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 일당의 반역
민수기 16장
은혜를 오해한 담대함
한 자비로운 부자가 가난한 이의 무거운 채무를 보고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아름다운 선행에 감동하며 칭송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귀한 자비를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도 가난한 척하며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으면 되겠구나"라는 악한 계산을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이처럼 악용하려는 자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의 고라 일당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었습니다. 앞서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을 때, 표면적으로는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을 문제 삼았으나, 실상은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며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력을 탐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동자 미리암에게 나병을 내리시고 일주일간 진 밖에 격리시켜 수치를 당하게 하신 후, 다시 은혜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이 엄중한 심판을 목격한 대다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세의 권위에 순복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고라 일당은 전혀 다른 교훈을 얻었습니다. "반역해도 죽지 않는구나. 하나님은 결국 용서하시는구나"라는 위험천만한 오판을 한 것입니다.
거룩을 빙자한 반역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서 이름 있는 지휘관 250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민 16:1-2)
반역의 주동자 고라는 레위 지파였고, 다단과 아비람과 온은 르우벤 지파였습니다. 이들은 회중의 지도자 250명을 포섭하여 모세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민 16:3)
얼핏 들으면 그들의 주장이 정당해 보입니다. "모든 회중이 거룩하며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왜 너희만 특별한가?"라는 평등의 논리를 내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의 진짜 의도를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거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민 16:8-10)
모세의 지적은 정확했습니다. 고라는 레위 지파로서 이미 성막 봉사라는 거룩한 직무를 받았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제사장직을 탐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레위 지파는 게르손, 므라리, 고핫 세 가문으로 구성되어 각각 성막의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특권층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막 가까이에서 봉사하며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가까움이 그들을 시험에 빠뜨렸습니다. "저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나도 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교만이 스며든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모세와 아론의 사역이 단순해 보였고, 백성들이 그들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모습이 권력으로 비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장직의 무거운 책임은 보지 못했습니다. 부모가 죽어도 장례에 참석할 수 없고, 엄격한 정결 규례를 지켜야 하는 제사장의 희생과 헌신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엄중한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직분이 있습니다. 비록 사람들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작은 섬김 하나하나가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귀중한 것입니다. 내 직분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직분만 부러워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섬김이 아닙니다. 더욱이 직분을 계급으로 착각하여 권력을 추구한다면, 이는 고라의 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거부하다
그러나 고라 일당의 죄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자체를 모독했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의 왕이 되려 하느냐" (민 16:13)
충격적인 표현입니다. 그들은 노예의 땅 이집트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을 젖과 꿀의 땅이라 선포하시며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계신데, 이들은 정반대로 이집트를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모세의 지도력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출애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미리암 사건에서 완전히 잘못된 교훈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방종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땅이 삼킨 심판
하나님께서는 고라 일당과 250명의 지휘관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시고, 각자 향로를 들게 하신 후 무서운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이르되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250명을 불살랐더라" (민 16:32-35)
고라와 그의 동조자들은 가족과 소유물과 함께 땅속으로 산 채로 떨어졌습니다. 이 심판은 깊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약속을 거부하고 땅의 것을 사모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영원히 땅에 속하도록 심판하신 것입니다.
천국을 향한 소망 대신 이 땅에 마음을 두는 자,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가나안 대신 일시적인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자는 결국 땅에 매몰되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집트를 젖과 꿀의 땅으로 착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영원한 천성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50명의 지휘관들 역시 나답과 아비후처럼 여호와의 불에 소멸되었습니다. 분별력 없이 거짓 지도자들의 선동에 휩쓸린 그들은, 누구의 음성을 들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진정한 지휘관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 귀중한 교훈을 남깁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섬김이라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필수불가결한 사역입니다. 직분을 계급으로 오해하여 권력을 추구하지 마시고, 섬김의 자리로 여기며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영원한 천성을 향한 소망을 품으십시오 이 세상을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 참된 안식이 있는 천국을 바라보며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사람들의 그럴듯한 주장과 선동에 흔들리지 마시고,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보존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천성을 사모하며, 사람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살아가는 참된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