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5장

성경
열왕기하

겸손과 치유

열왕기하 5장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크기와 성격의 문제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문제는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만, 어떤 문제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버립니다.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문제, 그리고 개인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들 앞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더욱 자신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고집합니다. 타인의 조언이나 도움을 거부하며 혼자만의 힘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합니다. 이들은 문제가 심각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품고 있습니다.

반면,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문제의 규모가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되는 순간부터 겸손하게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마치 익사자가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심정으로 어떠한 조언이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해결책을 모색하려 노력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아만 장군이 바로 이러한 후자의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왕하 5:1)

나아만이라는 인물은 아람 왕국의 군사적 최고 책임자였으며, 왕실에서 절대적인 신임과 존경을 받는 고위 관료였습니다. 성경은 그의 위치를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는 극명한 대조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아만은 화려한 명예와 찬란한 영광보다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건강한 평범함을 선택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당시 나병은 불치병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 지역의 의학 수준으로는 나병이 하늘이 내린 저주로 여겨졌으며, 이 질병에 걸린 자는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이별, 사회적 격리라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나아만은 이 무서운 질병 앞에서 자신의 모든 권력과 지위가 무력함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최고위 인사였던 그였기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의술과 치료법들을 모두 시도해 보았을 것입니다.

명성 높은 의사들을 만나 상담받고, 귀한 약재들을 구해다가 복용하고 도포하며, 온갖 치료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점점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육체적 고통과 함께 정신적 피로감이 극에 달했고, 절망의 그림자가 그의 마음을 짙게 덮어갔습니다. 머지않아 왕을 섬기는 충성스러운 신하로서의 역할도, 가정에서 가장으로서 누려야 할 평범한 일상의 행복도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절망적인 순간에, 그에게 한 줄기 희망의 소식이 전해집니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왕하 5:2-3)

여기서 언급된 사마리아의 선지자는 바로 엘리사를 가리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간의 끊임없는 전쟁 중에 포로로 끌려온 한 어린 소녀가 나아만의 저택에서 하인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소녀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엘리사에 대한 놀라운 증언이었습니다. "만약 우리 주인께서 사마리아에 계신 그 선지자를 찾아뵈었다면, 분명히 이 무서운 나병을 고치실 수 있었을 텐데요." 이것이 그 어린 소녀가 전한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평상시라면 나아만의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을 법한 하찮은 이야기였습니다. 권세와 명예로 충만했던 과거의 나아만이라면, 자신과 같은 고위 관료가 어린 시종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적국에서 포로로 끌려온 이방 소녀의 말을 근거로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그의 위신과 체면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아만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체면과 위신을 따질 만큼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실망하다

나아만은 즉시 왕궁으로 달려가 이 놀라운 소식을 아뢰었습니다. 아람 왕 역시 신하의 절박한 상황을 깊이 이해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친히 이스라엘 왕에게 보낼 친서를 작성하고, 예의에 맞는 예물들을 준비하여 나아만의 나병 치료를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드디어 나아만이 길을 떠나는 날이 왔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한 어린 소녀의 말만을 믿고 이렇게 먼 길을 떠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혹시나 하는 간절한 기대감이 동시에 그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을 것입니다. 선지자가 자신의 병든 부위에 따뜻한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고, 특별한 치료법이나 신비한 약물을 처방해 준다면 기적같은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상상들이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것입니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왕하 5:9-10)

그런데 현실은 나아만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엘리사는 직접 나와서 맞이하지도 않았고, 사자를 통해 단순명료한 메시지만을 전달했습니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시오. 그러면 회복되어 깨끗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나아만이 받은 충격과 모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지 않았겠습니까? 그가 그토록 간절히 기대했던 것은 정중한 환대, 따뜻한 위로, 신중한 진찰, 그리고 정성스러운 치료 과정이었는데, 현실은 차갑고 건조한 일방적 지시사항뿐이었습니다. 그의 실망감은 곧 분노로 전환되었습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왕하 5:11-12)

나아만의 자존심과 명예의식이 심하게 상처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이런 무례하고 모독적인 대우를 참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나아만을 수행해 온 그의 부하들과 동행자들이 용기를 내어 상관을 만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군님, 만약 선지자께서 더욱 어렵고 복잡한 일을 명령하셨다면 기꺼이 순종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 아닙니까?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는 일,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습니까? 한 번만 시도해 보고 가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들의 진심 어린 설득이 나아만의 마음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겸손한 항복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 5:14)

완전한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나아만이 나병에서 해방되는 전 과정을 차분히 되짚어보면, 우리는 두 가지 결정적인 전환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가 신분과 지위를 뛰어넘어 한 어린 소녀의 조언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는 점이고, 둘째는 심한 모욕감과 수치심을 감내하면서도 끝까지 선지자의 지시에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행동 양식은 모두 한 가지 공통된 영적 자세, 즉 겸손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평상시의 나아만이라면 이런 일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높은 지위와 권세를 가진 자신이 집안의 하찮은 어린 시종의 말에 좌우된다는 것도, 또한 자신이 기대했던 예우와는 정반대의 냉대를 받으면서도 꾹 참고 하나님의 종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도, 그의 과거 행동 패턴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처럼 겸손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 즉 질병의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건강하고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나아만은 겸손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치유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게 만들었고, 바로 그 겸손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결국 겸손이라는 영적 자세가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키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도저히 해결 불가능해 보였던 난제가 그가 겸손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며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완전히 해소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크고 작은 여러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이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자세입니다. 우리 인생에 산적해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바라볼 때, 만약 우리가 자신의 능력과 지혜, 지금까지 축적해 온 경험과 지식, 보유하고 있는 물질적 자원과 인적 네트워크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오히려 더욱 복잡하고 해결 불가능한 미로 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기도하며,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 앞에 놓인 어떠한 문제라도 반드시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능력으로 그 길을 명확하게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각종 어려움들과 마주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는 영적 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전능한 능력으로 나타나게 될 줄 확신합니다.

결론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이야말로 모든 문제 해결의 근본적 열쇠임을 깨닫습니다. 과거의 나아만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겸손과는 거리가 먼 교만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질병 앞에서 그가 한 어린 소녀의 조언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예상치 못한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마음을 열고 순종의 길을 걸었을 때, 비로소 기적적인 치유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의 각종 문제들도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놀라운 해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방법이 인간의 상식적 기대와는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배웁니다. 나아만은 선지자가 직접 나와서 정중하게 맞이하고, 정성스럽게 안수하며 기도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치유의 방법은 단순하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방식과 하나님의 섭리는 종종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에 겸손하게 순종할 때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기적들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셋째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존재의 말도 소중히 여겨야 함을 배웁니다.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한 어린 소녀의 단순한 한 마디가 강대한 아람 제국의 최고 장군인 나아만의 전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세상이 하찮게 여기는 미약한 존재들을 통해서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적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 지위나 외적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진심 어린 조언에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삶에 닥치는 각종 어려움들과 문제들이 우리를 압도하고 절망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시련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전능함과 놀라우신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고 깨달아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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