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0장

성경
이사야

진노의 막대기

이사야 10장

호랑이 선생님

요즘 학교에서는 체벌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훈육을 위한 체벌조차 이제는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각 학교마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리는 무서운 선생님이 한 분씩은 계셨습니다. 학생들은 그런 선생님을 가급적 피해 다녔습니다. 무서운 학생주임 선생님께 잘못 걸리면 벌을 서는 것은 물론이고 체벌까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선생님들이 이유 없이 학생들을 벌준 적은 없었습니다. 학칙을 어기거나 지각을 하거나 학교를 소란스럽게 할 때만 훈육하셨을 뿐, 자기 본분을 다하는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인자한 분들이셨습니다. 결국 학생이 학생다운 본분만 지키면 그 선생님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위기에 휩쓸려 남들이 무서워하니까 덩달아 피해 다니고 두려워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은 진리를 유다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을 경외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도구

기원전 8세기는 북이스라엘이 멸망 직전에 놓인 시기였습니다. 당시 최강 제국이었던 앗수르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앗수르의 최종 목표는 애굽이었지만,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반드시 거쳐야만 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앗수르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이 없었기에 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더욱이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동맹군까지 유다를 침략하니, 아하스 왕 시절 유다는 한시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이사야 10:5)

앗수르를 "내 진노의 막대기"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토록 두려워하던 앗수르 군대조차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선언입니다.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는 하나님의 분노를 실행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결국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는 앗수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속 권력을 볼 때 하나님의 주권을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권세자들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하고 악한 일을 자행할 수 있는지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허락 하에 존재하며,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고. 앗수르의 무서운 칼날도, 그들의 강력한 군사력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허용된 것입니다.

교만한 도구의 운명

그런데 문제는 앗수르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교만해졌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 (이사야 10:6-7)

하나님은 앗수르를 들어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려 하셨지만, 앗수르는 스스로를 신격화하며 모든 나라를 멸절시키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한계를 넘어 자신이 역사의 주인인 양 행세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속 권력이 빠지기 쉬운 치명적인 함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결국 당신의 백성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했기에 징계의 도구로 앗수르를 사용하셨지만, 그들이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히 멸절시키려 할 때, 하나님은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으십니다. 교만한 도구는 결국 부서지고 맙니다.

진짜 두려워할 대상

이제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사야 10:24)

앗수르나 애굽이 아무리 몽둥이를 들어 위협해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바로 그 몽둥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주변 열강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이키시려고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 진정으로 경외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가 회초리로 자녀를 훈육하실 때와 같습니다. 어리석은 자녀는 회초리를 숨기거나 부러뜨리려 하지만, 자신의 잘못된 행실은 고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초리를 없앤다고 아버지의 사랑의 훈육이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회초리는 얼마든지 다시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과 유다를 깨우치시려고 앗수르를 사용하시고, 때로는 애굽을 들어 징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앗수르를 두려워하고 애굽을 무서워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다. 왜 주변 열강을 두려워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면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면 주변 열강들이 그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다윗 시대를 보십시오. 당시에도 애굽은 최강국이었고 블레셋은 주변국들의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할 때, 애굽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지 못했고 블레셋도 잠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세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여러 강대국들이 있습니다. 언론은 복잡한 국제 정세와 외교 관계를 연일 보도하며 불안을 조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성도들이 신실한 믿음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늘 환경에 민감합니다.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지, 누가 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권세나 영향력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견고한 울타리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기원전 8세기 유다 백성들이 앗수르를 두려워했듯이, 우리도 여전히 눈에 보이는 권세와 환경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내가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너희가 진정으로 경외해야 할 대상은 오직 나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앗수르 같은 강대국도 결국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며,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진짜 경외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세상의 권세나 환경이 아니라, 그것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니 그 어떤 몽둥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도 이 확신을 품고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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