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4장

성경
신명기

허술함이 주는 은혜의 법

신명기 24장

관대함의 참된 힘

어린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유독 따르고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의 넘치는 관대함 때문입니다. 심부름을 시키고도 거스름돈을 그냥 용돈이라며 받지 않으시고, 텔레비전 앞에서 숙제를 미루며 빈둥거리고 있어도 따끔한 잔소리 대신 부드러운 격려로 이끌어 주시며,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고집으로 떼를 써도 웃는 얼굴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려 애쓰십니다. 이처럼 관대하고 여유로운 마음에 아이들은 편안함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엽니다.

이러한 모습은 어린아이들만의 특성이 아닙니다. 성인이든 아이든 누구나 마찬가지로 관대한 사람, 조금의 여유와 빈틈이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하고 따르게 됩니다. 반면 빈틈없이 완벽하고 꼼꼼하기만 한 사람, 관대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엄격함으로만 일관하는 사람들과는 함께하기 어려우며, 그런 분들이 진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물론 업무의 성격에 따라서는 정확하고 꼼꼼한 처리가 반드시 필요한 영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약간의 허술함이, 때로는 조금의 빈틈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히 숨 쉬게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귀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허술한 법의 지혜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해주신 율법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허술하게 할 것을 명령하심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약자들이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은혜로운 공간을 마련해 주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담보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담보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신 24:10-11)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 담보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 집에 직접 들어가서 적절한 담보물을 선택해 가져오거나 뒤에서 지켜보며 감시하지 말라고 엄히 명령하셨습니다. 오히려 문 밖에 서서 기다리며, 그 사람이 스스로 집에 들어가서 담보물을 선택해 가져오면 그 가치의 적절성을 따지지 말고 묵묵히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명백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빌려준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때로는 30%에도 못 미치는 가치의 담보물을 내어놓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른 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그가 네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거류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신 24:14-15)

누군가에게 일을 맡겼다면 그 일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당일에 지불하라는 말씀입니다. 며칠간의 일을 맡겼을 때, 그 기간 동안 과연 성실히 일했는지,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는지, 문제는 없었는지를 세심히 관찰한 후 품삯을 주겠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이 모두 끝난 후에 꼼꼼히 검수하여 문제점을 발견하면 원래 약속한 품삯에서 일정 비율을 감액하는 그런 방식을 취하지 말고, 매일매일 수고한 만큼의 품삯을 그날그날 지불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상대방이 가난한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 24:19)

추수의 계절, 바쁜 농사일 중에 깜빡하고 한 단의 곡식을 밭에 놓고 온 일이 있다면, 나중에 기억이 나더라도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분명히 내가 흘린 땀과 수고로 거둔 소중한 결실이건만, 그것이 내 것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가 그것으로 허기를 채우고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그냥 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네 감람나무를 뜬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에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신 24:20-21)

'남겨두라'는 말씀을 거듭하여 강조하십니다. 지나치게 꼼꼼하게 모든 것을 다 털어가지 말고, 지나치게 철저하게 모든 것을 다 수확하려 하지 말며, 한 번 수확한 후에는 다시 돌아가 빠뜨린 것을 찾으려 하지도 말고, 그 남은 것들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 자연스럽게 남겨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허점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이러한 율법들을 종합해보면, 사실 악한 마음을 품은 자들이 악용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들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 돈을 빌리면서 그 가치에 턱없이 못 미치는 담보물을 내어놓거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매일의 품삯을 당당히 받아가거나, 부유한 자들의 농장에서 그들이 깜빡 놓고 간 것들을 노려보며 기회를 엿보는 일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도적 허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허점들을 의도적으로 보완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몇몇 악한 사람들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보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연약한 계층인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 가난하고 빈궁한 자들이 이런 넉넉한 법 안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편안히 숨 쉬며 쉴 만한 안식처를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배려하신 것입니다.

현실 사회의 법체계를 살펴보면, 가난한 자들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꼼꼼하며 촘촘하게 빈틈없이 적용되는 반면, 재산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의외로 허술하고 관대한 면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반대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는 오히려 느슨하고 여유로운 기준을 적용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모든 구성원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은혜로운 공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누려야 할 허술함의 은혜

하나님께서 이처럼 허술한 법을 명령하신 데에는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신 24:18)

'속량'이라는 단어가 여기 등장합니다. 이는 곧 구원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내어 구원하신 그 은혜를 기억하며, 너희도 이와 같이 관대하고 허술하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실상과 그들의 죄악에 따라 엄격히 심판하셨다면, 그들이 지금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마지막 설교를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결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엄격히 심판하신다면, 우리는 지금 이 거룩한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품는 생각들이 얼마나 자주 악하며, 우리의 계획들이 얼마나 자주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못한지, 우리가 입으로 내뱉는 말들과 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동들이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엄하게 징계하셨다면, 우리는 두려움으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며, 어떻게 감히 이렇게 자유롭게 세상을 다닐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근본적으로 죄악된 본성을 타고난 존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받은 후에도 여전히 매일같이 영적으로 더러워지는 연약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아시면서도 못 본 체 해주십니다. 때로는 오래 참고 기다려주십니다. 모든 것을 환히 알고 계시면서도 눈감아 주시고, 우리의 게으름과 부족함마저도 묵과하시며 넘어가 주십니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량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마음이 상하시고 속이 쓰리시며 참기 어려우실 때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바라보시며 기대하시고 기다려주시며 참아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웃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빈틈없이 행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실제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내가 가진 실력과 역량이 겨우 50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500에 해당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남들보다 특별히 뛰어난 능력이나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먹고 사는 문제로 큰 어려움 없이 살게 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며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나 자신이 가진 실제 능력보다 훨씬 더 많은 대접과 대우를 하나님께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가진 능력에 정확히 비례해서만 하나님께서 먹여 살리시고 돌보셨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풍요롭게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덧입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속량받고 구원받아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사는 우리가, 어찌하여 자녀들과 이웃들, 주변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꼼꼼하고 빈틈없이 대하며 그들에게 수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허술함을 통한 배려의 거룩한 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고 빈틈없는 제도보다 사회적 약자들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제도를 더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모든 것을 철저히 따지고 계산하기보다, 연약하고 소외된 이들이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둘째, 구원받은 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관대함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참고 기다리시며 눈감아 주셨듯이, 우리 또한 이웃들의 연약함과 실수들에 대해 너그럽고 인내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온 모든 복과 은혜가 우리 자신의 실력이나 노력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깊은 감사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부족함을 뛰어넘는 사랑과 배려를 베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관대하게, 때로는 모른 척 넘어가주며,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품어주는 넉넉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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