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가루로 드릴지니
레위기 2장
소통하시는 하나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조건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일방적 교육과 권위주의적 관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상대방의 깊은 내면과 진실한 마음을 이해하려는 쌍방향 소통이 모든 영역에서 생명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교사는 학생들의 개별적 형편과 특수한 상황을 세심히 살펴 맞춤형 지도를 제공하고, 학생들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질문하며 참여할 수 있는 역동적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일방적인 관계 속에서는 문제가 있어도 은밀히 덮어지기 마련이지만, 진정한 상호 소통이 이루어지는 관계에서는 모든 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과 피조물인 인간을 대하시는 방식 역시 결코 일방적이지 않으며, 깊이 있는 쌍방향 소통에 그 근본을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건축을 완성하게 하신 후, 그 거룩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질 예배와 제사의 신성한 규정들에 대해 상세히 말씀하셨습니다. 번제에 사용할 제물로 소나 양이나 염소는 물론 작은 비둘기까지도 허용하신 것은 결코 우연한 배려가 아닙니다. 이는 당신의 백성들의 다양한 형편과 각기 다른 처지, 개별적 상황을 모두 세심히 살펴서 결정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양방향 소통의 원리에 따라, 예배드리는 각 사람의 경제적 형편과 생활환경, 개인적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배려
오늘 우리가 깊이 묵상하게 되는 소제는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직 짐승만을 제물로 받기를 고집하셨다면, 그렇게 경직되고 일방적이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곤란한 경험들을 빈번히 겪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한 후 어떤 이는 목축업에 종사하고 어떤 이는 농업에 전념하게 될 터인데, 농사짓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마다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별도로 구입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고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적 삶의 형편을 속속들이 살피시고 깊이 이해하시며, 농업에 종사하는 자들에게는 곡식으로 당신께 나아오라고 은혜롭게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당신의 백성들의 실제적 삶의 환경을 철저히 고려하시고 배려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고운 가루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레위기 2:1)
소제를 올려드릴 때 가장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요건은 바로 "고운 가루로" 드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수확한 밀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할 때, 그 밀알을 거칠게 그대로 가져와서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반드시 밀을 철저히 빻고 세심히 갈아서 매끄러운 고운 가루가 되게 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했습니다.
고대에는 현대와 같은 정밀한 기계가 전혀 없었기에, 고운 가루를 만들려면 예배자의 손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갖고 갈고 또 갈며 빻고 또 빻아야 했습니다. 어느 정도 빻았다고 생각하여 손으로 만져보면 여전히 거친 알갱이들이 손끝에 잡히므로, 계속해서 더욱 정성스럽게 갈고 더욱 세밀하게 빻아야 했습니다. 마침내 손에 거친 알갱이가 하나도 잡히지 않을 정도까지 완전히 고운 가루로 만들어야만 하나님께 합당한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철저한 과정을 요구하신 이유는 번제를 드릴 때 제물인 짐승을 완전히 태워야만 제사가 성립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영적 원리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모든 것을 완전히 태우든지 아니면 철저히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 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전적 헌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철저한 과정을 요구하시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예배자는 자신의 고집스러운 자아와 세속적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께 나아와야 한다는 심오한 영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의 거룩한 자리로 나아올 때 이기적 욕심이 마음 한가득 차서 나아오고, 누군가를 향한 미움의 감정을 마음 깊숙이 품고 나아오며, 세상의 온갖 걱정과 염려와 근심을 그대로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그러나 예배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는 그 모든 미움과 욕심과 이기적 자아와 세속적 걱정들을 그대로 지닌 채 돌아가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올려드리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고, 마치 고운 가루를 만들듯 자신을 철저히 빻고 갈아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바로 이러한 전적인 헌신이며,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충성과 거룩한 봉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올라올 때는 온갖 걱정과 염려를 무겁게 안고 올라왔을지라도, 내려갈 때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 위에서 완전히 태워 재로 만들고, 철저히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든 후 깨끗한 마음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세속적 걱정도 없이, 불필요한 염려도 없이, 이기적 자아와 탐욕적 욕심도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된 예배의 본질적 모습입니다.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예배자가 소를 드리든 작은 비둘기를 드리든 혹은 곡식을 드리든 그 예물의 종류나 크기보다는 예배의 본질과 마음의 중심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가 하는 외적 조건만을 중시하려 합니다. 큰 소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뻐하시고, 작은 비둘기를 드리면 하찮게 여기시며, 곡식을 드리는 것은 가난한 자들이나 드리는 부끄러운 제사라고 착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마음을 심각하게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드리느냐 하는 외적 조건이 아니라, 어떠한 자세와 어떠한 마음으로 당신 앞에 나아오느냐 하는 내적 동기와 영적 태도를 훨씬 더 중요하게 보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연약한 여인들의 예물을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실로 드릴 것이 거의 없는 가난하고 연약한 여인들이 정성껏 만든 소제조차 귀하게 받아주십니다.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레위기 2:4)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레위기 2:5)"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레위기 2:7)
화덕에서 정성스럽게 구운 것, 철판에서 세심하게 부친 것, 냄비에서 온 마음을 다해 삶은 것, 이 모든 것들은 당시 여인들이 가정에서 요리를 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소박하지만 진실한 예물들이었습니다. 당시 여인들은 직접적으로 목축업에 종사하거나 농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간절히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싶어했습니다. 혹시 남편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반대할지라도, 자신만큼은 진심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올려드리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곡식을 구입하여 고운 가루로 빻아서 드리기에는 가정 형편이 너무나 어려웠고, 값비싼 짐승을 구입해서 드리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간절한 마음을 품은 여인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평소 가족들을 위해 요리하면서 화덕에서 굽거나 철판에서 부치거나 냄비에서 삶아서 가족들이 먹으려고 준비한 음식 중에서 조금씩을 정성스럽게 떼어내어 하나님께 소제의 예물로 올려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가장 연약하고 가장 가진 것 없는 여인들의 작고 소박한 예물까지도 무한히 기쁘게 받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리는 사람의 진실한 마음과 거룩한 중심을 받으시는 분이지, 예물의 크기나 경제적 가치나 외적 조건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하고 판단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라는 중요한 진리를 우리는 반드시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누룩이나 꿀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레위기 2:11)
하나님께서는 소제의 거룩한 제사에서 누룩이나 꿀을 첨가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셨습니다. 누룩은 본래 평범한 고운 가루를 그대로 두지 않고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것이며, 꿀은 본래 달지 않은 것을 인위적으로 달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예배자는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진실한 상태 그대로 나아오라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절대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꾸미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허위로 꾸미고,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포장하며, 실제로는 가난한데 마치 부유한 것처럼 외식적으로 꾸미려 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올려드리는 자는 자신의 진실한 모습,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솔직하게 하나님께 가져와 드리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도 정작 하나님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외식적 동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마치 믿음이 깊은 것처럼, 많은 것을 소유한 것처럼, 풍부한 지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가식적이고 외식적인 자세로는 결코 예배드리지 말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누룩이나 꿀 같은 인위적 첨가물을 넣지 말고, 있는 그대로 철판에서 구운 것 그대로, 화덕에서 구운 것 그대로, 냄비에서 삶은 것 그대로를 진실하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가져와 올려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결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귀하고 소중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과 개별적 처지를 세심히 살피시고 깊이 이해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일방적이거나 경직되지 않으시고 우리와 진실한 소통을 간절히 원하시며, 각자의 독특한 상황과 여건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둘째, 참된 예배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마치 고운 가루를 만들듯 철저히 빻아서 드리는 전적 헌신이어야 합니다.우리의 완고한 자아와 이기적 욕심, 세속적 걱정과 불필요한 염려들을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에 완전히 드리고, 정결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일상에 돌아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예물의 크기나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드리는 자의 진실한 마음과 거룩한 중심을 보십니다.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예물일지라도 순전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올려드리면 하나님께서는 한없이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넷째, 하나님께는 포장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위적으로 꾸미거나 가식적으로 포장하려 하지 말고, 우리의 참된 모습과 솔직한 상태를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며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소제의 거룩한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며,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한 예배자로 서서 우리의 있는 모습을 솔직히 아뢰고, 온종일 하루를 깊은 기쁨과 충만한 평안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