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장

성경
민수기

돌아가서는 안 될 곳

민수기 14장

회귀 본능

모든 생명체에는 태생적으로 회귀 본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평생토록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연어가 목숨을 걸고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명절이면 온 국민이 극심한 교통체증을 감수하며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이러한 회귀 본능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강력한 본능적 끌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단코 돌아가서는 안 되는 장소가 있습니다. 절대로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기억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죄악의 자리요, 타락의 기억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귓가에 속삭입니다. 과거에 은밀히 즐겼던 죄의 달콤함을 상기시키며, 그 유혹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라고 부릅니다. 현실의 고단함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가 바로 그곳이라고 미혹합니다. 그러나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절대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될 금단의 영역입니다.

이집트로 돌아가자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외칩니다. 이 한마디가 하나님의 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에서 대표자 한 명씩을 선발하여 열두 명의 정탐대를 구성하셨고, 그들로 하여금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원래 계획에는 40년간의 광야 방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시내산을 거쳐 가데스바네아를 지나 곧바로 약속의 땅으로 입성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본래 청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열두 명 중 열 명이 극도로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의 보고는 철저히 현실적이었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근거로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의 계산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민 14:1)

그들은 밤새도록 울부짖으며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충격적인 말을 내뱉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민 14:2)

온 회중이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에 완전히 압도되었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깨끗이 잊어버렸습니다. 어떻게 출애굽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기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것입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민 14:3-4)

"애굽으로 돌아가자" -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습니다.

애굽은 어떤 곳인가?

애굽이 과연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노예로 살았던 압제의 땅입니다. 바로는 그들을 잔인하게 학대했고, 그들은 자유 없는 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바로가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기 위해 갓 태어난 모든 남자아이를 나일강에 던지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참혹한 비극 속에서 신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그들을 건져내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이들 중에는 자기 손으로 아들을 나일강에 던져야 했던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곳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더구나 이집트는 우상이 범람하는 곳이었습니다. 우상숭배가 일상이 된 영적 암흑의 땅이었습니다. 노예의 삶, 자녀 살해의 아픔, 우상숭배의 죄악 - 이 모든 것이 뒤엉킨 그곳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원망도 참으실 수 있었지만, 이 말만은 용납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 14:11)

하나님은 "나를 멸시한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멸시했습니까?"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깊은 모욕감을 느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모세를 보내셨고, 열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를 심판하셨습니다. 유월절 밤에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치셨고, 홍해를 가르셨으며,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고, 성막 건축을 명하셨으며, 레위기 제사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모든 구원의 역사가 무엇을 위함이었습니까? 그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습니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오늘날 우리도 동일한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과거의 은밀한 죄악을 그리워하고, 그 타락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에 굴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모든 희생이 무엇을 위함입니까?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여전히 애굽을 그리워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심판 선고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 14:28-30)

성인으로서 자신의 말에 책임질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였습니다.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예외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추가적인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민 14:34)

40일의 정탐이 40년의 방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원래 계획에 없던 광야의 유리방황이 그들의 불순종과 하나님을 멸시한 대가로 주어진 것입니다.

결론

오늘 이 엄숙한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경고가 있습니다.

첫째, 절대로 돌아가서는 안 될 영적 이집트가 있습니다. 구원받기 전의 죄악된 삶, 하나님을 모르던 시절의 타락한 습관과 기억들 - 이것이 우리의 이집트입니다. 그곳은 영적 노예의 땅이요, 영원한 죽음의 자리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그곳으로는 절대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둘째, 구원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잊고, 다시 죄악의 자리를 그리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배은망덕한 죄악입니다.

셋째, 불순종의 결과는 광야의 방황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분의 구원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끝없는 영적 방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비극적 운명이 그들의 몫이 됩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죄악을 그리워하지 말고, 오직 앞에 있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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