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의 권리와 의무
신명기 18장
진실의 양면성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때때로 막연하게 이민자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외국에서 살면 멋진 풍경도 구경할 수 있고, 자녀들을 선진 교육 시스템에서 가르칠 수 있으며, 위험한 이웃 국가의 위협에서도 자유로우니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실제 이민자들이 듣는다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분개할 것입니다. 이민자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언어의 장벽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민자 2세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땅 사람들과 피부색도 언어도 부모의 문화적 배경도 다르기에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가치관의 혼돈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지속되며, 이것이 정립되기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한쪽 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모든 결정권을 쥔 경영진들을 보며 막연히 "저분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개인 사무실에서 별다른 업무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자리에 서보면 그곳은 무겁고 힘든 자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이처럼 한 면만 보고 선악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레위인에 대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그들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말씀입니다.
분깃도 기업도 없는 레위인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신 18:1)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에게 "너희는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 모압 벌판에서 전한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지파별로 제비뽑기를 통해 토지를 분배할 때에 대한 지침이었습니다.
열두 지파가 땅을 분배받지만, 레위 지파만은 토지를 받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열두 지파가 될 수 있을까요? 요셉의 후손을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로 나누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12개 지파가 12구역으로 나뉜 땅을 제비뽑기로 분배받게 되지만, 레위 지파에게만은 토지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의 거점 도시들을 정하시고, 레위 지파 사람들을 이 도시들에 분산 배치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이상적 정치 체제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에게 세 가지 중대한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첫째는 예배 인도, 둘째는 재판 업무, 셋째는 신앙 교육입니다.
그들은 각자 배정받은 지파의 중심 도시에서 그 지파 백성들의 예배를 인도하고, 분쟁이 발생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재판하며, 믿음의 후세대들이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가르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토지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땅의 소산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목초지도 없었기에 농업에 종사할 수도, 목축업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야 했을까요?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심
"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과 같으니라" (신 18:2)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의 생계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하셨습니다. 그들이 재판해 주는 백성들과 신앙 교육을 받는 성도들이 성전에 가져오는 각종 예물과 제물을 통해 레위인들을 부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레위인들에게는 일반적인 노동이나 목축업이 면제되는 대신, 그들에게 주어진 세 가지 중대한 사명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신다"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백성들을 통해 레위 지파를 부양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면제받습니다.
그런데 이 한 면만 보고 "레위인들은 일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반대로 그들에게 토지도 없고 기업도 없다고 해서 "레위인들은 참으로 불쌍하고 불행한 지파다"라고 여기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레위 지파에게 생계를 위한 노동까지 면제해 가며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사명의 중대함과 전문성
이는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에게 부여하신 사명과 책임이 그만큼 중대하고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배를 인도하는 일, 분쟁이 발생했을 때 말씀에 근거하여 조정하는 일, 다음 세대 신앙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은 전심전력을 다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최선을 다해도 완전히 해낼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인 농업이나 목축업에 마음을 쓰면서 동시에 이런 영적 사명들을 제대로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직무가 얼마나 중요하며 이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레위 지파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분명히 인식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 목회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목회자들은 교회의 예배를 집례하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할 때 말씀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해석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사명을 맡았기에 성도들이 목회자의 삶과 생활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직들은 주일 예배 시간에 강단에서 성도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간절히 대표 기도를 올립니다. 공예배에서 성도들을 대신하여 기도하는 이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에 성도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존경만 받고 기도만 하면서 그에 합당한 실제적 행동은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이를 악하게 보실 것입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통해 생활이 보장받으면서도 본래 맡았던 예배의 책임, 말씀으로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책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고 목양하는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가만히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처럼 권리와 의무, 그리고 책임 사이의 균형에서 하나님께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신 만큼 생활을 보장해 주시고, 중직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베풀어 주시는 만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그만큼 중대하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영원한 원리
이 원리를 더욱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 구원받은 존재들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장 귀중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받은 이 구원의 은혜에 합당하게 성도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책망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성도답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바입니다.
장소를 초월한 영원한 정체성
"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이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가 조상의 것을 판 것은 별도의 소유이니라" (신 18:6-8)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가문에 따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거점 도시들에 분산 배치하셨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옮겨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므낫세 지파 거점에 거주하던 레위인이 에브라임 지파의 도시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나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 그들은 거주지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거주지를 옮긴다 하더라도 어디를 가든지 레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원래 므낫세 지파에 배치되었던 레위인이 에브라임 지파의 거점 도시로 이주해도 여전히 레위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는 한 번 레위인으로 택함받은 자는 어디를 가든지 영원한 레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번 기름부음받은 중직은 어디를 가든지 중직이며, 한 번 성도가 된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 곧 성도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때로 어리석고 분별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가면 "오늘은 성도로서 살지 않고 세상 사람처럼 마음대로 살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는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목사도 성도도 아니고, 그냥 세상 사람처럼 행동하겠다"며 함부로 어리석은 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어디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리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권리와 의무는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레위인이 토지를 분배받지 못한 대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계를 친히 책임져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와 혜택만큼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목회자와 중직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받은 은혜와 축복만큼 그에 합당한 사명을 충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중대함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으로 선악을 분별하며, 신앙 교육을 담당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사명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의 생계까지 보장해 주신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사명이 중대하고 전문적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장소와 상황을 초월한 신앙인의 정체성을 견지해야 합니다. 한 번 성도가 된 자들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어디를 가든지 영원한 성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보고 계시므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한 번 성도가 된 자들은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어디를 가든지 영원한 성도임을 기억하고 깨달아,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명에 따라 성도다운 삶을 충실히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