 오른 지 6년 만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했지만, 그는 강대국 아시리아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감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산당들을 철거하고 우상들을 파괴했으며, 심지어 모세 시대에 만들어진 놋뱀까지도 백성들이 그것에 분향하며 우상화하자 주저 없이 부수어버리고 '놋조각'이라 명명했던 철저한 믿음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견고했고, 신앙이 흔들림 없이 단단했으며, 어떤 시련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구하고 기도했으며, 아시리아가 침입했을 때도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성전에 엎드려 기도함으로써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신앙의 거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아직 하나님 앞에 완수해야 할 사명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나라와 이 백성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생명의 연장을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 20:2-3)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 앞에서 선하게 행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제게 조금 더 시간을 허락해 주신다면,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더욱 충성스럽게 헌신하겠습니다." 이러한 간절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와 눈물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진실한 마음을 아시고 즉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놀라운 회복의 약속을 전해주셨습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갈 것이요 내가 네 날에 십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여 또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왕하 20:5-6)
하나님께서 이토록 신속하고 은혜로운 응답을 주신 것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성전은 단순한 예배 장소 이상의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었습니다. 아시리아가 무력으로 침입했을 때, 그는 적들이 보낸 위협적인 편지를 성전에 가져가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승리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번에 그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도 성전에서 엎드려 기도함으로써 기적적인 치유와 생명 연장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성전은 그에게 있어서 성공의 비밀이었고, 승리의 근거지였습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야말로 그의 삶에 기적과 표적을 가져다주는 신령한 통로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성전에서의 기도를 통해 놀라운 성공들을 이루어낸 탁월한 믿음의 지도자였습니다.
히스기야의 치명적 실수
그런데 이제 예상치 못한 시험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 시험은 거칠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탄이 달콤한 속삭임으로 우리를 유혹하듯, 매우 부드럽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접근해왔습니다.
히스기야가 중병에서 회복되었다는 소식이 멀리까지 전해졌습니다. 이를 들은 신흥 강대국 바벨론의 왕이 사신을 파견하게 됩니다.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왕하 20:12)
바벨론은 앗시리아의 뒤를 이어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패권국이었습니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아시리아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시리아가 무력과 위협으로 압박했다면, 바벨론은 외교적 예의와 호의로 접근했습니다. 정중한 편지와 값진 예물을 보내며 히스기야의 회복을 축하하는 사신들을 보낸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러한 호의에 감동하여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은금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왕하 20:13)
그는 자신의 모든 보물과 재산을 아낌없이 공개했습니다. 은금보화는 물론 향료와 귀한 기름, 심지어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무기고와 창고까지도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왕궁과 나라 안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극도로 잘못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선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왕하 20:15-18)
하나님께서 왜 이토록 진노하셨을까요? 하필이면 충성스러운 히스기야에게 이렇게 혹독한 심판을 예고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실패 원인
첫째, 우선순위의 혼동과 가치관의 전도
가장 중요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숨기고, 절대 보여주어서는 안 될 것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과연 히스기야가 바벨론 왕의 사신들에게 진정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안내하며 이렇게 증거했어야 했습니다. "이 성전에서 제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시리아의 대군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곳에서 적들이 보낸 위협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룻밤 사이에 십팔만 오천 명의 적군이 전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섭리를 자랑스럽게 증거했어야 했습니다. "이 성전에서 제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엎드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습니다. 성전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자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나타나는 거룩한 곳입니다."
이것만이 그가 진정으로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신자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표적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신 놀라운 역사들,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의 능력,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는 유일한 특권이자 자랑거리가 아닐까요?
창고를 열어 금은보화와 향료들, 무기고의 장비들을 과시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모두 썩어 없어질 것들이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릴 것들입니다. 한 순간의 화재로도 모든 것이 재가 되어버릴 덧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는 영원한 가치를 지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혜의 경험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 보배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순간적으로 교만에 빠졌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축적해온 물질적 성과들만 과시하고, 정작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셨던 영적인 역사들은 이방인들에게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불신앙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둘째, 영적 분별력의 상실
히스기야의 또 다른 치명적 문제는 분별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그가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분별력 상실의 근본 원인은 기도를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등한시하다 보니 누가 진정한 적인지, 누가 참된 동맹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아시리아는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 무력으로 남유다를 정복하려 했던 명백한 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접근법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정중한 사신을 보내고 정성스러운 편지와 값진 예물로 접근했습니다. 겉으로는 매우 우호적이고 호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런 적들에게 자국의 모든 기밀을 노출시켜버렸습니다. 창고와 무기고, 군사 기지, 금은보화까지 아낌없이 공개했습니다. 국가 기밀을 완전히 누출시킨 것입니다. 그것도 왕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열어젖혀 왕궁의 모든 것을 낱낱이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분별력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기도와 영적 분별력
평상시에 하나님께 꾸준히 기도하고, 겸손히 엎드려 구하며,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열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분별력이 생깁니다. 중요한 기로에서 올바른 판단력이 생깁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좌로 갈지 우로 갈지, 멈춰 서야 할지 전진해야 할지, 이 모든 것은 평소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얼마나 진실하게 엎드려 기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본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순간 성공의 달콤함에 도취되어 기도를 소홀히 하다가 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성공도 기도로부터 시작되고, 실패는 기도를 잃어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결론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구하는 것도 기도가 해답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것도 기도가 열쇠가 되며, 인생의 막힌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기도가 돌파구가 됩니다.
기도의 자리를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간절히 구하고 열심히 구하며 기도함으로써 영적 분별력을 굳건히 붙잡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히스기야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우리는 소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그의 빛나는 성공은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함으로써 아시리아의 강대한 군대를 물리쳤고, 죽을병에서도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픈 실패는 잠깐의 성공에 도취되어 기도를 등한시했을 때 영적 분별력을 상실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둘째, 그는 보여주어야 할 것과 보여주어서는 안 될 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진정으로 증거해야 할 하나님의 역사들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우리가 세상에 증거할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불신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입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함께 증거하는 신실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겸손히 엎드려 하루를 시작하고 한 주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도우시며 말씀으로 인도하시어 깨닫는 지혜와 능력을 풍성히 베풀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