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주권
열왕기하 23장
세상은 우리가 소망하는 대로, 기대하는 바대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선한 이가 복을 누리고 악한 이가 심판받는다면 얼마나 명쾌하겠습니까마는, 현실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쉽게 목격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고, 때로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회의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고 정직한 마음을 품은 이들이 번영을 누리고 복을 받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악을 저지르고 하나님을 등진 자들이 우리 목전에서 응분의 심판을 받는다면 또한 얼마나 통쾌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지 않는 것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어찌하여 세상이 이와 같습니까?"라는 깊은 탄식을 토해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본문은 유다의 의로운 왕, 요시야의 죽음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탁월하고 경건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훌륭한 배경
요시야는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현명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려 18년 동안 선한 의지와 깊은 신앙으로 아들을 인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를 양육했습니다. 이러한 탁월한 모성애 덕분에 요시야는 다윗의 정직함을 체득하였고, 그 정직함을 심령 깊이 새겨 몸에 익혀 신실한 믿음의 삶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요시야가 홀로서기를 시작한 후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성전 복구 사업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던 성전, 이방 신을 섬기던 불의한 왕들에 의해 막혀 있던 그 거룩한 터를 다시 열고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율법책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이 신성한 말씀을 거듭거듭 읽으며 마음 깊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 나라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새롭게 재건해야겠다는 장엄한 결의였습니다.
그 첫걸음으로 왕 자신이 직접 백성들의 대표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했습니다.
"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에 참가하니라" (왕하 23:2-3)
통상 이러한 성스러운 의식은 왕이 직접 주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몸소 언약책의 말씀을 낭독하고,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자"는 엄숙한 선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새로운 언약을 체결했습니다.
철저한 개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한 이상, 이제 그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것들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잘못된 관행들을 하나하나 척결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 과업이 바로 우상 제거였습니다. 그런데 요시야의 우상 제거 방식은 이전 왕들의 그것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왕하 23:6)
요시야의 우상 제거가 특별한 의미를 지녔던 것은 우상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우상을 치워버리거나 없애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것을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대단히 상징적이고 교훈적인 행위였습니다. 우상이란 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리를 백성들에게 명확히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우상을 제거하고 가루로 만들어도 우리에게는 어떠한 해악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 백성 앞에서 실증해 보인 것입니다. 동시에 이는 우상 제거의 철저함에 대한 교훈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이렇게 분쇄된 우상을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성전 곳곳에, 산당에 세우지 말라는 엄중하고도 명료한 경고였습니다.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한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요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왕하 23:8)
히스기야 왕이 제거했던 산당들은 그의 아들 므낫세 시대에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그만큼 산당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뿌리가 깊고 완고했습니다. 하지만 요시야는 이 산당들을 다시 한 번 제거해나갔습니다. 산당에서는 하나님 중심의 참된 예배가 아닌 인간 중심의 편의적 예배,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한 예배가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책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한 후, "우리가 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온당치 못하다"고 선언하며 산당들을 철저하게 척결했습니다.
반대 세력이 없었을 리 없습니다. 그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그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개혁을 단행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왕하 23:15)
여기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북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이 세운 벧엘의 제단을 완전히 철거한 것입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분열된 이후, 북이스라엘의 첫 왕이 된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제단을 세우고 그곳에 송아지 우상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송아지를 가리켜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라고 백성들을 기만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존재했던 전 기간 동안, 그 어떤 왕도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 우상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왕들이 여로보암의 죄악된 전통을 답습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었던 벧엘의 제단을 파괴한 것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나타난 남유다의 의로운 왕 요시야였습니다. 백성들을 타락의 길로 이끌었고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벧엘의 제단을 그는 완전히 분쇄해버렸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볼 때, 요시야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철저히 살아가고자 온 정성을 다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수많은 저항 세력들이 있었고, 많은 이들이 그를 협박하고 위협하며 때로는 타협을 제안했을 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결코 식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평가
성경은 요시야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왕하 23:24-25)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감찰하시고 심령의 깊은 곳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성경은 요시야가 하나님 앞에서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된 바를 준행하기 위하여 그는 어떤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고 이 험난한 개혁들을 단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탁월하다고 인정하신 왕이라면, 분명 그가 번영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풍성한 복을 베푸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오랫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편안한 만년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의 죽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왕하 23:29)
당시 앗시리아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려던 이집트가 전쟁을 위해 북진하면서 유다의 영토를 침범했습니다. 주권국가의 영토에 타국의 군대가 진입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던 요시야가 이집트 군대를 차단하고 나선 것입니다. 므깃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그는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요시야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대하면서, 우리는 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생명의 주권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분은 편안히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다 하시며, 에녹처럼 엘리야처럼 죽음도 보지 않고 승천하지는 못할망정 그의 말년만큼은 평온하게 해주셔야 마땅하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요시야의 죽음을 대하며 깊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해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기억하고 붙들어야 할 한 가지 핵심이 있습니다. 바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 중에 스스로 태어나기를 원해서 태어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생명의 참된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셔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저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이 나라에 보내주십시오.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이런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간구해서 태어난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 생명을 거두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절대 주권자의 고유한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주권자의 영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행하시는지, 하나님은 왜 저렇게 하시는지, 하나님은 언제 우리를 부르실 것인지, 하나님의 때와 시기,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 관심이 클 뿐만 아니라 그만큼 불만도 많습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이런저런 간섭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셨다면, 그 생명을 거두어가실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불손한 침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그 다음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도 우리를 눈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흡을 주신 동안 우리는 사명을 잘 감당하면 됩니다.
요시야 왕은 살아 있는 동안 그에게 맡겨진 시간 동안 그는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겼다고 평가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생명을 주신 분이 생명을 취하시는 주권자의 영역에 맡기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오늘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는 확고한 의지를 지녀야 합니다. 요시야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할 때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결단과 실천이 요구됩니다. 그는 율법책을 발견한 후 백성들 앞에서 말씀을 낭독하고 언약을 새롭게 하며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했습니다.
둘째는 타협하지 않는 철저한 개혁 정신을 품어야 합니다. 요시야는 우상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고 산당을 제거하며 심지어 벧엘의 제단까지 파괴하는 철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들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고 단호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셋째는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허락하시고 거두어가시는 분이시므로, 우리는 주어진 시간 동안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 영역에 위탁하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과 시간을 귀중히 여기며,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실한 믿음의 사람들로 거듭나시기를 깊이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