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섬길 분
열왕기하 24장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복잡하고 악한 현실로 가득하며,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들이 무수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생존하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가장 강한 존재가 되거나, 혹은 가장 강한 이를 찾아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방법 모두 본질적으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최강자가 되는 길은 결코 용이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피라미드에서 최고 정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 험난한 여정 자체가 녹록지 않습니다. 설령 그 절정에 오른다 할지라도 그 자리를 영원히 지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더욱 강력한 경쟁자가 언제든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최강자를 찾아 그를 섬기는 것 또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러한 인물을 발견하여 그에게 충성하며 그의 세력에 편입될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나타나면 그 순간 그의 추종자였던 나는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택하는 생존 전략이란 결국 이처럼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그러한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세상보다 더욱 강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며 모든 권세와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그 하나님을 섬기면 진정으로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변하지 않으시며 영원토록 가장 강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섬길 대상을 착각하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본문에 등장하는 남유다의 마지막 왕들은 참으로 섬겨야 할 분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오히려 섬기지 말아야 할 세상의 왕들을 좇았습니다. 그들이 택한 길의 끝은 결국 포로로 사로잡혀 가는 비극적 결말뿐이었습니다.
남유다 말기의 여러 왕들 가운데 가장 선량했던 요시야 왕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죽음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의 절대 주권자가 되시기에,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세상을 떠나는 것 또한 오직 그분의 뜻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의 자녀로 귀히 사용하시다가 이제는 그분의 품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요시야 왕의 입장에서는 천국에 가는 것이 훨씬 더 평안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얼마나 더 복된 일이겠습니까?
문제는 이 땅에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이었습니다. 요시야 이후로는 선한 왕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나라는 애굽이었습니다. 바로 느고가 므깃도 전투에서 요시야 왕과 맞서 싸워 그를 전사시켰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애굽의 정치적 영향력이 유다 왕들에게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애굽 왕의 선택을 받아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무려 11년간 충실하게 애굽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제 정세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애굽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신흥 제국인 바벨론이 급속히 부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벨론이 북상하여 유다를 위협하자, 여호야김 왕은 어쩔 수 없이 바벨론을 새로운 종주국으로 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왕하 24:1)
그러나 여호야김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심중히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애굽은 가까운 이웃 나라로서 바로 남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반면 바벨론은 저 멀리 북방에 있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바벨론을 섬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를 왕위에 올려준 은혜로운 애굽과,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애굽을 섬기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결국 바벨론을 배반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당시 남유다 말기의 조정에서는 신하들 사이에도 두 개의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친애굽파와 친바벨론파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어느 나라를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유익할 것인가? 어느 쪽에 붙어야 우리가 더 안전하고 번영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국력이 이처럼 미약한데, 도대체 어디에 의지하고 어디에 줄을 서야 할 것인가?" 이러한 절박한 고민이 그들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선택의 결과
결국 그들이 내린 최종 결정은 애굽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을 떠나 애굽을 섬기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고 유익한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기원전 605년 갈그미스에서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 결정적인 대전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 전쟁에서 애굽은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받으며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바벨론의 완벽하고도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였음이더라" (왕하 24:7)
두 거대한 제국 사이의 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바벨론이 완전한 승자로 부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유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저울질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애굽이 몰락해버렸습니다. 바벨론이 승리했습니다. 이제 유다 또한 덩달아 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왕하 24:10-11)
마침내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징벌하기 위해 북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왕이 직접 출정한 것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부하 장군들이나 군사령관들을 파견한 것이 아니라 친히 나선 것입니다. 이는 곧 이 나라와는 완전히 끝장을 보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왕하 24:13)
이제 성전의 금 그릇들과 성전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파괴하고 부수며 거룩한 성전을 무자비하게 유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유다는 이를 막아낼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국력이 너무나도 미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분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자신들을 섬기다가 배신하여 애굽에 붙은 유다를 철저하게 응징하고 그 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겠다고 작정하고 친정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으며,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의 권세 있는 자들도 모두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귀족들과 지도층 인사들을 모조리 포로로 잡아간 것입니다.
왕을 사로잡아 가버리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됩니까? 사실상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거기에 더하여 꼭두각시 왕을 하나 더 세워두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의 숙부인 맛다니야를 대신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개명했습니다. 이제 형식적인 나라의 틀만 남게 된 것입니다. 완전한 멸망의 벼랑 끝까지 내몰린 상황이었습니다.
참된 의지처
남유다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마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정세를 잘 몰라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모르고 신흥강국 바벨론을 의지해야 되는데 바벨론에 붙어 있어야 되는데 애굽을 의지해서, 역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서 그런 식으로 하다가 망해버렸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다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관점은 섬겨야 될 자, 의지해야 될 분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바벨론이냐 애굽이냐 거기에 줄 섰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나라가 애굽을 의지하지 않고 바벨론에게 줄 섰다면 영원히 이 나라가 건재했겠습니까?
바벨론 이후에 페르시아가 등장합니다. 페르시아 이후에는 알렉산더 제국이 등장하고 그 이후에는 로마가 등장합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섬길 자를 어떻게 바꿔가며 살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섬겨야 생존할 수 있고 하나님을 섬겨야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히스기야 왕의 귀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북이스라엘이 이미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였습니다. 앗시리아는 지속적으로 남유다를 강력히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에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들을 찾아가서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단 하룻밤에 18만 5천 명의 앗시리아 대군을 전멸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어느 편에 서야 할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여러 가지 사람들과 상황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현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어디에 의지하고 누구를 섬겨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선한 손길로 도우시며 인도하실 줄로 확신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섬겨야 할 분을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남유다의 마지막을 장식한 왕들은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어느 강대국을 택하여 그들에게 의지할 것인가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사로잡혀 가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변함없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원불변하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강한 손과 편 팔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며 겸손히 무릎 꿇는 지혜로운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세상의 유혹을 분별해야 합니다. 세상은 이곳저곳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며 미혹하고 현혹합니다. 그러나 그 세상의 달콤한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참으로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에 오직 그분께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