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의 뿌리에서
이사야 11장
미약한 시작
세상의 많은 일들이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흐지부지 끝나버립니다. 떠들썩한 출발과 화려한 선전 속에서 시작하지만, 과정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다툼이 생기면서 결국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립니다. 우리는 이를 용두사미라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은 정반대입니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나중은 창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부터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 것을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 굳이 연약한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통해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를 기억하십시오. 잔치 사흘째 되던 날, 포도주가 떨어지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일렀고, 하인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연회장은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것을 두었도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진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물 같은 우리 인생이 포도주로 변하고, 날이 갈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의 미약함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걸어가면 반드시 창대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 11:1)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일곱 아들을 다 불러모았지만 막내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게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만큼 하찮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들판의 목동, 가족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자였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오셨습니다. 화려한 왕궁이 아닌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곳도 멸시받던 갈릴리였고, 함께하신 이들도 어부와 세리 같은 변두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철저히 낮은 곳에서,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
그런데 이 연약한 싹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사야 11:2)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환점입니다.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일어난 일과 동일합니다. 겉으로는 기름을 붓는 의식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목동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고, 그때부터 공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께 하나님의 영이 충만히 임하신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이 임한 후의 반응입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이사야 11:3)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고,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땀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입니다.
권세와 능력
성령의 임재와 경외함의 삶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입니까?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이사야 11:4)
말씀의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세상을 심판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폭풍이 잠잠해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귀신이 쫓겨났던 것을 우리는 복음서에서 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놀라운 비전이 성취됩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9)
한 작은 싹으로 시작된 것이 결국 온 세상을 덮는 거대한 숲이 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이사야 11:10)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싹이 만민의 기치, 즉 모든 민족의 구원의 깃발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적용
오늘 우리도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다윗처럼, 베들레헴 마구간의 아기 예수님처럼 보잘것없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모습에서도, 우리가 하는 사역에서도 미약함이 보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워하며 기도와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사용하실 것입니다.
처음부터 큰일을 이루려고 인간적으로 애쓰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발버둥 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실 때 진정한 변화와 성장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백성은 무엇보다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하여 열방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하나님,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으로 만민의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작은 시작을 귀하게 여기시고 창대한 결실로 이끄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미약한 시작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가장 작은 것을 통해 가장 큰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둘째, 성령의 임재가 진정한 능력의 근원입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여호와의 영이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셋째,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와 예배가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 될 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난 작은 싹이 만민의 구원이 되신 것처럼, 오늘 우리의 작은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의 크신 역사로 열매 맺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