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7장

성경
열왕기하

하나님의 구원 역사

열왕기하 7장

인간을 죄와 죽음의 영원한 고통에서 구원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창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쫓겨날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향한 구원의 청사진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죄를 범한 후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인간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신의 몸을 가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잎사귀는 마르고 시들어 그 수치가 다시금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동산에서 내보내시면서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은 한 생명이 희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짐승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덮어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장엄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한 짐승의 희생으로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지만, 훗날 정하신 때가 되면 내 독생자를 보내어 그의 죽음과 보혈과 십자가로 모든 인류의 죄악과 죽음의 공포를 영원히 덮어주리라."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칠백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예언은 이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성경 여러 곳에서 메시아가 오실 때 일어날 놀라운 사건들과 그분이 오실 방식에 대해 상세히 예언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칠백 년의 세월이 흘러 드디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강림을 사람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분께서 인간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겸손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왕자가 아닌 한 아기의 모습으로, 가장 미천한 땅, 가장 연약한 곳, 로마 제국의 식민지 변방에서 그것도 초라한 말구유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취하신 성육신의 방식은 인간의 모든 기대를 뒤엎는 것이었기에, 구원은 실로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만약 사람들이 기대했던 대로 왕족의 신분으로 권세와 영광 가운데 오셨다면 누군가는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구원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통로를 통해,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기습적으로 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구원 역사의 특징입니다. 오늘 아람 군대로부터 북이스라엘을 건져내신 하나님의 구원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들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절망적 상황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침공해왔습니다. 그들이 택한 전략은 직접적인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대군으로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포위한 채 시간의 흐름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무력 충돌로 피를 흘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성 안의 백성들이 스스로 굴복하여 나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성에 갇힌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이 겪는 참상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으며, 급기야 극도의 기근으로 인해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잡아먹는 참혹한 비극까지 일어났습니다. 상황은 이미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너뜨릴 정도로 심각해졌습니다.

성 안의 처지가 이러할진대, 성 밖에서 살아가는 나병 환자들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애초에 성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왕하 7:3-4)

이들의 판단은 냉철하고도 절망적이었습니다. 어디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든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자니 이미 기근으로 아사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고, 현재 머물고 있는 곳에서도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람 군대에게 몸을 맡겨 그들의 자비에 기대어보자는 것이 이들의 최후 선택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적군이 긍휼히 여겨 음식 부스러기라도 베풀어준다면 목숨을 연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고서 말입니다.

놀라운 반전

마침내 그들은 아람 진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공포와 떨림이 온몸을 휩쌌지만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진영에 도착해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람 군대의 본진이 완전히 텅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 명의 병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황의 전개로 보아 그들이 매우 급하게 도주한 것 같았습니다. 각종 식량과 보급품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장막들은 흔적도 없이 비어 있었으며, 무기들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었습니다.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왕하 7:6-7)

실제로 아람 진영에 도착한 것은 고작 네 명의 나병 환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사들이 들은 것은 대군의 우렁찬 행진 소리였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이 내딛는 연약한 발걸음을 강력한 대군의 진군 소리로 들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황망히 비워진 진영에서 오랜 기근의 굶주림을 단숨에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왕하 7:9-10)

하나님의 방법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담긴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가장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기대했던 구원의 모습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마도 이스라엘 왕이 용맹한 군대를 이끌고 적진을 향해 당당히 진격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내는 웅장한 그림이었을 것입니다. 혹은 다윗과 같은 영웅적 군사령관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장면을 그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 구원자는 왕도 아니었고, 용맹한 장군도 아니었으며, 무장한 정예 부대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네 명의 나병 환자였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버림받고,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며,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장 미천하고 연약한 자들,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된 이들을 통해 한 나라 전체를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는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경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병 환자라는 극도로 소외된 계층까지도 사용하셔서 한 나라를 건지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이토록 놀랍고 광대하며, 동시에 이토록 세심하고 정교합니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을 나병에서 치유받게 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이도 나아만의 집에서 일하던 한 계집아이 여종이었습니다. 그 어린 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에게 엘리사 선지자의 존재를 알리시고 치유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수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던 들판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시작된 것도 한 아이가 가져온 소박한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가장 작고 연약하며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어떤 놀라운 일을, 어떤 기적적인 사역을 펼치실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사랑으로 섬기고 따뜻하게 돌보며 함께 동행할 사람들만 있을 뿐, 버리거나 무시해도 될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는 진리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나병 환자들이 보여준 고귀한 감사의 정신입니다. 사실 이들은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되고 버림받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마저 외면당하고,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성 안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조차 낼 수 없어 결국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으로 향했던 절망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바꾼 은혜 앞에서 동족을 기억하고 가족을 떠올렸습니다. 텅 빈 적진에서 배불리 먹고 마시면서도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인데 우리만 침묵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새벽까지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을 버린 동족과 가족을 끝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들은 버림받았지만, 그들은 동족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가져다주는 열매였습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복수와 원한에 매달리기를 좋아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를 무시하거나 경멸의 눈초리를 보낸 사람, 실망시키고 마음 아프게 한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하면 몇 배로 갚아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보복의 쾌감과 복수의 달콤함에 도취되어 상대방을 더욱 괴롭고 분하게 만들어주려는 계획들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나병 환자들로부터 배워야 할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원수를 갚는 일은 하나님의 몫이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오직 한 가지, 그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셔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하신다면, 오늘 우리의 입술을 통해 우리의 몸을 통해 복음을 나눌 수 있게 하신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감사하고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기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방식으로 임합니다. 네 명의 나병 환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보기에 작고 연약하며 보잘것없는 존재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들을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무시하거나 소홀히 해도 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진리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섬겨야 합니다. 한 아이의 소박한 도시락을 통해 남자만 오천 명을 포함하여 수만 명을 먹이시고, 한 계집아이의 입술을 통해 군대장관 나아만을 치유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섬기고 따뜻하게 보듬으며 함께 동행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은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했지만 결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귀한 사명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복수나 원한에 사로잡히지 말고, 아름다운 소식을 나누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작은 자를 무시하지 마시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icon
핵심 주제
icon
제목

날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