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제 규정과 하나님의 배려
레위기 5장
법과 질서의 근본 원리
국가는 법률을 통해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합니다. 사회공동체마다 자체적으로 정한 규약이 있어서 그 규약에 따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합니다. 만약 법과 질서, 그리고 규약이 없다면 공동체는 힘센 자들의 놀이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교통법규가 없다면 도로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 금융거래에 대한 법이 없다면 온 세상은 사기꾼들로 난장판이 될 것입니다. 개인의 재산과 안전을 보호하는 강력한 법이 없다면 세상은 강자들이 모든 이의 인권을 유린하는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사회가 법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죄성을 전제로 합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원죄를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원죄를 가진 인간은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지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연약하고 타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회는 법을 통해 인간의 악함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속죄제에 대한 세부 규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속죄제에 대한 세부규정을 이처럼 섬세하고 포괄적으로 정하신 이유는 인간의 죄성이 그만큼 깊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각 상황에 따른 속죄의 방법을 명시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원죄를 가진 인간들이 악한 죄성을 마음껏 발휘하는 타락한 현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속죄제 규정에서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가장 중요한 표현은 "누구든지"입니다. 이는 누구도 죄의 가능성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제사장조차도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을 예외로 두지 않으시고, 제사장이 범죄하면 송아지를 제물로 드려 자신의 죄를 속죄하라고 명확히 규정하셨습니다.
온 회중 역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단지성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정이라 할지라도 잘못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세 가지 규정
오늘 말씀은 속죄제의 구체적인 규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증언의 신성한 의무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레위기 5:1)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라는 표현은 두 사람 이상이 서로를 저주하며 다투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누구든지 즉각 개입하여 중재해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직접 말리고, 부족하다면 공동체의 도움을 청하여 분쟁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만약 이를 방치한다면 당사자들은 끝없이 다투다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목격자는 보고 들은 바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는 개인이 공동체의 안정과 질서를 지켜야 할 의무를 나타냅니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우리는 이웃의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옆집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나도 개입하지 않고, 신고조차 하지 않으며 "남의 일"이라고 외면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타인의 문제가 결국 나의 행복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방화를 한다면, 공동주택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모든 주민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분쟁을 적절한 시점에 해결하지 못하고, 정확한 증언을 하지 않는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정확한 증언을 하지 않는 것을 죄로 규정하셨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이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기억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2. 정결과 건강을 위한 지혜로운 규정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레위기 5:2)
이는 공동체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입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 시대에는 죽은 동물을 함부로 만지거나 먹는 것이 치명적인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동물의 사체는 인수공통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 있어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원인 불명으로 죽은 들짐승, 가축, 곤충의 사체에 손을 대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 건강까지 고려한 지혜로운 규정이었습니다.
3. 언어 사용의 신중함에 대한 교훈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레위기 5:4)
이 규정은 공동체에서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함부로 말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때로는 가해자가 되고, 때로는 피해자가 됩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이웃의 과거를 들추어내어 그들의 인격을 훼손하는 일이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하여 이런 일을 멀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특히 맹세에 대해서도 경고하셨습니다. 서원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간절한 기도이지만, 맹세는 다릅니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자신의 의로움을 강조하거나, 여러 사람이 공모하여 한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거짓 맹세를 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있는 것은 있다고, 본 것은 본 대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정직하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언어를 지키는 것은 이웃을 보호하는 일이자 동시에 자신을 지키는 일입니다. 언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이를 위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구체적인 죄들에 대한 속죄제물을 규정하고 계십니다.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에서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레위기 5:6-7)
기본적인 속죄제물은 양이나 염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만을 속죄제물로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둘기조차 바치기 어려운 극빈자들을 위해 또 다른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레위기 5:11)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짐승의 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엄격한 규정을 담고 있는 레위기에서조차 하나님께서는 짐승이 아닌 다른 제물도 허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짐승을 바칠 경제적 능력이 없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고운 가루로도 속죄제를 드릴 수 있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원리를 보여줍니다. 드리는 예물 자체에 속죄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자의 마음과 중심에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지, 정말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사죄를 구하는 전심으로 나아가는지가 핵심입니다. 예물의 가치나 크기가 아니라 드리는 자의 진실한 마음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는 개인의 거룩한 사명입니다. 분쟁을 중재하고 정확한 증언을 하는 것, 정결법을 준수하는 것,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은 모두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의무입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과 평화가 바로 나 자신의 책임에 달려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세심하게 배려하십니다. 속죄제의 구체적인 규정들은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를 드러냅니다.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제물을 허용하신 것이 그 명확한 증거입니다.
셋째, 중요한 것은 예물 자체가 아니라 드리는 자의 진실한 마음입니다. 극빈자도 고운 가루로 속죄제를 드릴 수 있다는 규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심과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회개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죄를 가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전히 구원해 주셨는지를 깊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나아가서 죄 용서를 받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