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삼가라
신명기 4장
인간관계 성공의 비결
사람들 중에는 인간관계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진심으로 소통하고, 그 관계가 깊어지며 오래도록 지속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만나는 사람마다 갈등이 생기고,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좀 다를 것 같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관계가 단절되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성공적인 인간관계의 핵심은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관찰하면 그분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답은 간단합니다. 그분이 좋아하는 것은 함께 해드리고, 싫어하는 것은 피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계속하고, 좋아하는 것은 외면하면서 어떻게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겠습니까?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함께 걸어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간관계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중심적이며 동시에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관점에 매몰되면 상대방의 마음과 필요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평생 진정한 동반자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동일한 원리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도 이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과 미워하시는 것, 그리고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금하신 것,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절대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요 끝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사건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진솔한 회고록이자 동시에 그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요단강 동편 모압평지에서, 요단강 하나만 건너면 약속의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출애굽 2세대들을 대상으로 "이제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전한 것입니다.
바알브올 사건이 주는 경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서 멸망시키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아니한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신 4:2-4)
모세는 바알브올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전합니다. 이 사건은 민수기 25장에 상세히 기록된 참혹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여정을 할 때는 항상 하나님의 구름기둥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구름기둥이 멈추면 그들도 멈추고, 움직이면 그들도 함께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5장에서는 구름기둥이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싯딤이라는 곳에서 머물러 버렸습니다. 이는 모압 왕 발락이 치밀하게 준비한 미인계에 말려든 것입니다. 모압 왕 발락은 먼저 발람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이번에는 더욱 교묘한 미인계를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의 유혹에 빠져 음행의 죄를 범했고, 더 나아가 우상숭배라는 치명적인 죄까지 저질렀습니다. 바알브올이라는 우상에게 경배하고 숭배하며 우상을 섬기는 가증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시어 전염병을 보내셨고, 무려 2만 4천 명이 죽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모세는 이 뼈아픈 사건을 출애굽 2세대들에게 생생하게 회고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고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이 죄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된다고 엄중히 경고하신 것입니다.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호렙산, 즉 시내산에서 십계명의 율법을 주실 때도 의도적으로 형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신 4:12-13)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시어 십계명을 주실 때의 장면은 참으로 경외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음성으로만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뿐, 어떤 형상으로도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은 모두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명령입니다.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엄중히 명령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기념하고 예배하려는 선한 목적으로 형상을 만드는 것조차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금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다시 한번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여호와께서 호렙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신 4:15)
"삼가라"는 히브리어 "샤마르"로서 "지키다", "보호하다", "주의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형상을 보여주지 않은 것을 깊이 기억하고 철저히 지켜라. 이것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주는 절대적인 명령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말씀의 종교이자 동시에 듣는 종교입니다. 우리에게는 듣는 것이 보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시각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먼저 보고 나서 믿겠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영적인 문제가 시작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죄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뱀의 교묘한 유혹이 있었고, 하와가 그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기에 아름다우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보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아름답다"는 그 시각적 판단이 바로 문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는데, 하와는 그 중요한 말씀은 귀담아듣지 않고 오히려 눈으로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깊이 삼가라"고 명령하신 이 귀한 말씀을 우리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며 살고 있을까요? 듣는 것이 보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반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소중한 말씀을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깊은 성찰과 함께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바알브올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죄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무려 2만 4천 명이 죽는 참혹한 징계가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음성으로만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셋째,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듣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봐야 믿겠다"고 말하지만, 이는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범했던 것과 동일한 영적 실수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깊이 삼가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을 마음에 새기시고,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