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현실화하는 법
신명기 19장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이상과 현실은 결코 동일한 선상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이상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자리하고, 현실은 그보다 낮은 곳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상이 하늘 꼭대기에 있는데 현실이 땅바닥에 있다면,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깊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거철마다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제시하는 공약들을 살펴보면 모두 훌륭한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그 공약들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우리나라는 금세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선 이후 이러한 공약들을 실천하고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현실의 벽이 높기 때문에 공약이 현실로 변화하는 과정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약을 수정하거나 국민들께 양해를 구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진정한 선진국이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꾸준히 좁혀나가는 나라를 말하며, 실력 있는 지도자란 바로 그 간격을 메워나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정치와 법은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하는 법체계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창조하신 당신의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이상을 품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하는 그 이상이 현실화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법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신명기 법전은 하나님의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법으로서, 그 법은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도피성 규정: 생명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사랑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자라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혀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신 19:4-5)
하나님께서는 이미 민수기에서 요단강 동편에 도피성 세 곳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요단강 서편을 정착한 후에도 그곳에 도피성 세 곳을 추가로 설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기준으로 동편에 3곳, 서편에 3곳, 총 6곳의 도피성을 설치해야 했습니다.
도피성은 고의가 아닌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지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인해 이성을 잃고 보복을 다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보복살인을 방지하기 위해 고의가 아닌 살인자가 피할 수 있는 도피성을 마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살인자가 도피성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그 본성의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혈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신 19:11-12)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살인을 저지른 자들은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고 명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도피성 제도를 두신 목적은 명확합니다. 바로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억울한 보복살인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사랑이 도피성 규정이라는 법으로 구체화되고 현실화된 것입니다.
경계표 규정: 생계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배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신 19:14)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두 번째 법은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규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착한 후에는 지파별로 토지를 분배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밀한 측량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지파별, 가문별, 가정별로 경계표를 세워 토지의 경계를 구분했습니다.
농업과 목축에 의존해야 하는 그들에게 경계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토지의 크기가 곧 생산량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밤중에 일어나 경계표를 몇 발자국씩 옮겨버린다면,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은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불의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표를 옮기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셨습니다.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자들의 생계 터전을 빼앗지 못하도록 법으로 명문화하신 것입니다. 이 또한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율법입니다.
증인 규정: 공정한 재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신 19:15)
과학수사가 없던 시대에 분쟁이 발생하면 증인의 증언에만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판결을 확정하지 말고, 반드시 두 명 이상의 증인이 동일한 증언을 할 때만 그 증언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개인적 원한을 품은 자가 거짓 모함을 통해 무고한 사람을 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지혜로운 규정이었습니다.
사랑에 기초한 법의 본질
이 세 가지 율법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도피성 규정, 경계표 규정, 증인 규정 모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억울한 보복살인을 당하지 않도록, 아무도 생계의 위협을 받으며 굶주리지 않도록, 아무도 부당한 송사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법으로 명문화해 두셨습니다.
법 시행의 핵심: 사람의 마음
그런데 여기에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법이 아무리 완벽하고 아름다울지라도, 그 법을 운영하고 실행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도피성을 관리하는 장로가 뇌물을 받고 고의적 살인자를 무죄로 세탁해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경계표를 불법으로 옮긴 것이 명백한데도 재판관이 권력자의 편을 들어준다면 하나님의 경계표 규정이 무의미해지지 않겠습니까? 앙심을 품은 자가 거짓 증인들에게 뇌물을 주어 무고한 사람을 모함한다면, 이 역시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법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사람의 문제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도 여기에 있습니다. 후진국에도 법과 제도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 법과 제도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법을 준수하느냐,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바로 선진국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사명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창조하신 법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법으로 다스리려 하시는데, 그 다스림에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오늘도 세상 가운데로 나아갑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모든 법은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도피성 규정, 경계표 규정, 증인 규정은 모두 백성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제정된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억울함을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둘째, 훌륭한 법도 이를 실행하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 아무리 완벽한 법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운영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부패하고 이기적이라면 법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선진 사회와 후진 사회의 차이는 법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실천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현실화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도록 하는 중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준수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아름답고 놀라운 하루를 경험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