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막을 향하여
민수기 2장
구심점의 지혜
모든 나라에는 반드시 수도가 존재합니다. 수도는 단순히 지리적, 정치적, 행정적 중심지의 역할을 넘어서 그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서적 구심점 역할을 감당합니다. 국민들은 자국의 수도를 통해 역사적 자부심을 느끼며, 오랜 세월 축적된 문화와 전통의 깊은 사연들을 공유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 역시 수많은 역사적 격변과 민족의 애환을 품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역사상 어떤 나라든 천도(遷都)는 매우 신중한 결정이었습니다. 명확한 명분과 국민적 공감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그만큼 수도가 갖는 구심적 역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참된 영적 중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정치적이거나 지리적인 중심이 아닌, 그들이 정착해 있을 때나 이동할 때나 변함없이 지켜야 할 영적 중심이 바로 회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방으로 진을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민 2: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진을 칠 때든 이동할 때든 반드시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진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나뉜 열두 지파가 각각 세 지파씩 배치되어 회막을 중심으로 하는 완전한 진형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방향에 어떤 지파들이 자리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세밀하게 지정해 주셨습니다.
레위 지파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들은 이십 세 이상 전쟁에 나갈 남자들의 계수에서 제외되었으며, 오직 회막과 그 안의 모든 기구들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거룩한 사명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곳에 정착해 있을 때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도전은 이동할 때 시작되었습니다. 민수기는 바로 이 이동의 여정을 다루는 책입니다. 시내산 기슭에서 시작하여 광야를 가로질러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그 장대하고 험난한 여행의 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고 성막 건축을 명령하시며 레위기의 제사 규례를 가르쳐 주신 후에야 비로소 이동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상상해 보십시오. 정착해 있을 때는 회막을 중심으로 넓게 진을 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이동할 때 회막과 보조를 맞추어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레위 지파가 어깨에 회막을 메고 나아가는데, 다른 지파들은 그들보다 너무 앞서가서도 안 되고 뒤처져서도 안 되었습니다. 항상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동일한 보폭으로 마치 한 몸처럼, 한 부대처럼 움직여야 했습니다.
남자만 60만 명이 넘고 여자와 노인, 어린아이까지 합하면 2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인구가 이렇게 질서 정연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말씀이 중심에
성막의 구조를 살펴보면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곳은 지성소입니다. 지성소 안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작된 언약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 귀중한 물품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두 돌판과 광야에서 내린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바로 십계명의 두 돌판,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따라서 성막을 중심으로 정착하든 이동하든 상관없이 항상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해야 한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보다 앞서 나가서도 안 되고, 어떤 어려움 때문에 말씀보다 뒤처져서도 안 되며, 자신들의 편의나 욕망에 따라 말씀의 궤도를 벗어나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착해 있을 때든 이동할 때든, 평안할 때든 어려울 때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 명령은 단순한 지시를 넘어서 실행하기 매우 어려운 도전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작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몇 명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고 해도 각자의 생각과 원하는 바가 얼마나 다릅니까? 아이들은 쉬고 싶어하고 간식을 사달라고 하며, 어른들은 계속 걷고 싶어하고, 남편은 북쪽으로 가자 하고 아내는 남쪽으로 가자 하니,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도 한 방향으로 맞추어 가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수백만 명이 성막을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처음에는 분명히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로 몸이 따라주지 않고, 개인의 의지와 집단의 움직임을 일치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가 어깨에 메고 나아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막을 중심으로 보조를 맞추어 행진하는 일은, 시간이 흐르고 함께 노력하며 인내하는 가운데 점차 가능해져 갔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는 분명히 고통과 어려움이 따랐지만, 하나님의 명령이었기에 반드시 순종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 자기들의 깃발을 따라 진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 (민 2:34)
"진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는 이 간단한 표현 속에는 얼마나 많은 수고와 인내, 그리고 순종의 땀방울이 스며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을 어려움과 고생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회막을 중심으로 한 삶의 원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변하지 않는 중심축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것들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인생의 참된 구심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관념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구현되어야 할 실천적 원리입니다.
둘째, 평안할 때나 어려울 때나 동일한 보조를 유지해야 합니다. 인생이 순탄하고 문제없을 때 말씀 중심으로 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의 시험은 이동할 때, 즉 어려운 상황과 복잡한 문제들이 몰려올 때 찾아옵니다. 그때도 말씀과 함께 걸어가며, 말씀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유지해야 합니다.
셋째, 매일의 영적 점검이 필수적입니다. 기도의 시간은 단순히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영적 위치를 점검하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살피며, 필요하다면 과감히 방향을 수정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 우리 각자에게 영적 좌표를 재점검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든, 어떤 상황을 맞이하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