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신명기 30장
21그램의 실험
1907년 3월, 한 의학자의 특별한 실험이 뉴욕타임스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맥두걸 박사는 인간 영혼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자 독창적인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사망 직전과 직후의 몸무게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그 차이를 분석한 것입니다.
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사망 후 평균 21그램의 체중 감소가 나타났습니다. 박사는 이것이 바로 영혼의 무게라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이 발표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영혼의 존재가 확실한 믿음의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는 창세기의 기록이 우리에게는 충분한 증거였습니다.
태초에 창조된 영혼은 맑고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침입하면서 영혼은 더럽혀졌고, 본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영혼이 다시 제 기능을 회복하려면 회개와 거듭남이 필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혼이 정결해지고 거듭남으로써 비로소 본래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네페쉬'라 불리는 영혼은 하나님의 호흡을 의미합니다. 이 영혼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레브'라 불리는 마음은 영혼의 지배를 받는 중요한 영역입니다.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신 30:6)
신명기는 모세의 대설교입니다. 이제 모든 설교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설교자 모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위대한 지도자요, 더 이상 검증이 필요 없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설교의 내용 역시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주시는 말씀이므로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핵심은 이 말씀을 듣는 청중들에게 있습니다. 출애굽 2세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은 모세의 말씀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잘 지켜 행하면 복이 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저주와 멸망이 따를 것입니다. 이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사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모세는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을 받는 마음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마음의 할례와 생명이 직결되어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육체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할례는 그들이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언약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할례는 살을 끊어내고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의 진정한 의미는 살을 자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변화에 있습니다. 죄를 끊어내고 결단하여 삶이 변화되는 것이 할례의 참된 목적입니다.
문제는 육체의 할례를 받고 피까지 흘렸지만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삶의 모습이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마음으로부터 끊어내고 결단하며,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비로소 삶이 변하고 행동이 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를 통해 주신 모든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의 할례가 필요합니다.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신 30:11)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핑계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변명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너무 어렵습니다. 연약한 인간인 저 같은 사람이 지키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말씀은 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상적인 것 같아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핑계는 더욱 구체적이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것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것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신 30:12-13)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 꼭대기에 있고 바다 건너편에 있어서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니 우리는 도저히 행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지속적인 변명이었습니다. 자신들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것이 단순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 30:14)
마음의 할례를 받고 나면 말씀이 우리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서 충분히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마음의 할례를 받아 결단하며, 끊어낼 것과 정리할 것을 분명히 한다면 행하지 못할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핑계를 대는 것은 결국 행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강팍해지고 좁아져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의지 자체가 없어진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우리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자리에 나온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마음의 할례가 참된 변화의 출발점입니다. 육체의 할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부터 끊어내고 결단하며 회개해야 진정한 삶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의 할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거나 멀리 있다며 핑계를 대서는 안 됩니다. 말씀은 우리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서 충분히 행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말씀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자세에 있습니다.
셋째, 기도는 마음을 성찰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서 할례받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끊어내고 정리하며 해결해야 할 영역이 어디인지를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음에서 끊어낼 것은 과감하게 끊어내고 단절할 것은 분명히 단절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복받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