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3장

성경
신명기

행복한 사람

신명기 33장

평생의 통찰

학문의 한 분야에 평생을 헌신한 학자는 사회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오랜 세월 그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논문을 저술하고 학문에 매진한 분이 보유한 유형무형의 자산은 실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귀중함을 지닙니다.

젊은 학자들이 기존 가설을 과감히 반박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열정과 패기를 보인다면, 평생을 연구에 바친 노학자들은 그 분야를 꿰뚫어 보는 탁월한 혜안과 지혜, 그리고 깊은 통찰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 분이 대학에서 마지막 강의를 한다면, 그 강의실은 평생의 학문적 결정체를 듣고자 하는 수많은 학생들로 가득 찰 것입니다.

오늘 모세가 바로 그런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세는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특히 마지막 40년간은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을 받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였습니다. 이제 그가 하나님 나라로 떠나기 직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모아놓고 마지막 축복의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이 기도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자신들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 자리가 모세의 마지막 순간임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숙연한 심정으로 모세의 축복 기도를 받았겠습니까? 이제 모세의 음성을 더 이상 이 땅에서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한마디 한마디를 절절한 마음으로 새겨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모세는 자신이 평생 경험한 하나님을 단 한마디로 정의합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아래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신 33: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신다'고 선언합니다. 모세가 평생 하나님을 섬기며 체험한 그 하나님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바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정확하고 본질적인 정의는 없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고백이 얼마나 진실한지 알 수 있습니다. 43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10가지 재앙으로 완강한 바로의 마음을 꺾으셨고, 홍해를 가르사 길을 만드셨으며, 길 없는 광야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터지게 하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을 당신의 수중에 두시고 한시도 놓지 않으시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셨는가"를 돌아보며 "하나님은 사랑이셨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참된 신앙의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으로 고백하지 못한다면, 마음 한편에 원망과 불평이 자리 잡고 있다면, 우리는 무언가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살아온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일들을 찾아보라면, 조금만 돌이켜봐도 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은혜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손 안에 두셨구나" 하는 고백이 우리 입술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레위의 특별한 사명

이제 모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향해 각 지파에 적합한 축복의 기도를 전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주목할 것은 레위 지파를 향한 기도입니다. 레위를 위한 기도는 단순한 축복이라기보다는 가나안 정착 후 그들이 감당해야 할 중대한 사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빔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신 33:8)

제사장의 판결 흉패에 넣어두는 우림과 둠빔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거룩한 도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재판이나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사용되는 것으로, 레위 지파는 경건함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신 33:10)

가르치는 일과 제사를 드리는 일, 곧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영적 교육과 예배를 책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레위지파의 삼중 사명은 재판과 교육, 그리고 예배였습니다. 가나안 정착 후 열두 지파 가운데서 이 중요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라는 당부를 다시 한 번 강조하신 것입니다.

다른 지파들에게는 축복을 선포하시면서도 레위 지파에게만 사명을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나안에 정착하면 지상의 왕이 없는 신정국가로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이 핵심적 역할을 감당할 자들이 바로 레위지파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가나안 정착 후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다스리고 인도해야 한다는 진리를 깊이 각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처소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신 33:26)

하나님을 사랑으로 정의한 모세는 이제 그 사랑의 하나님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당신의 백성을 위해 움직이고 계시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궁창에서 당신의 위엄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시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전합니다. 가나안 정착 후에도 그 땅 자체보다는 하나님을 진정한 처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신 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희들의 처소가 된다'는 이 선언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가슴이 부풀어 있었습니다. 모세는 떠나지만 자신들은 곧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과 유랑이 끝나며 가나안이 영원한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역설적인 진리를 선포합니다. 가나안 땅이 그들의 궁극적 처소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 중 하나일 뿐입니다. 만약 가나안 땅 자체를 최종 목적지로 여긴다면, 하나님을 떠나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공허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원하던 것을 모두 얻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가나안 정착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경고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어떤 지위나 성취가 궁극 목표가 되면, 하나님은 그것을 얻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물질적 성공이 목적이 되면 하나님은 돈을 벌게 해주는 수단이 될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는 하나님을 가차 없이 버리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위험을 경고하며 "여호와가 너의 처소"라고 선언합니다. 광야에 있든 가나안에 있든,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든 하나님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을 때 비로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영원한 처소로 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비결입니다.

참된 복락

모세가 이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축복의 기도는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임을 확신시키는 선포로 마무리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 선언이야말로 모세의 진심 어린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구원해 주셨고, 광야 40년의 여정을 친히 인도해 주셨으며,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영원한 처소가 되어 주시니, 이보다 더 행복한 존재들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만약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 다음 질문은 "그 행복의 근원이 무엇인가?"입니다. 물질적 풍요 때문인가? 자녀들의 성공 때문인가? 건강한 몸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인가?

그러나 참된 행복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되어 주셨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천국 시민의 신분을 보장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행복에도 층차가 있습니다. 세상적 성취에 기반한 저차원적 행복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고차원적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참된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인지, 그리고 그 행복의 근원과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며 하나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모세가 평생의 신앙 여정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님은 사랑이셨다"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모든 일들이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우리의 영원한 처소로 삼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이나 우리가 추구하는 그 어떤 목표도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자체가 우리의 안식처요 거할 곳이 되어야 합니다. 환경과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진정한 평안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 참된 행복의 근원을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그 행복의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물질적 성취나 외적 조건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의 원천입니다. 세상적 행복과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 행복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하나님을 우리의 영원한 처소로 삼으며, 하나님 안에서 참된 행복과 만족을 깊이 체험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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