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칠년 끝에는 면제하라
신명기 15장
이익보다 나눔의 원리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사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누구든지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서도, 공동체와 공동체의 관계에서도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지 결코 손해를 감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경제 원리 역시 이익 창출에 기반합니다. 회사를 설립하는 이유도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만약 기업이 자본금을 소진하거나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폐업이나 구조조정을 실시하거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익 창출을 위한 대안을 모색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원리는 나누어 주고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 시대부터 신약 시대를 거쳐 교회 시대까지 일관되게 흘러온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입니다. 자본주의 경제 논리로 볼 때 교회는 존립할 수 없어야 마땅하지만, 오늘날에도 교회는 여전히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안식년과 면제의 법도
"매 칠년 끝에는 면제하라" (신 15: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 말씀은 '손해를 감수하고 나누어 주라'는 명령입니다. 매우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안식년의 원리를 재확인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는 모세가 모압 벌판에서 요단강을 건너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한 회고이자 설교입니다.
이제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하게 될 터인데, 7년마다 한 번씩 안식년을 맞이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빚이 있거든 면제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 율법은 레위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명확하게 요약하여 제시하신 것입니다.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신 15:2)
채권자는 자신에게 빚을 진 사람들의 채무를 면제해 주고 독촉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매 7년마다 안식년이 될 때마다, 그 기간 동안 누군가에게 빌려준 모든 빚을 면제해 주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 원리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신 15:4-5)
이 말씀이 놀랍지 않습니까? 돈을 빌려주고 회수하지도 못했는데,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채권을 포기한다면 현상 유지조차 어려울 터인데, 어떻게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확신에 찬 말씀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사유재산에 이토록 깊숙이 개입하시는 것이 가능한가, 인간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까지 명령하시는 것이 타당한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실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 그 자체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중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바로가 끝내 고집을 부리자,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재앙까지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땅의 모든 가정의 장자를 죽음의 사자를 통해 치실 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만은 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안에 머물면 죽음의 사자가 넘어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죽음을 면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자들은 그날 밤 장자의 죽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기념하여 모든 초태생을 하나님께 바치라 명하셨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출애굽 여정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손에 멸망당할 뻔한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의 두 돌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40일간 머물 때, 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시어 이 백성들을 모두 멸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가 목숨을 걸고 중보 기도를 드렸습니다. "차라리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릴지언정 이 백성들을 멸하지 마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한 번 더 용서해 주셨습니다.
가데스바네아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이 돌아와 엇갈린 보고를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 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충을 보시고 크게 실망하시어 광야에서 모두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도 모세가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40년간 광야 생활로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고 호흡을 허락하시고 삶을 보장해 주신 하나님께서, 경제적 이익을 조금 포기하라고 하시는 것을 감히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교훈
그렇다면 이 말씀이 구약시대에만 적용되는 교훈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생명을 얻은 존재들입니다. 이 땅에서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 허락받았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영혼의 구원을 이미 확실하게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천국 시민권을 확실히 얻은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면제해주는 일을 감당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그러한 삶을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타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일만 달란트는 평생을 벌어도, 자손 몇 대가 벌어도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 금액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그 막대한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그는 화를 내며 빚을 갚지 않는다고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인이 분노하여 그를 불러 책망했습니다. "너는 왜 내가 일만 달란트를 면제해 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우리가 바로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형제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거저 주신 존재들이기에, 우리 역시 이웃들에게 베풀 수 있는 관대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둘째, 교회는 마땅히 면제하고 나누어 주며 베푸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여유와 넉넉함을 잃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며 면제해 주고 나누어 주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고귀한 원리를 실천해야 합니다.
셋째, 가장 귀한 생명을 받은 우리는 여유로움과 넉넉함과 베품의 삶을 구현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보여주는 신실한 믿음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귀한 진리가 우리 삶의 견고한 기초가 되어, 날마다 나눔을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거룩한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