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민수기 6장
어린아이의 사랑
어린아이들은 놀라운 직감으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분별해냅니다.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는지, 누가 진정으로 자신을 아끼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챕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순수한 재롱을 부리며 자신이 지닌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어줍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용돈을 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다 주어도, 아이들은 그런 선물에만 매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존재 자체로 기뻐하며, 함께 있는 시간에 자신의 사랑을 마음껏 표현합니다. 이렇게 순수한 어린아이의 사랑을 받은 어른들은 더욱 그 아이를 기뻐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베푸시는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보다 복의 내용물에만 관심을 쏟습니다. 복의 근원을 올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기뻐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을 누릴 자격을 갖추게 되고 그 복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게 됩니다.
복의 근원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아론의 축복입니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세우신 최초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이 대제사장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은 자손 대대로 이어져 출애굽 때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전승되어 왔으며, 지금도 우리에게 그 축복의 계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민 6:22-23)
아론의 축복이라고 하면 아론이 스스로 기도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아론에게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축복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4)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 6:27)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아론의 축복 기도문 첫머리와 마지막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가 복을 주신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명확히 선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의 부산물과 내용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실 때도,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여정을 걸어간 이유는 하나님 자체를 믿고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복의 내용에 현혹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약속도 자연스럽게 믿고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누가 나에게 복을 주시는지, 복의 주체가 누구신지를 분명히 깨닫고 기억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를 훈련하시고 시험하실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시험과 시련을 넉넉히 이기고 믿음으로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복의 내용물에만 관심을 둔다면,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를 시험하시거나 훈련하실 때 하나님을 망각하고 다른 길로 빠져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복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기억하고 깨닫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이제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복, 아론의 축복을 통해 베풀어주시려는 복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봅시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5-26)
동일한 내용이 두 번 반복되는데, 핵심은 "여호와의 얼굴"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다윗이 즐겨 사용한 것으로, 하나님의 손이나 하나님의 팔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손과 팔은 강한 능력과 힘, 그리고 부귀영화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손과 능력은 우리에게 주시려는 구체적인 복의 내용을 의미하는 반면,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 자체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아론을 통해 주시려는 복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린 부귀영화나 능력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것, 즉 하나님의 존재 자체인 그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고 우리를 향해 드신다는 하나님 존재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에게 두 가지 놀라운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감히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매 순간 하나님의 얼굴이 나를 주시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대담하게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길을 걸어가고 죄악된 길을 택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해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고 계시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즉시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건져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눈동자같이 우리를 살피시고, 언제나 관심을 기울여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부귀영화보다 훨씬 더 값진 은총이요 복입니다.
죄에서 떠나게 하시고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는 이 복이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은혜와 평강
25절과 26절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두 단어가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주 사용한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복에는 은혜와 평강이 필수적입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는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을 은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건져주신 것이야말로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죄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강권적인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복입니다.
평강은 어떻습니까? 평강은 전쟁이 없는 상태, 우리 가정과 일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가정의 자녀들이 모두 건강하고, 생업에 걱정이 없으며, 외부의 침입이 없고, 나라가 전쟁을 겪지 않으며, 우리가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중의 복입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고 가정에 병든 사람이 있으며 문제가 생긴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평강 가운데 있을 때는 평강이 참으로 큰 복이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평화롭게 살아가며 평강 가운데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복입니다. 여기에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평강의 복을 주셨으며 여호와의 얼굴을 우리를 향해 드시고 계시니, 우리에게 더 구할 것이 있겠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복의 내용보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 자체에 관심을 두고,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죄에서 떠나게 하시고 위기 때 도우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며, 물질적 복보다 훨씬 귀중한 은총입니다.
셋째, 은혜와 평강이라는 하나님의 복을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와 일상의 평강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모든 복을 주시는 원천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깊이 새기시고, 오늘 하루도 이 복 가운데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