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길에서의 원망과 기도
민수기 11장
여행의 시험
인간의 진면목을 알고자 한다면 함께 여행을 떠나보라는 오래된 지혜가 있습니다. 일상의 평온함 속에서는 한 사람의 깊은 생각이나 숨겨진 인격, 그 존재의 본질이 쉽게 드러나지 않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그 사람의 모든 장점과 약점, 심지어 가장 사소한 습관까지도 여과 없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시내산 기슭에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받았고, 주님의 명령대로 성막을 건축했으며, 거룩한 레위기 제사 법전을 수여받을 때까지 한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은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채 고요히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향한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되자,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인간적 연약함과 죄성이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악한 원망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므로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니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민 11:1-2)
백성들의 입술에서 나온 원망의 말들이 여호와의 귀에 심히 거슬렸습니다. 비록 그들이 토해낸 원망의 구체적인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말들을 들으시기에 매우 괴로워하셨음이 분명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가 불같이 임하여 진영의 끝자락을 태우셨습니다. 만약 그 불이 진영의 중심을 향했다면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로 진영의 가장자리만 불타올랐고, 공포에 질린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은 모세가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그 재앙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목도한 특별한 세대였습니다. 그들은 성막 위에 머무르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시내산에서 울려 퍼지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금송아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경험했습니다. 이 모든 초자연적인 체험들을 통해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재와 그분의 역사하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 행진이 시작되자마자 그들의 입에서는 하나님께서 듣기에 악한 원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으로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너무나 쉽게 망각의 늪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얼마나 큰 죄악에서 구원받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베푸신 놀라운 은총을 순식간에 잊어버립니다. 이러한 영적 건망증에 사로잡힌 자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 바로 원망입니다.
탐욕의 전염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민 11:4-6)
탐욕을 품었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공급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주시어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고기를 요구하며 탐욕의 소리를 높였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평과 원망이 마치 들불처럼 순식간에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로 번져나갔다는 사실입니다.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민 11:10)
원망과 불평은 치명적인 전염병과도 같습니다. 단 한두 사람이 시작한 작은 불평이 순식간에 공동체 전체를 감염시켜 모든 이들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도 탐욕에서 비롯된 원망이 온 진영을 뒤덮었고, 각 장막에서는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극에 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 모세에게도 깊은 좌절과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우리가 속한 어떤 공동체에서든 부주의하게 내뱉은 한마디가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잠재된 불만의 불씨를 거대한 화염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건전한 비판은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고 또 장려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과 파괴적인 원망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건전한 비판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만, 원망과 불평은 대안 없이 부정적인 감정만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굶주리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책임감 있게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만나를 공급하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요구하는 그들의 모습은 순수한 탐욕 그 자체였습니다.
모세의 기도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민 11:11-12)
이 위기의 순간에 모세가 보여준 반응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붙잡고 일일이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그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거나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이 모든 문제를 안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과 씨름하며 문제의 해답을 찾는 사람입니다.
백성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들과 논쟁하고 대립해봐야 승산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분란만 가중시키고 상처만 깊어질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자이신 그분께 나아가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절박한 기도에 귀 기울이셨습니다. 홀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종의 고통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은 그 부담을 나누어질 수 있도록 70명의 장로를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민 11:16-17)
하나님의 응답은 신속하고도 구체적이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나누어 담당할 70명의 지도자들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고기를 요구하며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바람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민 11:31-32)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백성들의 원망까지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는 백성들을 사랑하셔서가 아니라, 당신의 종 모세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을 주도한 자들에 대한 심판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 11:33-34)
하나님의 공의는 분명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선동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론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귀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광야의 순례길에서는 원망이 아닌 감사가 우리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그 광야길을 오늘 우리도 걷고 있습니다. 천국에 이르는 그날까지 우리는 이 험난한 세상이라는 광야를 통과해야 합니다. 광야는 본질적으로 불편한 곳입니다. 그러나 불편할수록 우리는 원망을 거두고, 서로 양보하며,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성숙함을 보여야 합니다.
둘째, 탐욕의 유혹을 물리치고 주어진 은혜에 만족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지나는 우리를 결코 굶주리게 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전능하신 팔과 강한 손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탐욕을 품고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모든 어려움과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는 영적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광야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도전들 앞에서 우리는 모세처럼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힘겨운 시련과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닥칠 때, 모세의 본을 따라 하나님께 간구함으로써 은혜를 구하고 응답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광야의 순례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야 합니다. 서로 양보하고, 불편을 인내하며, 연약한 이들을 도우면서 함께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