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5장

성경
신명기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안전

신명기 25장

가족을 향한 사랑과 보호의 마음

누군가가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특히 어린 자녀들에게 해를 가하려 한다면 우리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소중한 가족들을 지켜낼 것입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법적 절차조차 기다리지 않고 물리적인 힘을 행사해서라도 상대방을 제압하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가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반드시 내가 지켜야 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고 완전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사랑하십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손수 만드신 피조물들을 극진히, 특별히 아끼시고 사랑하십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사람을, 특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백성들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은 결코 가만히 지켜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원수를 갚아주시고 반드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 보호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아말렉의 비겁하고 교활한 공격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던 아말렉 족속을 절대 그냥 두지 말라고 엄히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신 25:17)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17장을 살펴보면 아말렉 족속들이 출애굽 여정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광야길을 걸으며 르비딤 광야에 이르렀을 때, 아말렉 족속들이 갑작스럽고 강력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무장하지 않은 평범한 민간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 중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어린아이들, 그리고 수많은 여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장정은 60만 명이었지만, 전체 인구 약 200만 명 중 나머지는 모두 전투 능력이 없는 무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은 바로 이런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을 향해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당시 80세가 넘은 노인이었던 모세는 젊은 여호수아를 전투의 지휘관으로 세우고, 자신은 아론과 홀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할 때는 이스라엘이 이기고, 팔이 아파 손을 내릴 때는 이스라엘이 밀리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를 본 아론과 홀이 양옆에서 모세의 팔을 붙들어 아말렉을 완전히 물리칠 때까지 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말렉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스라엘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장차 아말렉을 완전히 심판하겠다고 엄중히 선언하셨습니다. 이미 승리를 주셨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아말렉을 치라고 명령하신 것일까요?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신 25:18)

두 가지 심각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의 비겁함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대적한 교만함이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여 지쳤을 때 뒤에 떨어진 가장 약한 자들을 노렸다는 점입니다. 이는 극도로 비겁한 행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규모 진영을 이루어 행진할 때, 자연스럽게 뒤처지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어린아이들, 그리고 사막의 혹독한 여정에 지친 여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아말렉은 정면에서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고 정정당당한 전투를 벌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뒤로 돌아가서 가장 연약하고 무력한 자들과 그들을 보호하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기습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비겁하고 치사한 행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들은 참으로 비열한 족속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아말렉의 교만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두 번째 죄는 이들이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멸시한 것입니다. 아말렉 백성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200만 명이나 되는 대규모로 광야길에 나와 있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수백 년간 종살이하며 고통당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과 함께 하셔서 바로 왕에게 열 가지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고, 홍해를 갈라 마른 땅처럼 건너가게 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말렉은 감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공격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모독하고 모욕하는 극악무도한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친히 아끼시고 보호하시는 당신의 소중한 백성들을 공격하는 것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고 보실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 아말렉 족속을 반드시 기억하고 완전히 진멸하라고 엄중히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 25:19)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 자체를 완전히 지워버리라', 즉 그들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너는 잊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시며 다시 한번 엄중히 당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철저하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그 누구에게도 공격받고 괴롭힘당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완전한 안전

우리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고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신 것과 똑같이 우리를 친히 돌보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은 곧 참된 안전함을 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하나님 안에서 살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사울 왕의 추격을 받아 광야를 전전하며 유랑해야 했지만, 그 어떤 위험 속에서도 안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확신 있게 고백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조차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며 위로해 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면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아무리 견고한 성을 쌓고 살아도, 아무리 강력한 군대의 보호를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끊임없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권세가 아무리 강력해도,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정체성은 바로 불안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이는 얼마나 피곤하고 고단한 일입니까? 아무리 자신의 힘이 강하고 권력이 막강해도, 자기 스스로는 자신 하나의 목숨과 건강조차 지킬 수가 없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고 돌봐주시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알아보는 영적 지혜

또한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지키시고 돌보시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절대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셔서 그들을 이집트의 종 되었던 땅에서 친히 건져내셨습니다. 그런데 아말렉이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감히 공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일 때문에 아말렉을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누구인지를 분별하고 알아볼 수 있는 탁월한 영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요셉은 분명히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집에서는 그를 어떻게 대우했습니까?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거짓 누명을 씌웠고, 보디발은 그 말만 듣고 요셉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사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하늘이 보내준 귀한 복덩어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아끼시고 사랑하신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보면서도, 자신의 집에 굴러들어온 이 놀라운 복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반면 요나단은 다윗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가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요나단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아버지 사울의 뒤를 이어 당연히 왕이 될 수 있는 왕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왕위에 대한 개인적 욕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다윗에게 자신의 깊은 애정과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비록 요나단은 전쟁터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다윗은 그 소중한 사랑을 평생 기억하며 요나단의 아들인 다리 저는 므비보셋을 왕족처럼 극진히 대우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우리가 주의 깊게 지켜보고 그들을 소중히 돌보며 그들과 함께 동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덕분에 우리까지도 함께 돌보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영적 지혜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풍성히 허락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안전의 근원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과 권세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해도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진정한 안전은 결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거할 때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두려움 없이 담대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친히 지키시고 안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분별하는 영적 안목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요나단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자를 즉시 알아보고 그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나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아말렉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괴롭히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위를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해치고 괴롭히는 자들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엄중히 심판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큰 위로와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하여 참된 평안과 안전을 온전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자들을 분별하여 알아보고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동행을 나누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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