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지키며 살아가는 지혜
신명기 23장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삶의 철학
논어에 나오는 말 중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무엇에든 모든 일에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모자란 것도 문제가 되지만, 지나친 것은 그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는 것이 우리가 삶을 통해 체험한 바입니다.
공자가 전한 논어의 이 말씀이 오늘날까지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균형과 절제의 선을 지키며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을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적당한 것이 가장 어렵지 않습니까? 적당한 양을 먹는 것,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것, 또는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실상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조금 무리하면 지나치게 되기 쉽고, 조금 지나치지 않으려고 하면 그보다 모자라게 되기 쉽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선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신앙생활하고 기도하는 것에도 지나치게 되기 쉽고 적절한 선을 지키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러주시는 말씀의 핵심은, 선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공동체 앞에서 적절한 자리를 유지하라는 지혜의 교훈입니다.
물질 관리에서 지켜야 할 지혜의 선
"네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신 23:19)
형제에게, 즉 동족들과 이웃들에게 돈을 꾸어주든지 곡식을 꾸어주든지, 이자를 받을 만한 그 어떤 것을 꾸어주더라도 절대로 이자를 받지 말라고 엄명하셨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극심한 가난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 이때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가서 돈을 꾸든지 곡식을 꾸든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네 이웃 가운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너는 돈을 꾸어주거나 곡식을 꾸어주어도 결단코 이자를 받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돈을 꾸어주는 자나 꾸는 자나 모두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위한 지혜로운 장치입니다.
돈을 꾸는 자의 입장에서는 급박한 상황이기에 빌리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자가 또 다른 이자를 낳고 원금에 이자가 붙고 그 이자에 또 다른 이자가 붙게 되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원금조차 갚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그 사람은 극심한 가난의 늪에서 영영 헤어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원금만 받고 이자는 절대로 받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빌려주는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보호 장치이기도 합니다. 빌려주는 사람이 이자놀이를 하기 시작하면 탐심이 또 다른 탐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경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게 되고, 결국은 자기가 가진 돈으로 이웃을 압제하며 하나님보다 물질을 의지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빌려주는 사람도 결단코 돈을 의지하지 않도록 이자를 받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는 물질에 있어서 중용의 도를 지키고 적절한 절제를 유지하며, 물질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을 지키라는 사랑 깊은 경고이자 지혜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질 문제에서 선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땀 흘려 번 돈이고, 내가 피땀 흘려 일군 재산인데 여기에 대해서 선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에 너무 많이 집착하면 건강을 해치기 쉽습니다. 물질에 너무 많이 매달리면 내 모든 것을 거기에 다 쏟아붓게 되고,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사람도 잃고 시간도 잃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놓아주는 것도 필요하고 적절하게 내려놓는 것도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깊은 지혜의 말씀입니다.
기도 생활에서 지켜야 할 영적 균형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신 23:21)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서원 기도의 명확한 원칙을 정해두셨습니다.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신 23:22-23)
만약 서원에 대한 이런 규정이 없고 이런 법칙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앞다투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쏟아붓고 서원 기도를 남발할 것입니다. 이루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싶은 것들이 워낙 우리 마음속에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형식을 완벽히 갖추었다고 해서, 유려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기도한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기도는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들을, 내가 하나님 앞에 입을 열어 기도하는 것들을 모두 기록해 본다면, 그 안에 내 욕망, 내 욕심, 또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눈살을 찌푸릴 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처럼 서원 기도의 한계를 분명히 정해 놓으신 것은, 기도할 때 자신을 살펴보고 돌이켜보며 과연 이것이 합당한 기도인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단순히 내 욕망을 들어주는 우상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깊이 살펴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욕심과 내 욕망, 내가 가진 사적인 소망들을 기도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 사실 참된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나를 깊이 살피고 내 내면을 점검하며 나의 행위를 돌아보고, 어제 하루 오늘 하루 나의 지난날들에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영적 행위입니다. 그런데 나를 성찰하는 행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내 욕심만 구하는 기도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으로 고쳐져야 할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이 거룩한 자리에 나왔는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겸손히 돌아보고 나를 깊이 살피며 진실하게 묵상하는 아름답고 거룩한 기도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공동체 윤리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신 23:24-25)
이웃의 포도밭에 들어가서 네가 먹을 만큼 포도를 따서 먹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릇을 가지고 들어가서 포도를 담아가는 것은 이웃이 피땀 흘려 이룬 농사에 해를 끼치는 일입니다. 곡식밭에 들어가서 혼자 배가 고파 이삭을 따서 먹는 것, 거기까지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나 낫을 가져다 대는 것은 명백한 도둑질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반드시 적절한 선을 지켜 행하며 살아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농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서리'의 아름다운 원칙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과거 한 세대, 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농촌에서 어린 아이들이 서리를 자주 해 먹지 않았습니까? 고구마나 감자, 땅콩 같은 것들을 서리할 때는 결코 뿌리째 뽑아 올려서 농사 자체를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흙을 파서 한두 알 정도만 가져다 먹는 것은 얼마든지 용인하고 용납할 수 있는 서리의 범주였습니다.
수박이나 참외를 서리할 때도 두둑을 함부로 밟아서 줄기를 상하게 하여 농사 자체를 망치는 일은 하지 말라고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고랑을 조심스럽게 밟고 들어가서 잘 익은 것들을 골라서 먹는 것은, 주인이 알아도 너그럽게 모른 척해 주는 것이 농촌의 정서였습니다.
주인도 서리하는 아이들을 발견하면 큰 소리를 질러서 아이들을 놀라게 하거나 도망가다가 넘어져서 농작물을 망치게 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멀리서 헛기침을 하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는 시간을 넉넉히 벌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농촌의 따뜻한 낭만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적절한 선을 지키며 배려하는 공동체의 아름다운 규약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농촌 공동체에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율법에도,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서로 간에 용인할 수 있는 합리적 범위가 있고 그렇지 못한 범위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다고 지혜롭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물질 관리에 있어서 지혜로운 선을 지켜야 합니다.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규칙이 아니라, 탐심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사는 신앙의 핵심 문제입니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욕심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적절한 절제와 내려놓음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둘째, 기도 생활에 있어서 영적 균형을 지켜야 합니다. 기도는 내 욕망을 투사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돌아보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내면을 정직하게 점검하며 하나님의 참된 뜻을 간구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도의 본질입니다.
셋째, 이웃과의 관계에서 공동체 윤리를 지켜야 합니다. 서로 간에 용인할 수 있는 합리적 범위가 있고 그렇지 못한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아름다운 규약을 지키며 서로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지혜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전의 지혜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균형과 절제의 어려움이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보편적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적절하고 지혜로운 선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자리와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성숙하고 지혜로운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