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전승
열왕기하 22장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로 성장해 나가기까지는 보이는 손길과 보이지 않는 무수한 손길들이 필요합니다. 그 누구도 홀로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태어나는 어린 생명은 자신이 속할 가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에, 그 소중한 생명을 품고 성장시켜 나가는 가정의 역할이 실로 중대합니다.
가정이 비록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처럼 넉넉한 형편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진정한 사랑으로 품고 인격적으로 올바르게 양육해 나간다면 그 어린 생명은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는 단연 부모입니다. 부모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고 길러내느냐에 따라 그 어린 생명의 성장 방향이 결정됩니다.
인생 여정에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스승은 학교에서 지식을 전수하는 교사일 수도 있고, 삶의 길을 인도하고 이끌어주는 인생 선배일 수도 있으며, 높은 인격을 갖춘 멘토일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갖추어질 때, 그 사람은 분명히 탁월한 인물로, 사회에 유익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하나님 말씀의 주인공인 요시야 왕은 바로 이 두 가지 축복을 모두 누린 참으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경건한 어머니를 만나는 축복을 누렸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책이 그의 인생을 이끄는 참 스승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역할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왕하 22: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는 불과 8세였습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어린 나이에 해당합니다. 어린 여덟 살 아이가 과연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그의 어머니가 섭정의 역할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어린 왕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국정 운영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섭정이라 하면 권력을 등에 업은 모후의 개인적 욕심이나 정치적 야욕이 오히려 어린 왕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요시야의 어머니는 그런 세속적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22:2)
어머니가 어린 요시야를 뒤에서 보좌하며 섭정하는 동안, 그를 인격적으로 양육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경은 특별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였다",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기록입니다. 이는 곧 다윗의 정직함을 본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정직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다윗은 분명히 죄를 범했습니다. 그것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중대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밧세바와의 불륜 사건은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하고 부끄러운, 실로 무겁고 참담한 범죄였습니다. 더 나아가 살인이라는 극악한 죄까지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받아 다윗을 찾아가 그의 죄악을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이때 다윗의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그는 변명하거나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단 앞에 엎드려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눈물로 자신의 침상을 적실 만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통회하고 자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와 재앙을 온전히 감수했습니다. 용서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벌을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더욱 겸손해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의 정직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다윗의 정직이란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완벽무결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죄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진실하며 깨끗한 삶을 추구해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다윗의 정직인 것입니다.
요시야 왕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뒤에서 섭정하며 보좌하는 동안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했습니다. 바로 다윗의 정직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 자신이 정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아들이 훗날 홀로서서 나라를 이끌고 다스리며 백성을 교화해야 할 그날을 생각할 때, 적어도 한 가지만은 확실히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올바른 인격만 갖추면 얼마든지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윗의 정직을 교육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이 무려 18년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말씀의 발견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왕하 22:3)
성경에서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8세에 왕위에 올랐으니 이때는 26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머니는 변함없이 다윗의 정직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마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백의 화폭과 같습니다. 그 위에 선한 것을 그리면 선하게 살아가고, 악한 것을 그리면 악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백지와 같던 요시야의 순수한 심령에 어머니는 오직 다윗의 정직만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다윗의 정직을 체득하고 내재화하며 살아가도록 양육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성장하고 있는 다음 세대들, 우리 가정의 미래인 어린 자녀들에게도 요시야 왕의 어머니와 같은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합니다. 선한 길, 올바른 길로 다윗의 정직을 전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으며 깨달음도 회개도 없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어머니 슬하에서 18년간 다윗의 정직을 학습했습니다. 이제 26세가 되어 본격적으로 친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착수한 사업이 무엇이었을까요?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산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넘겨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작업자에게 주어 성전에 부숴진 것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왕하 22:4-6)
본격적인 친정을 시작하며 그가 최우선으로 추진한 정책이 바로 성전 수리 사업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오랫동안 이날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내가 진정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수많은 현안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고민의 결론이 성전 수리였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까?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다윗의 정직이 이처럼 고귀하고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 수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운 발견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왕하 22:8)
대제사장과 서기관이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하던 중 율법책을 발견한 것입니다.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이 지금까지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이는 역대 악한 왕들의 통치 결과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황폐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읽던 율법책과 성경, 그리고 정성스럽게 필사한 경전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희귀하고 귀한 존재가 되어버린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전 수리 과정에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위대하고 의미 있는 발견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이 소중한 성경 말씀, 하나님의 율법책이 왕 앞에서 낭독됩니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묻되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왕하 22:11-13)
마침내 요시야 왕은 깨달았습니다. 이 나라가 왜 이토록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이런 처절한 상황에서 신음하고 있는지를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통해 명확히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정책의 중심에 두고 국정을 운영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완전한 성장
어린 시절 요시야에게는 어머니가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무려 18년간 그의 후견인으로서 다윗의 정직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전수했습니다. 이제 성인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책이 그의 인생을 이끄는 진정한 스승이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성장 과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특히 믿음의 후세대들을 올바르게 양육할 것인가? 우리 교회학교 아이들을 어떻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나갈 것인가? 이 나라의 어린이들과 젊은 세대가 어떻게 성장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인가? 그 명확한 방향성이 제시되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모든 삶의 근거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국제 정세, 주변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정치가 아니라, 오직 율법책에 기록된 진리에 따라 통치한 남유다의 마지막 선한 왕, 요시야 왕의 삶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에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필요합니다. 경건한 부모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책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며, 우리 자녀들에게 이 소중한 유산을 전수하고 그들의 손에 확실히 쥐어주며 가르치는 훌륭한 부모요 교회의 어른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린 시절의 올바른 양육이 평생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요시야 왕의 어머니가 18년간 변함없이 다윗의 정직을 교육한 것처럼, 우리 역시 부모로서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심껏 양육해야 합니다. 죄를 범했을 때는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는 피하지 말고 그 징계를 겸손히 받아들이며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는 다윗의 정직을 가르쳐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요시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말씀에 따라 철저히 통회하고 자복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다스려 간 것처럼, 우리의 삶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이정표가 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승리하고 성공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서야 합니다.
셋째는 믿음의 전승이 대를 이어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 어른들로서, 중직자들로서, 믿음의 선배들로서 우리 후배들과 자녀들, 그리고 교회의 다음 세대들을 다윗의 정직을 가르치는 훌륭한 신앙 공동체가 되어 이들을 올바르게 양육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복의 길임을 깊이 깨닫고 믿음으로 따라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