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속하는 권위
레위기 16장
타종교와 기독교
타종교와 기독교를 구분하는 차이는 수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차이를 한 가지만 든다면, 죄를 해결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인류 역사상 타종교에서는 죄를 스스로 짓고 자기 힘으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선행을 통해서 악행의 업보를 덮을 수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선한 일을 많이 행하고 옳은 일을 많이 하며 가난한 자를 돕고 약한 자를 후원하면, 그것이 선업이 되어서 악업을 가리고 덮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즉 그들 사고의 핵심은 죄도 자기가 짓고 해결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그럴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죄는 자기 스스로 짓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한 해결의 문제는 전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큰 죄를 저질렀을 때를 보십시오. 선악과를 먹고 나서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치심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수치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뭇잎을 따다가 치마를 엮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뭇잎이 태양볕에 말라 올라가고 말았습니다. 수치와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이는 자기 힘으로는 결코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짐승을 잡으시고 그 가죽으로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들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핵심적인 증거입니다.
지성소에 들어갈 조건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킬 대속죄일 규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만들라 하신 후로부터 그들 삶의 중심은 성막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드리고 교제하며 많은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들이 지킨 수많은 절기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절기가 바로 대속죄일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레위기 16:2)
속죄소 안, 즉 지성소 안에는 아무나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 한 분만이 일 년에 단 한 번, 정해진 날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지는데, 성소를 지나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휘장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곳은 단 한 명,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하루 허락된 지극히 거룩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조차 이곳에 들어올 때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완전히 깨끗한 상태에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레위기 16:3-4)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올 때 반드시 세 가지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속죄제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하고,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하며, 물로 자신의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이 세 가지 행위의 핵심은 모두 정결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대신해서 죄의 속함을 구하기 위해 나아오는 제사장은 반드시 깨끗한 상태여야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십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죄 있는 인간을 만나실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 대제사장은 필연적으로 죄가 있는 존재이기에, 이 문제를 세 가지 과정을 통해 깨끗하고 정결하게 해결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향연
이렇게 준비된 대제사장은 이제 하나님 앞에 기도의 향연을 올려드립니다.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레위기 16:12-13)
분향단에 향연을 피워 자욱한 연기를 만드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를 의미하고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자신의 죄 용서를 간구하는 기도를 대제사장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모습을, 이렇게 향연의 향기로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사셀 염소
지성소 안에서 이 모든 기도를 마친 대제사장은 이제 밖으로 나와서 아사셀 염소를 저 멀리 진 밖으로 내보내는 의식을 행합니다.
"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끌어다가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레위기 16:20-22)
염소 한 마리를 아사셀 염소로 지정하고, 대제사장 아론이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안수합니다. 바로 그 순간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가 염소에게 전가됩니다. 그 후에 염소를 진 밖 먼 곳으로 떠나보내므로 대속죄일 행사는 완료됩니다. 이는 이스라엘 모든 공동체에서 죄가 멀리멀리 떠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완전히 사라진다는 깊은 의미를 담은 상징적 의식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죄를 속하는 모든 권위와 핵심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씻고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고 속죄제를 드리며,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하는 향을 올리고 아사셀 염소를 보내는 모든 과정에서 백성들의 어떤 행위도 개입되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기도해서 죄사함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간구하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기도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면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어주셨습니다. 이 역할은 훗날 예수 그리스트로 그대로 이관됩니다. 인간 제사장은 죄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이 놀라운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대속죄일 규례는 바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임을 기억하며, 은혜 받은 사람으로 이 땅을 성실과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시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