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기억하라
열왕기하 4장
우리는 흔히 소유한 것보다 결핍된 것이 훨씬 많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돌이켜보면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없어 보입니다. 다른 이들이 당연히 누리는 것들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게 원망과 불만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며, 늘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성경을 펼치고 기도하는 시간, 그리고 흰 종이 위에 하나님께서 이미 내게 베푸신 은혜들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가다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들이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혀 세상을 향한 적개심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들, 은혜로 허락하신 것들,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기초 위에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이 더해질 때 놀라운 역사가 펼쳐지고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신 은혜를 기억하라는 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엘리사의 사역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뒤를 이어 엘리사가 북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세워집니다. 엘리야는 가히 시대를 초월한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뛰어난 영성과 강력한 능력, 그리고 불같은 열정을 겸비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야가 이 땅에서의 사명을 마치고 죽음을 맛보지 않은 채 불말과 불수레,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하나님께로 올려져 갔습니다.
이제 그 무거운 사명의 짐을 엘리사가 떠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스승 엘리야 사이에 놓인 여러 차이점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고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거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엘리야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역 방식을 도입합니다. 선지자 생도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일, 즉 차세대 영적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북이스라엘 각 도시마다 오늘날의 신학교에 해당하는 교육기관들을 세우고, 그곳에서 선지자 생도들을 길러내어 함께 동역하는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신학생들의 경제적 형편은 넉넉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선지자 생도들 역시 가난에 시달리며 학업에 정진해야 했고, 이로 인해 때때로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왕하 4:1)
바로 그런 비극적 상황이 한 가정에 닥쳤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많은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겨진 것은 두 아이와 과부가 된 아내뿐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채권자들이 몰려와 아이들을 종으로 데려가겠다고 위협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기댈 언덕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빚은 산더미 같았으며, 채권자들은 무정하게 아이들을 빼앗아가려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희망을 품고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있는 것을 발견하다
절망에 빠진 여인의 사연을 들은 엘리사는 매우 의미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왕하 4:2)
이 대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엘리사는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묻고 있습니다. 반면 여인의 대답은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였습니다. 분명 기름 한 그릇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동시에 부족하고 결핍된 것들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의 깊이는 실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리는듯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신 은혜를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네게 주신 것들이 있지 않느냐. 네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지 않느냐. 바로 그것들을 가지고 그곳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라."
지금 당신에게 있는 은혜가 무엇인지, 현재 당신이 소유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그것을 묻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이 여인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없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인맥도 없고 건강도 없고 그 무엇도 없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주신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마도 우리 대부분이 이 여인처럼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우리보다 한 가지 나은 점이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집에 실제로 있는 것 하나를 정직하게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기름 한 병, 그렇습니다. 기름 한 병이 우리 집에 있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었지만 그것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고 솔직하게 시인했습니다.
순종과 기적
엘리사는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기름 한 병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합니다.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왕하 4:3-4)
솔직히 엘리사의 이런 지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릇을 빌리라는 것일까요? 기름이 한 병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아이가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갈 위기에 처한 마당에 이웃집에 가서 그릇을 빌려달라니요?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빌릴 수 있는 모든 그릇을 가져오라니요? 이웃들에게는 어떤 핑계로 그 많은 그릇들을 빌려달라고 해야 할까요? 혹시 큰 잔치라도 벌인다고 말해야 할까요?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이 그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비상식적이고 황당해 보이는 지시였지만, 그녀는 두 아들과 함께 나가서 이웃집 곳곳을 다니며 그릇들을 빌려왔습니다. 그녀는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그녀가 소유한 작은 것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이 더해진 것입니다. 기름 한 병이라는 미미한 소유물이었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이 결합되었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따르기 어려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때, 바로 그 순간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왕하 4:5-7)
이처럼 경이로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소유한 기름 한 병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만나는 지점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게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이미 허락하신 은혜가 무엇인가?"를 붙잡는 것입니다. 천만금이나 억만금보다도 그 은혜를 기억하고 붙드는 것이 훨씬 더 귀중하다는 진리를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소유한 것은 목자로서의 재능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막내아들로 양 떼를 돌보며 맹수들로부터 양들을 지켜낸 목자의 경험과 기술, 그것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이 40일 동안 조석으로 나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이스라엘을 조롱할 때,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순종을 보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놀라운 승리를 주지 않으셨습니까?
결국 우리가 소유한 그 한 가지, 비록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분명히 이런 놀라운 은혜가 허락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것들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 기초 위에 온전한 순종의 삶을 더해나갈 때,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도 내일도 우리 삶 속에서 영원토록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발견하고 깊이 인정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결핍된 것들만을 바라보며 탄식해왔습니다. 늘 부족하다고 원망하며 불평하고, 풍족한 이들을 부러워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렇게 풍성한 복을 받았는데, 어찌하여 저에게는 주지 않으십니까? 왜 제게는 항상 부족한 것들만 가득할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정하게 물으십니다.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 내가 이미 네게 허락한 은혜들을 차근차근 기억하고 깊이 성찰해보라."
둘째는 소유한 것에 온전한 순종을 더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기름 한 병이라는 보잘것없는 소유였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이 결합될 때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미미하고 하찮아 보일지라도, 그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것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준비하는 믿음의 그릇만큼 풍성하게 부어집니다. 그 여인이 많은 그릇들을 준비했을 때 모든 그릇이 기름으로 넘쳐흘렀습니다. 마지막 그릇까지 다 찼을 때 비로소 기름이 그쳤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는 우리가 믿음으로 준비하는 그릇의 크기와 깊이만큼 한없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은혜들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그 기초 위에 온전히 순종하는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풍성히 부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 온종일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귀하고 놀라운 은혜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가득 차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