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 환자의 정결
레위기 14장
치료와 회복의 목적
병원의 존재 목적은 치료와 회복에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면 의사는 그를 적절하게 치료하여 약을 처방하고 건강을 회복시킵니다. 의사가 판단하기에 단순한 치료로는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입원을 권유합니다. 입원의 목적은 집중적인 치료를 통해 완전한 회복을 이루어 일상생활로 복귀시키는 데 있습니다. 환자를 온전히 회복시켜 건강한 삶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야말로 병원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일입니다.
교도소의 목적은 교화와 갱생입니다. 일차적인 목적이 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죄를 뉘우치고 충동을 억제하며 자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사회에 나가서 건전하고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교정하고 치료하여 돌려보내는 데 있습니다.
중한 병에 걸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사회와 분리시키지 않고 다시 회복시켜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현대 사회의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병에 걸린 사람을 영원히 공동체와 격리시키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켜서 공동체로 돌려보내는 과정을 오늘 본문에 자세히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시내산 아래에서 주셨습니다. 머지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고 도시를 이루어 살게 될 때, 전염병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었습니다. 나병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제사장에게 가서 진찰받도록 규정하셨습니다. 나병으로 의심되는 자를 제사장이 진찰하여 나병으로 확진하면 일단 진 밖으로 격리시킵니다.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가문의 배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동체에서 격리된 나병환자가 영원히 공동체와 단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그의 상태를 살피도록 세심하게 규정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레위기 14:1-3)
이는 나병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첫째, 나병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나병 환자를 영원히 격리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들을 진 밖에 버려두고 절대로 그들의 상태를 살피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까이 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상태가 어떠한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는지, 그대로인지 아니면 호전되는 과정에 있는지를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돌보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나병환자를 격리시키는 목적이 영원한 분리가 아니라 건강한 회복을 통해 공동체로 복귀시키는 데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둘째,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 때 진영 안으로 데리고 와서 진찰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직접 진영에서 나가서 진찰하도록 규정하셨습니다. 이는 여전히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혹시 그가 나병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영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이 직접 진 밖으로 나가서 그의 상태를 세심하고 면밀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이는 그를 회복시켜 공동체로 복귀시키는 과정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현대 사회도 아픈 사람이나 죄를 지은 사람을 영원히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 공동체도 이와 같은 원리를 적용하여 공동체에 큰 해를 끼치거나 죄를 지은 사람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이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 공동체에서 큰 해를 끼치고 문제를 일으키며 죄를 지은 사람이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진정으로 뉘우치고 돌이켜서 온전히 회복되면 공동체가 두 팔 벌려 환영하고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그가 온전히 회복되었는지를 정확하고 정직하게 면밀히 살핀 후에 다시 공동체로 받아들이라고 규정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만큼 공동체도 사랑하시며, 공동체를 아끼시는 만큼 한 사람도 귀히 여기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제 온전히 회복된 나병환자가 공동체로 복귀할 때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정결하게 하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와 그 물건들을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어린 숫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기름 한 록과 아울러 속건제로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레위기 14:11-12)
나병에서 회복된 환자는 공동체로 복귀하기 전에 먼저 속건제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속건제는 이웃에게 피해를 끼쳤거나 성물에 손해를 입혔을 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입니다.
왜 속건제를 가장 먼저 드리게 하셨을까요? 나병 환자가 나병으로 인해 공동체에 적지 않은 피해를 끼쳤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 나병에 걸렸든지 간에 나병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불안감과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공동체가 입은 피해가 상당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동체에 다시 들어오려면 이웃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회개하며 예배를 드리고 들어오라고 규정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속죄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레위기 14:19)
속죄제를 드리는 이유는 그가 나병을 앓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성도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고, 성막에서 섬겨야 할 일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들을 다하지 못한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번제와 소제를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제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레위기 14:20)
번제와 소제는 각각 제물을 태워서 드리고 곡물을 고운 가루로 빻아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두 가지 제사의 공통된 의미는 헌신입니다. 그가 나병 환자로 지내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온전히 자신을 태우고 빻아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겠다는 결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병에서 회복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이처럼 복잡하고 신중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웃에 대해서는 속건제를, 하나님께 대해서는 속죄제와 번제와 소제를 드려야만 온전한 회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시 회복되는 과정은 실로 복잡하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레위기의 다섯 가지 제사 가운데 화목제만 제외하고 네 가지 제사를 모두 드려야만 하나님 앞에 온전히 회복되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죄는 이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나병은 곧 죄의 은유입니다. 나병을 앓은 자가 공동체로 회복되는 과정도 이처럼 복잡한데, 죄를 지어서 공동체에 큰 피해를 입히고 해악을 끼친 자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 또한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회복되면 두 팔 벌려 안아주라고 명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이 돌아오는 과정에는 온전한 회복과 철저한 자기 성찰이 반드시 있어야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와 개인을 동시에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만큼 공동체도 사랑하시며, 공동체를 아끼시는 만큼 한 사람도 귀히 여기고 사랑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또한 공동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깊이 깨닫고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도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살피고 돌보게 하시며, 회복되면 돌아올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나 해를 끼친 사람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죄를 짓는 것은 쉽지만 회복되는 과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돌아오는 과정에는 속건제와 속죄제와 번제와 소제를 온전히 드리고서야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죄를 짓고 회복되는 여정이 이토록 길고 험하다는 사실을 통해, 죄를 짓는 것은 쉬우나 회복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쉬우나 회복되는 과정은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성결하며 정결한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