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계승
열왕기하 2장
탁월한 지도력으로 공동체를 이끌었던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면, 그 뒤를 잇는 후계자는 깊은 고뇌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전임자의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길을 개척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위대한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야 할까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전 지도자의 생생한 기억이 남아 있고, 그 영향력이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선임자의 그늘에만 머물러 있다면, 사람들은 "당신만의 특색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추구하는 비전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찬란한 업적을 쌓아올린 거인의 뒤에 서는 것은 참으로 무겁고 벅찬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모든 시대를 통틀어 지도자들이 직면해야 하는 숙명적 과제입니다. 번영하는 조직이든 신앙 공동체든, 세대가 바뀌는 과정에서 겪는 이러한 갈등과 중압감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갑절의 영감
엘리야의 뒤를 이어 엘리사가 북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엘리야가 어떠한 인물이었는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벌인 장엄한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불로 응답하시는 참 하나님의 능력을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타락한 왕 아합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담대한 선지자였습니다. 마침내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회오리 바람에 휩싸여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하늘로 데려가신 전무후무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엘리야가 이룩한 영적 업적과 초자연적 능력, 그리고 그의 압도적 존재감이 너무나 컸기에, 그가 떠나고 난 공허한 자리에 엘리사가 어떻게 설 수 있을지 깊은 고뇌에 빠졌을 것입니다. 이토록 경외로운 인물의 뒤를 이어 엘리사가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범상치 않은 요청을 감히 올렸습니다.
"건넘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왕하 2:9)
엘리사는 엘리야라는 거인의 위대함을 겸허히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셨다면 스승의 능력을 뛰어넘는 갑절의 성령 역사를 허락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는 개인적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불타는 열정에서 우러나온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과 불말,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장엄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물의 기적
엘리사의 첫 번째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첫 사역은 수질 오염으로 인해 농작물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던 한 지역의 물을 정화하는 일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왕하 2:20-22)
한 지역의 생명수가 되는 물 근원을 치유한다는 것은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존 기반을 회복시킨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통해 엘리사 역시 엘리야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그를 능가하는 위대한 일들을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선지자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 번의 기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엘리사의 권위를 시험하고 그를 세우신 하나님의 영적 권위에 공공연히 도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영적 권위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왕하 2:23)
여기서 '작은 아이들'로 번역된 단어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린 아이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문의 '나아르'라는 용어는 NIV 영어 성경에서 '청년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어린아이부터 청년에 이르는 폭넓은 연령대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문맥상 동네를 뛰어다니는 꼬마들이 아니라 상당히 성장한 청장년층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엘리사의 사역을 방해하며 나섰습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외쳤는데, 이는 단순히 그의 외모를 비하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올라가라"는 표현이 더욱 심각한 도발이었습니다. 이 말은 "너의 스승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니, 너도 한번 그렇게 해보라"는 뜻으로, 명백한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이러한 조롱은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했던 방식과 놀랍도록 흡사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뛰어내려 보라. 천사가 너를 받들어 다치지 않게 하시리라." 이는 하나님의 절대 권위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사탄적 도발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청년들이 엘리사를 시험하며 그를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너의 스승이 그토록 위대했다고 하는데, 과연 너는 그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겠느냐? 정말 너도 하나님이 세운 인물이라면, 지금 당장 구름 기둥과 불기둥, 불병거와 불말, 그리고 회오리 바람을 불러내어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보라"는 식으로 사역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며 조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바로 벧엘이라는 사실입니다. 벧엘이 어떤 곳입니까? 북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던 바로 그곳입니다. 그는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는 "이 금송아지가 바로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갈 필요가 없다. 성전에 갈 필요도 없고, 여기서 너희 조상을 구원하신 하나님, 바로 이 형상을 바라보며 경배하라"고 선포했던 곳이 바로 벧엘입니다.
그때부터 벧엘과 단에는 금송아지 우상이 완전히 뿌리를 내렸습니다. 여로보암의 죄악이 북이스라엘 전체에 걸쳐 대대손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어릴 때부터 조상들과 부모들이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섬기며 우상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단순히 엘리사 개인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사를 조롱하고 방해하는 행위는 곧 하나님의 절대적 영적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그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시고 엄중한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왕하 2:24)
이처럼 참혹한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신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서 두 가지 중요한 영적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성한 권위를 훼손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방해하며 그 길을 가로막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징하신다는 엄숙한 사실입니다. 주님의 사역에 훼방을 놓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엘리사의 개인적 위신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일 자체를 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벧엘이라는 성스러운 도시가 이토록 타락한 땅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우리가 깊은 애통함을 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 벧엘이 어떤 곳이었습니까?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이고 밧단아람으로 피신하던 중 루스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곳에서 야곱은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만남을 경험했습니다.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오르내리고 그 끝에 계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친히 뵙게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환상에서 깨어난 야곱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깨닫지 못하였도다"라고 경탄했습니다. 일어나 자신이 베개로 삼았던 돌에 기름을 부으며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로 명명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평안히 이곳에 돌아오게 하시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이곳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겠습니다. 십분의 일 헌금을 빠뜨림없이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했던 성스러운 곳이 바로 벧엘입니다.
훗날 야곱이 거부가 되어 가나안으로 돌아와 정착한 후, 다시 인생의 풍파를 만나 그곳에 올라와서 엘벧엘이라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곳도 바로 벧엘입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족장이 된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그 거룩한 터가 바로 벧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벧엘을 그들의 신앙적 성지로 여기며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거룩했던 이 도시가 완전히 타락의 구렁텅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 여로보암의 죄악 때문에 말입니다. 그곳에서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청년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다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는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적 권위를 경외하며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방해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자신을 대적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편견으로 하나님의 일을 경솔히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엘리사를 조롱했던 벧엘의 청년들처럼 하나님의 절대 권위에 도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유산을 온전히 전수해야 합니다. 벧엘이 타락한 것은 여로보암 한 사람의 죄악이 세대를 거쳐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우상숭배를 보며 자란 아이들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 터전, 이 지역, 이 도시에서 성장하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셋째는 영적 계승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찬란한 업적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갑절의 능력을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인 우리에게는 다음 세대를 보살피고 양육하며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어갈 소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 이곳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세력이 되지 않도록, 오히려 그들이 믿음의 후예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돌보고 인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정도를 굳건히 지키며 바르게 살아서 우상숭배자가 되지 않고 참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도 대대손손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믿음의 길을 온전히 걸어가서, 우리 자녀들과 그들의 후손들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여 복이 강물처럼 흘러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