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지
열왕기하 21장
우리나라의 정치제도 중 대통령제는 5년 단임제로 운영됩니다. 아무리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는다 할지라도, 5년 이상 연임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제도는 상당한 장점을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적지 않은 문제점들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을 고려할 때,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가능한 한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러한 어려움은 더욱 심화됩니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보면, 새로운 정부는 이전 정권의 모든 흔적과 유산을 지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임기 초반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이러한 작업에 집중됩니다.
그러나 국민과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전 정권에서 성과를 거둔 정책들은 연속성을 가지고 계승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평가를 통해 성공한 정책은 발전시키고, 실패한 정책은 개선해 나가면 될 텐데, 현실 정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이전의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재편하려는 성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전 시대의 선한 유산을 계승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므낫세왕 역시 아버지 히스기야가 이룬 위대한 개혁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실패를 보여줍니다.
개혁의지가 부족한 므낫세
므낫세의 문제는 단순히 그가 악한 성품을 지녔다는 것보다, 더 본질적으로는 개혁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아버지 히스기야에 비해 현저히 부족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왕하 21:2)
므낫세의 아버지 히스기야는 남유다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왕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여러 왕들 중 상당수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히스기야는 차원이 다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간혹 선한 왕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히스기야처럼 산당을 완전히 제거하고 우상들을 파괴하며, 심지어 모세 시대부터 분향의 대상이 되어왔던 놋뱀까지도 과감히 부순 왕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부분적인 개혁에 그쳤던 다른 왕들과 달리, 히스기야는 이 모든 과제를 동시에 완수한 유일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강대국 앗시리아의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개혁의 길과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말년에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궁의 모든 보물을 과시했던 일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전체적인 삶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의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성경은 이 두 인물을 어떻게 대조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왕하 21:3)
히스기야가 그토록 철저하게 파괴했던 우상들과 산당들을 므낫세는 다시 복원시켰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기는 새로운 제단까지 건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므낫세의 실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므낫세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런 선택으로 이끌었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 왕
므낫세를 단순히 악한 왕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상황을 방관하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둔 지도자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이전의 왕들 중에서 그와 같은 수준의 강력하고 포괄적인 개혁을 단행한 인물이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산당 제거와 우상 파괴라는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유일한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29년간 재위하는 동안, 백성들 중에는 분명히 내심으로는 전통적인 산당 제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정치인들과 관료들, 그리고 사회 유력인사들 가운데에도 우상숭배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입니다.
남유다 전체가 수 세대에 걸쳐 우상숭배의 전통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히스기야의 강력한 개혁 정책 앞에서 숨죽이고 있지만, 이 왕이 세상을 떠나기만 하면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히스기야의 권력이 약화되거나 그가 죽기만을 은밀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세상을 떠나고 므낫세가 왕위에 오르자, 전국 각지에서 잠복해 있던 우상숭배 세력들이 관료들과 신하들, 그리고 사회 유력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므낫세가 아버지의 개혁 정신을 계승하려면, 그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했습니다. 이러한 반개혁 세력들을 억누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을 지속하려면, 더욱 집요하고 철저한 의지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을 그대로 방관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 두었다면, 남유다는 다시 우상들로 가득 찬 땅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한 일을 지속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하고 확고한 의지가 반드시 필요한 법입니다. 므낫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개혁의 유산을 자신의 시대까지 이어가지 못한 것은, 그가 본질적으로 악한 왕이었다기보다는 결단력과 의지력이 부족한 우유부단한 지도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러한 므낫세의 행태를 명확히 '악'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선한 습관과 악한 본성
이러한 므낫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습관과 신앙의 패턴을 형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벽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습관을 정착시키는 것만 해도 피나는 노력과 의지력이 필요합니다. 영혼을 깨우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이 거룩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그야말로 치열한 영적 전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형성된 습관이 무너지는 데는 불과 며칠이면 충분합니다.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립니다.
선한 언어를 구사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며,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려면 매 순간 깨어있는 의식과 확고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의지를 강하게 하며, 끊임없는 기도와 성찰을 통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으로 선한 삶, 타인을 중심에 두는 삶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는 선한 일을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의지와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반면에 악한 일을 행하거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습관에 빠지는 것은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상황에 맡겨 두기만 하면 됩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순응하면 우리는 게으름에 빠지게 됩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내버려 두면 우리는 악한 길로 기울어집니다. 이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죄악된 본성을 지닌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성도들에게는 성령께서 마음 안에 거하십니다. 이 성령께서 능력 있게 역사하시고 활발하게 활동하실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과 협력하며 동역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악한 세력과 손을 잡고 동역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악이 한번 활동하기 시작하면 "이제 여기서 그만하자"라고 스스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악은 끝없이 사람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왕하 21:4-5)
므낫세가 상황을 방관한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안에 일월성신을 위한 이교적 제단들을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그 성전 안에 이방 신들을 위한 제단을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에는 경계나 한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급기야 성전 내부에까지 이방 신을 위한 제단을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까?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기도와 말씀 실천에 대한 열정을 잃는다면, 우리 마음 안에도 이방 신을 향한 제단들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선한 유산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의지와 헌신이 요구됩니다. 므낫세가 아버지 히스기야의 위대한 개혁을 지속시키려면, 그는 아버지를 능가하는 강인함과 결단력을 보여야 했습니다. 잠복해 있던 우상숭배 세력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관철시키려면, 더욱 집요하고 치밀한 영적 전략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선한 습관과 거룩한 신앙의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끊임없는 영적 긴장감과 헌신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둘째는 악한 성향들은 우리의 의도적인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증식합니다. 상황을 방관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 둔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게으름과 악함의 길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태생적으로 죄악된 본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므낫세처럼 아무런 대응 없이 상황을 방치했더니, 급기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안에까지 이교적 제단들이 세워지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셋째는 성령님과의 지속적인 동역을 통해 영적 생명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성도들의 마음에는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이 성령님께서 능력 있게 역사하시도록 하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님과 협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습관, 말씀을 읽고 그대로 살아가려는 훈련, 이 모든 영적 실천들에는 끈질기고 성실한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므낫세처럼 상황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방관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헌신하며 최선을 다하는 성숙한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