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 은혜의 기업
민수기 34장
자녀의 용돈에 담긴 깊은 의미
자녀들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 부모님은 그 용돈을 선뜻 쓰지 못하십니다. 자녀들이 "택시도 타시고 맛있는 것도 드시고 친구들과 함께 계실 때 한턱도 내시고 마음껏 쓰십시오"라며 용돈을 드려도 쉽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를 여쭈면 "내 자식이 피땀 흘려 번 소중한 돈인데 내가 어떻게 함부로 쓸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액면가의 돈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일한 화폐 가치를 지닌 것 같지만, 그 출처와 배경을 살펴보면 각기 다른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집들을 돌아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니지만, 그 집들은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부가 신혼의 꿈을 키워나갔던 단칸방이 가장 소중한 분도 계시고, 첫 아이를 품에 안고 키워낸 보금자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한 십 년 넘게 정성껏 저축하여 마련한 자신만의 집이 가장 뜻깊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객관적으로는 동일한 주거 공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가치와 소중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엇이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달을 때 마음가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가나안의 참뜻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밝혀주시는 말씀입니다. 가나안 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단순히 하나의 지역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땅에 담긴 깊은 뜻을 설명해 주실 때, 우리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민 34:2)
이 말씀 속에 가나안 땅의 본질이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는 표현이 특별히 주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치열하게 싸워 정복한 후에야 비로소 그 땅이 너희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에 그곳이 너희의 기업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을 정복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넜고, 여리고성과 아이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남방과 북방의 왕들과 격렬히 싸웠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힘써 싸워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말씀과 실제로 전투를 통해 얻었다는 사실 중 어느 것이 참된 것일까요?
전투의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답이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 벌인 모든 전투에서 그들의 힘으로 승리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리고성 전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리고 성은 견고하고 강력한 요새였으며, 성문은 굳게 닫혀 있어 출입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되,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큰 소리로 외치며 나팔을 불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견고한 성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 사람도 피를 흘리지 않았고,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능력과 힘으로 정복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주신 땅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너희가 순종하기만 하면, 내 말씀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내가 이미 너희에게 주기로 작정한 땅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여 전투에 나섰을 때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할 때는 실패했지만, 순종할 때는 그 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저 주시려고 하시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들을 얻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발버둥치고 애쓰며 힘써서 얻어낸 것은 거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단지 말씀을 따르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들입니다. 우리는 그저 기도하고 순종하며 따라갔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거저 주셨습니다.
자녀들을 키울 수 있게 하셨고, 건강을 주셨으며,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셨고, 가정의 행복과 평안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약속의 땅이 지닌 의미를 깊이 깨닫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제비로 나누시는 하나님의 공평하신 섭리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느니라" (민 34:13)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모두 차지한 후, 하나님께서는 지파별로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하게 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 수도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살펴보면 비옥하고 아름다운 지역도 있고, 험준한 산악 지형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비뽑기로 땅을 나누면 어떤 지파는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어떤 지파는 척박한 산간 지역에 정착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가나안 땅 정복 과정에서 세운 공로에 따라 땅을 분배하면 안 될까요?"라고 건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그들의 힘과 공로로 차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파가 더 큰 공을 세워서 얻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전적인 순종을 통해 받은 선물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지파의 크기나 능력, 공로와 상관없이 모든 지파에게 공평하게 제비를 뽑아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가장 잘 나타내는 교회공동체의 특성과 일치합니다. 교회공동체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지위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맡은 모든 봉사는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목회자의 자리든 평신도의 자리든,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떤 일로 섬기든,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한 가치를 지닙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살아간다면, 내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직분으로 섬기든 다른 사람을 향한 질투심이 사라지고, 타인에 대한 불평과 불만도 자연히 사라질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여준 성숙한 동역의 아름다움
"너희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의 이름은 이러하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니라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각 지파에 한 지휘관씩 택하라 그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민 34:17-19)
이 명단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두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이들의 위치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최고 지도자로서 땅을 분배하는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전체를 이끌어가는 후계자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반면 갈렙은 유다 지파의 한 지휘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과거에 함께 특별한 사명을 감당했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께서 각 지파별로 정탐꾼들을 세우시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을 때,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은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보고를 올렸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적인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에게만 가나안 땅에 입성할 특권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은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온 이스라엘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한 지파의 지휘관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갈렙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놀랍게도 갈렙은 하나님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깊이 다스렸습니다. 혹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질투나 서운함을 철저히 정리하고, 그러한 감정을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은 바로 이러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위치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곳, 그곳이 바로 참된 가나안 땅의 성격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많은 질투와 시기심을 느끼곤 합니다.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는 일마다 형통한데, 나는 왜 수십 년이 지나도 늘 제자리걸음인가?"라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여호수아도 귀하고 갈렙도 똑같이 귀한 존재입니다. 어쩌면 갈렙이야말로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지키고 세워나간 위대한 이인자의 삶을 살아낸, 하나님 앞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렙이 있었기에 여호수아가 더욱 빛날 수 있었고, 갈렙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아름답고 화목한 공동체로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가나안 땅은 순전한 은혜로 받은 거룩한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힘쓰고 애쓰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신 복이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값없이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에는 높고 낮음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공동체에서 맡은 모든 자리는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소중하고 귀합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서 섬기든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비를 뽑아 맡겨주신 거룩한 사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성숙한 신앙인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충성합니다. 갈렙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위치에서 질투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나안 땅에 담긴 깊은 의미와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의 삶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귀한 진리가 우리 삶의 든든한 기초가 되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복된 여정을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