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열어주시는 하나님
열왕기하 6장
과연 평범한 인간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면, 개인의 운명과 공동체의 앞길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하여 때로는 그 위험을 완전히 회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자처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이단과 사이비 종교인들입니다. 반면 성경을 살펴보면 참으로 앞날을 내다보고 미래를 예언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들, 즉 앞날을 보고 미래를 예언하며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깊고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에 보는 것이요, 들려주시기에 듣는 것이며, 말하게 하시고 깨우쳐 주시기에 아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사람만이 참된 미래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 심지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들이 미래를 본다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이단 사이비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게도 앞날을 보여주시고 자신을 둘러싼 영적 환경을 명확히 보여주십니다. 보게 하시는 목적은 깨우쳐 주시려는 것이며, 보게 하시는 이유는 '내가 너를 지키고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예지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숙명적인 적대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람 군대는 끊임없이 북이스라엘을 노려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아람왕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향해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아람왕이 군대를 보내는 모든 길목과 작전을 사전에 파악하여 자신의 왕에게 미리 알려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왕하 6:9-10)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아람왕은 당연히 자신의 측근 중에 첩자가 있다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내부의 누군가가 적과 내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가 막힌 일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치밀하게 계획한 군사 작전이 번번이 노출되어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내부 배신자의 존재를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측근 신하들이 진실을 밝혀줍니다. 북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서, 심지어 왕이 침실에서 은밀히 나누는 대화까지도 모두 이스라엘 왕에게 전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람왕에게는 이제 한 가지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엘리사를 체포하여 제거하든지, 아니면 포로로 잡아와서 무력화시키는 방법뿐이었습니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왕하 6:13-14)
아람왕의 이러한 결정은 실로 지극히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공격할 필요도 없고, 이스라엘 왕을 직접 상대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단지 엘리사 한 사람만 제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호하시는 하나님
이 모든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던 엘리사의 사환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경악할 수밖에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왕하 6:15)
사환의 눈에는 절망적인 상황만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구원하러 올 가능성도 희박해 보였고, 이처럼 압도적인 수의 적군이 성을 완전히 포위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죽음은 이제 시간문제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놀랍도록 평온한 모습을 보입니다. 조금의 불안이나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듯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적인 눈에는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는 더 큰 실체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기도를 통해 그 젊은 사환의 눈을 열어주어, 누가 자신들을 진정으로 보호하고 계시는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완벽하게 그들을 지키고 계시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왕하 6:16-17)
아람왕이 파견한 것은 단순한 말과 병거였지만, 엘리사를 실제로 둘러싸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불말과 불병거였습니다. 이 놀라운 계시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며, 하나님께서 기꺼이 사용하시는 그릇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를 돌보시고 지켜주신다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쓰며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세상의 악한 사람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지만, 결국은 헛된 수고에 불과합니다.
아합왕의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얼마나 지혜롭고 영리한 사람이었습니까? 아람과의 전쟁에 나갈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교묘한 변장을 시도했습니다. 화려한 왕의 예복은 남유다 왕에게 입히고, 자신은 허수아비 역할을 하는 남유다 왕을 전면에 내세우며 평범한 병사의 복장으로 위장했습니다. 그 옷 안에는 견고한 왕의 갑옷을 착용하고,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신분을 숨긴 채 전장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아람 군사 중 한 명이 특별한 의도 없이 무심코 쏜 화살이 그의 갑옷 이음새, 즉 갑옷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관통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과다 출혈로 인해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으로 자신을 철저히 보호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시고 돌보지 않으신다면, 인간의 손길로는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허무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진정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고, 하나님께서 기꺼이 사용하시고자 하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을 세심하게 돌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돌보지 않으신다면 북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은 어떻게 될까요? 북이스라엘은 건국 초기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을 시작으로 아합왕을 거쳐 역대 모든 왕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마음을 가진 왕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운 이래로 한 번도 그 우상들을 제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이스라엘의 영적 방향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들은 바로 엘리야와 엘리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특별히 돌보시어 불말과 불병거, 그리고 회오리바람을 보내사 그를 하늘로 승천시키셨습니다. 이제 그의 후계자인 엘리사를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으신다면, 가련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지도는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불말과 불병거를 보내어 엘리사와 그의 사역을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될 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돌보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영적 환경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인식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영적 현실은 단순히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악한 사탄 역시 기회를 노리며 우리를 호시탐탐 감시하고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게 되면,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빠져 살게 되고 죄악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악한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대상을 찾고 있다는 무서운 현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진정한 영적 안목으로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우리를 지키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보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죄악의 길로 발걸음을 돌리기만 하면 즉시 우리를 삼키려고 두루 다니는 악한 사탄마귀의 존재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자신 주변의 영적 상태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분별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기도하기 위해 이 거룩한 자리에 나온 것은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기도하며 시작하는 이 하루,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불말과 불병거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소중한 가정,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을 완전히 지켜주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동시에 악한 사탄의 세력들이 항상 우리 주변에서 기회를 엿보며 활동하고 있다는 영적 현실을 깊이 깨닫고 기억하여, 결코 영적으로 넘어지거나 실족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고, 깨끗하고 맑은 영성을 지닌 사람, 하나님과 깊은 영적 소통을 나누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불말과 불병거를 보내시어 이 세상의 그 어떤 위협과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며, 쓰러지지 않도록 완전히 보호하시고 돌보십니다.
둘째는 우리 주변의 영적 환경을 올바르게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영적 환경이 언제나 우호적이고 안전한 것만은 아닙니다. 악한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끊임없이 두루 다니며 삼킬 대상을 찾고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견고한 믿음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야 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자리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하심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자신과 소중한 가족들, 우리가 섬기는 일터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 전체를 하나님의 불병거와 불말이 완벽하게 지키고 계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품고 그 안전한 보호 안에서 평안히 거하며, 언제나 눈동자같이 소중히 여기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의 손길이 우리를 든든히 붙잡아 주시는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