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2장

성경
민수기

물질과 소유를 뛰어넘는 나그네 의식

민수기 32장

잃어버린 나그네 정신

2018년에 작고하신 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라는 노래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1965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당시 서울대 법대생이던 최희준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깊이 울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극심한 가난을 겪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 도시에 공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매우 팍팍하고 힘들었습니다. 큰 꿈을 품고 도시로 왔지만 삶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고, 저녁에 자신을 돌아보면 정말 나그네 인생 같았습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정도로 서글픈 그들의 정체성을 이 노래가 대변해 주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손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시절에 사람들은 자신을 나그네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스스로를 나그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살게 되었고, 부자가 되었으며, 건물과 땅을 소유하고 있으니 이제는 정착한 삶을 원할 뿐 나그네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유가 막은 신앙의 길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 (민 32:1)

오늘 본문의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직 요단강을 건너기 전인데도 이 두 지파는 많은 가축 떼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과 시선은 오로지 이 가축들을 어디서 목축할 것인가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들이 요단강을 건너기도 전에 이렇게 많은 가축을 소유하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서쪽을 따라 북쪽으로 진군하는 동안, 그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들을 정복하라 명하셨고,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들이 특별히 르우벤지파와 갓지파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이들은 전쟁을 통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많은 가축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가축 떼를 포기하기는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이 거대한 가축 떼를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하기에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웠습니다.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을 택한 결정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지휘관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민 32:2-5)

결국 이들은 모세에게 충격적인 청원을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목축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았으니 이곳에 머물겠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범한 심각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출국시켜 40년 동안 광야 여정을 걷게 하시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전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어주신 두 가지 중요한 정체성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나그네 정체성과 영적 군대의 정체성을 주셨습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거치며 나그네로 살았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야 할 시점에서 이 두 정체성을 한꺼번에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물질이 훔쳐간 영적 정체성

나그네 의식과 군대 정신을 앗아간 주범은 바로 물질이었습니다. 많은 가축들 때문에 그들은 나그네 의식도 포기하고 군대 의식도 내려놓았습니다.

나그네는 본래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많은 짐을 가지고 어떻게 나그네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천국을 목적지로 하는 나그네들입니다. 이 땅에서 뿌리 내리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가야 할 궁극적인 최종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천국을 향한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곳에 가서 뿌리내리고 살다가, 하나님이 떠나라 하시면 떠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런데 나그네를 나그네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지나치게 많은 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항상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면서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짐이 가벼워야 나그네 정신으로 살 수 있습니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의 실패는 물질을 소유한 것뿐만 아니라 나누지 못하고 포기하지 못한 것에 있습니다. 만약 나누어 주었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주실 약속의 땅과 그 땅의 금은보화, 젖과 꿀을 더 기대하고 소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충분히 포기하고 나눌 수 있었겠지만, 당장 손에 넣은 가축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여정은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대를 군대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인들이 배가 부르고 살이 찌면 어떻게 전투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많은 가축으로 인해 배가 부르고 살이 쪄서 더 이상 군인으로 살아갈 가치를 잃게 되었습니다.

타협과 절충의 위험성

모세는 이들의 청을 듣고 진노했습니다. 공동체 정신을 깨뜨리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가축과 어린 아이들은 여기 두고 공동체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치라는 것입니다. 무사히 정복 전쟁을 마치면 원하는 이 땅에 돌아와서 가축과 함께 정착하되, 공동체는 깨뜨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모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주의 종들인 우리는 우리 주의 명령대로 행할 것이라 우리의 어린아이들과 아내와 양떼와 모든 가축은 이곳 길르앗 성읍들에 두고 종들은 우리 주의 말씀대로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다 건너가서 싸우리이다" (민 32:25-27)

르우벤지파와 갓지파는 공동체 정신을 깨뜨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가축 떼를 포기하지 않고, 이곳에 가축과 어린 자녀들을 두고 건너가서 싸운 후 다시 돌아와 정착하겠다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공동체에 협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소유에 매여 있었습니다. 진정한 순종이 아닌 타협과 절충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 정체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십니다.

첫째, 우리는 천국을 향한 나그네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이외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면 포기할 때는 포기하고 나눌 때는 나누며, 집착하지 않고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영적 군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적진을 향해 악한 사탄의 권세를 파멸시키기 위해 영적으로 무장하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공동체의 사명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개인의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공동체를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가나안 땅이 우리의 땅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 이외에는 때로 내려놓을 수도 있고 집착을 포기할 수도 있으며, 나누며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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