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의 죽음
신명기 34장
직선적 역사관
기독교의 역사관은 명확한 직선적 구조를 갖습니다. 창조로 시작하여 종말로 귀결되며, 그 사이에 인간의 흥망성쇠와 역사의 굴곡이 펼쳐집니다. 창조와 종말은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을 결정하시고 시작하셨으며, 창조의 절대적 주체가 되셨습니다. 종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말의 시와 때는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하셨으니, 이는 인간과 의논하실 사안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친히 주도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창조와 종말 사이에 놓인 인간의 역사는 과연 인간이 주도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것 또한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끌어져 간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를 인간이 주도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인간사의 배후에서 진정한 주체가 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이에 반해 불교의 역사관은 순환론적 구조를 가집니다. 윤회 사상이 그 핵심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업의 수레바퀴 가운데 놓이게 되고, 결국 인간도 세상도 역사도 끊임없이 순환하는 윤회의 고리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덕을 쌓고 선행을 행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사고체계에서는 하나님의 개입이나 은혜의 여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의 노력과 열심, 선행의 축적을 통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그들의 세계관입니다.
인생에 투영된 직선적 역사관
기독교적 역사관을 개별 인간의 삶에 적용해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직선상에 놓인 인간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펼쳐지는 인생이 있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일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창조하시고 태어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보기에는 내가 주도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세한 순간마다 이끄시고 인도하시며 주도해 오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죽음 역시 동일합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이는 교만 중의 교만이요, 가장 무서운 악행이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호흡을 주신 분도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마지막은 온전히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마지막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평생 동안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았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모세의 120년 생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마지막 순간, 그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세는 어떤 인물입니까? 그는 120세의 생애를 마쳤는데, 그의 인생은 정확히 40년씩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 40년은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이집트 바로의 딸인 공주의 양아들로 궁중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본래 노예였던 이스라엘 레위 지파의 평범한 아들로 태어나 나일강에 버려질 위기에 처했지만,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하심으로 바로의 궁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위 계승 서열에 포함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이집트인을 살해한 후 광야로 도피하게 됩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불행한 도주였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광야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결혼하고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며 40년간 훈련받는 시간을 갖습니다.
80세에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르십니다. 마지막 40년은 그에게 가장 위대하고 의미 있는 시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여 광야 40년의 대장정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생애 마지막에 그가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가나안 땅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허락하십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신 34:1-3)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것은 그가 평생 꿈꾸어온 가나안 땅 전체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엄한 광경을 보여주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한계를 선언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신 34:4)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우리 인간의 감정으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매우 냉정하게 느껴집니다. 모세가 자신의 혈기를 절제하지 못한 과오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간 하나님과 맺어온 깊은 관계와 그의 헌신적 수고를 생각할 때, 마지막 순간까지도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을 인간적으로는 매정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한 순종의 죽음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이 엄중한 선언에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으니라" (신 34:5)
"말씀대로 산다"거나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표현은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며 우리도 익숙하게 들어온 말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죽었다"는 표현은 모세에게만 사용된 매우 특별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깊은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한계에 대한 겸손한 인정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다"는 이 말씀의 첫 번째 의미는 모세와 같은 위대한 인물도 분명한 한계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이었고 역사상 유례없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모세 오경을 기록한 사람이며,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를 저술할 때 하나님과 직접 대면했던 분입니다.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 모세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친히 돌판에 새기신 십계명 두 돌판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증거하시기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말씀하셨던 탁월한 인물입니다.
그의 중보 기도의 능력은 또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했을 때, 금송아지 사건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정탐꾼 사건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이토록 위대했던 모세, 이처럼 찬란한 영적 이력을 가진 모세조차도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출애굽 전체 과정을 보면 이집트 탈출부터 모압 평지에 이르는 것이 전반전이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후반전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위대했던 모세도 출애굽 전체 여정에서 전반전, 즉 절반만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모세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데려가시고 여호수아를 세워 후반전을 이끌어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근본적 한계입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모세도 출애굽의 절반만을 수행했는데, 그 많은 중보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기도를 응답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마지막 소원인 가나안 입성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한계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내가 가진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 또한 믿음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 기도하고 수고하고 몸부림쳐도 안 되는 것에 대해 "여기까지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구나" 하고 인정하는 것도 필요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추진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집착한다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교만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실 때 그 뜻을 분명히 깨닫고 멈출 수 있는 것 또한 참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둘째, 더 나은 처소로의 인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다"는 이 말씀이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가나안 땅보다 훨씬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땅이 아무리 좋다 한들 천국보다 더 나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마지막 당부에서 "가나안이 너희의 처소가 아니라 여호와가 너희의 처소가 될 것이다. 여호와가 너희의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말로 하나님을 자신의 처소로 삼고 하나님을 영원한 거처로 삼아 하나님 품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가나안 땅 정복의 지도자로 세우지 않으시고 이 지점에서 데려가신 것은 모세를 지극히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네가 할 만큼 다 했고 충분히 수고했으니, 이제 그 수고를 그치고 내게로 오라.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은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너는 정말 찬란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하고 좋은 천국에 들어오라"고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각별히 사랑하셔서 가나안보다 훨씬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고 믿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의 거처가 될 것이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세야말로 하나님을 그의 처소 삼고 하나님을 그의 거처 삼아서 하나님 안에 들어가셨습니다.
사실 모세를 가나안 땅을 이끌어가고 정복하는 지도자로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시고 그를 여기서 데려가신 것은 지극히 모세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네가 할 만큼 했고 수고했으니 이제는 그 수고를 그치고 오시라.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을 하는 것은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너는 정말 찬란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고 좋은 천국에 들어오라" 하신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가나안보다 훨씬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고 믿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숨겨진 무덤
"백부월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신 34:6)
분명히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모압 평지 산꼭대기에서 죽었는데 그의 무덤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어디에 묻혔는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만약에 그의 무덤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면 그의 무덤은 우상 숭배지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모세의 무덤을 얼마나 많이 찾아왔겠습니까? 도굴꾼들은 모세의 무덤을 도굴하고 그 뼈를 가져다가 마치 신성한 것처럼 그 뼈를 만지면 만병통치약을 얻은 것처럼 그 뼈는 비싼 값에 팔리기도 했을 것이고, 또한 그가 가진 부장품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가의 가짜로도 유통되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종교성이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의 연약함과 종교성을 아시는 바 모세의 무덤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의 시체조차 찾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사람들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생각하고 그의 시체를 찾기 위해서 백방으로 뒤졌지만 그가 떨어진 곳 그의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은 그들의 무덤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빈무덤 아닙니까? 예수님도 무덤이 없고 예수님도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땅에서 모세의 흔적 자체를 없애버렸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도 한계가 있음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위대한 모세조차도 출애굽의 절반만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기도하고 수고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을 때 "여기까지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구나" 인정하는 것도 필요한 믿음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 좋은 곳으로의 인도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가나안 땅이 아닌 천국으로 인도하신 것은 그를 더욱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이 땅의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무덤을 숨기신 것은 우상 숭배를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우상이 될 수 없고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의 죽음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해야 할지를 기억하고 깨닫고, 모세처럼 위대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하나님 섭리대로 우리 인생을 마무리하기를 소망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