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너에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더라
신명기 8장
해피엔딩 새드엔딩
영화는 크게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으로 구분됩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단 한 사람도 다치거나 죽지 않고 모든 갈등이 해소되며 모두가 행복하게 끝나는 해피엔딩이 있는 반면에, 주인공이 죽고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열린 결말로 끝나는 새드엔딩의 영화가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새드엔딩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피엔딩의 영화를 좋아할 것입니다. 몰입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공이 죽어버리고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그냥 끝나버린다면,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본 관객들을 허탈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이야말로 최고의 해피엔딩 이야기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매를 맞으시며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삼일 만에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자신이 부활하셨음을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여러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확증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사 영광 중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해피엔딩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주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우리 인생도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결국 마지막에는 영광스러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입니다.
광야 사십 년의 의미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십 년 광야 여정에 대해 그 궁극적인 목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너희에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더라."
사실 광야길을 걸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이를 복이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사막이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도 사방이 사막입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막막한 여정을 어떻게 복이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결국 너희에게 복을 주려 함이었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이것이 복이 되는지, 어떻게 광야 사십 년 여정이 그들에게 복인지를 하나님께서 분명히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네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아니하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 8:2)
하나님의 겸손 훈련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출애굽할 때는 부푼 희망을 품고 나왔습니다. 십 가지 재앙이 끝나고 홍해를 가르시어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실 때만 하더라도, 이제 우리에게는 오직 승리만 있을 것이라는 높은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시작된 광야 여정은 그들에게 연속된 고난이었습니다. 사십 년 동안 계속된 광야 생활에서 출애굽 제일 세대는 가데스바니아 사건으로 인해 광야에서 모두 쓰러져 죽어갔고, 이 제이 세대는 태어나서 눈을 뜨니 광야였습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광야가 아닌 세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복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광야 세월을 통해서 "너를 낮추시며 시험하사 결국 말씀에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십니다.
"낮추시다"라는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십 년 광야 여정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목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십 년 광야 여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단 하나의 목표였습니다.
인간 교만의 뿌리와 치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교만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아담의 원죄를 유전받아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범죄했을 때, 그 죄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와가 이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먹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려는 교만이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인간의 원죄입니다.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이 교만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교만한 본성을 치료하시기 위해 사십 년 광야 여정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광야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하나님께서 이 광야 경험을 통해 나의 교만을 치료하고 계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이 고난의 길을 통해 나의 교만한 본성을 완전히 도려내고 계시는구나 하고 깨달으신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큰 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은 자리에 둡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 년 여정에서 교만의 절정을 보여준 사건이 바로 가데스바니아 사건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직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만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지 않습니다. 지금도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단순히 지나간 옛 이야기 정도로만 여깁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능력의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직접 내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사랑하시어 광야길을 걷게 하시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살아있는 말씀임을 깨닫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광야를 속히 벗어나는 방법은 겸손을 되찾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광야를 빨리 끝내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온전히 따르고 순종하면 우리 인생의 광야 여정은 끝이 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일용할 양식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겸손을 훈련시키시면서 동시에 놀라운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업을 위해 일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만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시는 방법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매일 하늘에서 내려주셨고, 안식일에는 만나를 주지 않으시되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 분량의 만나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리 귀찮아도 매일 나가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만나를 거두어야만 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특별한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이시기 위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시는 것처럼,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늘의 영적 양식으로 그들의 영혼을 채우실 것이라는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인생에게도 하늘에서 궁극적인 복을 내려 주십니다. 사실 우리가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먹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매일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로 먹이고 살게 하신 것처럼, 오늘도 하늘에서 매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매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고 돌보시며 보호하셔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인도하셨습니다. 결국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 사십 년을 버텨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돌보셔서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참된 복이었습니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 8:16)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참된 복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결국 하나님께서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무엇보다 겸손한 것이 복입니다. 교만한 자는 결코 참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직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의 복을 얻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자신이 먹고 사는 모든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착각하는 자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참된 복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복을 잘 먹고 잘 살며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정말 궁극적이고 참된 복은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 근원과 생활의 모든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깨달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의 본질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 인생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복된 계획 안에 있습니다. 광야와 같은 고난의 시간도 결국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입니다. 지금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과정임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통해 우리의 교만을 치료하시고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광야의 경험을 통해 참된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복된 삶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셋째,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것이 참된 복입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주시는 은혜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입니다.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참된 복의 기준입니다.
오늘도 우리 인생이 복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고 고백하며, 복된 하루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