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5장

성경
민수기

도피성 제도

민수기 35장

이성과 감정의 위험한 불균형

사람은 이성과 감정이라는 두 축으로 작동하는 존재입니다. 이성은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때로는 차갑기까지 하지만, 올바로 활용하면 상황을 정확히 분별하고 지나치지 않으며 실제적인 유익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줍니다.

반면 감정은 차가운 이성에 생기를 불어넣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소중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감정이 잘못 작동하게 되면 이성을 마비시키고 심지어 이성을 완전히 삼켜버릴 수도 있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작은 것이 또 다른 부정적인 감정을 낳으며 무서운 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개인의 마음속에 불안이 하나 생기면 그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불러오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큰 불길이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로 확산됩니다. 공동체 가운데 한 사람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불평하기 시작하면, 그 불평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퍼져나가 별것 아닌 문제가 공동체 전체를 큰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만듭니다. 감정의 가장 위험한 특성은 바로 이러한 상승작용과 연쇄작용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전혀 악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었다면, 그 피해를 당한 사람의 격한 감정이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도피성의 지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염려하시어 오늘 본문에서 도피성 규정을 말씀하셨습니다. 고의가 아닌 살인, 즉 악의 없이 사람을 죽게 한 자가 감정에 사로잡힌 유족들에게 보복당하지 않도록 피할 곳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을 도피성이 되게 하되" (민 35:11-13)

이 말씀은 요단강 동편 모압평지에서 주신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한 후 요단강 동편에 세 곳, 서편에 세 곳, 총 여섯 군데를 도피성으로 지정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도피성 제도의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이 정식 재판을 받기까지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의 보복살인을 당하지 않도록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살인자를 보호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 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민 35:16-18)

철기나 돌, 나무 연장을 들고 사람을 죽인 자는 도피성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의도성과 계획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리 무기를 준비하고 악한 감정을 품고 살인을 저지른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반면 진정으로 부지중에 살인한 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보호를 약속하셨습니다.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헤아려 한 것도 아닌 즉" (민 35:22-23)

하나님께서는 부지중 살인의 범위를 이처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규정하셨습니다.

도피성 제도

하나님께서 이처럼 도피성 규정을 세우시고 부지중 살인자를 보호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감정적 보복의 연쇄를 차단하여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 깊은 의도와 동기를 살펴보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대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때, 우리가 예상치 못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을 죽게 되는 비극적인 사고도 포함됩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피해 당사자의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의 마음은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됩니다. 감정이 폭발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엄청난 상승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피해보복을 다짐하며 "내 소중한 가족을 죽게 한 자를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복수심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 일이 진정 악의 없이, 고의성 없이 일어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마음의 의도가 순수했다면, 그 사람을 정식 재판을 받을 때까지 도피성에서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의 정의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러한 도피성 제도를 마련하지 않으셨다면, 공동체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분열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하나의 사고가 발생하면 그로 인한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낳고, 보복이 보복을 부르며 끝없는 원수 갚기의 악순환이 계속되어 결국 공동체 전체가 파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감정적 보복의 연쇄고리를 끊으심으로써 소중한 공동체를 보호하고자 하셨습니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보다 말씀이 우선해야 함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피해 당사자가 되어보면 누구든지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데, 내 소중한 가족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죽음을 당했는데, 어찌 화가 나지 않겠으며 감정이 격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그런 극한 상황에서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은 감정에 지배당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진리 말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먼저 지배당하며 살아갑니다. 일단 감정이 폭발하면 그 격한 감정대로 화를 쏟아내고, 거친 말을 내뱉고, 때로는 폭력적 행동까지 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며 자책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습니다.

이런 패턴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사탄은 우리의 감정 영역에 확고한 거점을 마련합니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인 감정을 장악하여 결정적인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심지어 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부지중 살인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에서라도, 우리의 격한 감정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도록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사탄은 온갖 상황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할 것입니다. 우리를 피해자로 만들어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고, 분노하게 하며, 불편하고 괴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감정보다 우선한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이 먼저 작동하면 격한 감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상황을 분별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이것이 개인이 승리하며 사는 비결이요, 공동체가 질서 있고 평화롭게 사는 지혜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깊은 의도와 동기를 살펴보십니다. 부지중에 범한 죄와 고의로 범한 죄를 명확히 구별하여 다루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항상 순수한 마음과 선한 의도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보다 말씀이 우선해야 합니다. 아무리 격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감정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셋째, 공동체를 보호하는 거룩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개인의 격한 감정이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제하고 조절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수많은 상황들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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