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우물에서
이사야 12장
미래를 당겨 감사하기
사람들은 대개 미래지향적이면서 동시에 과거지향적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동시에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과거에 심하게 매여 현재를 불안하게 살며, 심지어 미래까지 잠식당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덕목 중 하나가 감사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감사는 대부분 과거지향적입니다. 누군가 베푼 은혜에 대해, 이미 응답받은 기도에 대해 감사합니다. 일어난 일에 대한 감사가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직 구하지도 않은 것,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사를 미래적인 것으로 확장시킨 이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현재가 비천하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가장 능력 있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까지도 미리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미래적 감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서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이사야 12:1)
여기서 '그 날'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오는 날, 즉 메시아가 탄생하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온 인류가 기대하고 소망했던 구원자가 오시는 그 날에 우리는 감사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기원전 8세기와는 700년이나 떨어진 먼 미래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날을 기대하며 오늘을 감사하자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없는 현실
기원전 8세기 유다의 상황은 감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강대국 앗수르가 애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앗수르의 침략 야욕이 가시화되고 있었고, 북이스라엘을 집어삼키면 곧 남유다의 차례가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더욱 급박한 것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유다를 치러 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2차 침공이 임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가 가능하겠습니까?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감사가 가능하다고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그 날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의 약속 때문에 여전히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을 보십시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감사는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만 가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내셨지만, 과연 가나안 땅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이 불안감이 그들을 지배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가 사라진 이유도 동일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불안하고 염려스럽습니다. 내 미래도, 노후도, 자녀들의 앞날도 걱정됩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메시아의 도래를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믿는다면,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구원이신 하나님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사야 12:2)
이사야는 감사의 이유를 하나님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고 내가 신뢰할 만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눈앞의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도, 가장 강력한 위협인 앗수르 군대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다" -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그분을 신뢰할 때 항상 감사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진리가 흔들리고 망각될 때, 원망만 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의 경험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나도 물 위로 걷고 싶습니다"라고 했을 때, 주님은 단지 "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 말씀을 믿고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일으키는 풍랑을 보는 순간,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나의 구원이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이 주변으로 흩어지는 순간 실패가 찾아온 것입니다. 다행히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다시 건져 주셨습니다.
풍랑 치는 바다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도 "오라" 하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걸어간다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진리를 망각하고 주변의 풍랑과 두려움을 보는 순간, 우리는 곧 물속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구원의 우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사야 12:3)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기르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700년 후에 일어날 메시아의 오심을 지금 감사하며,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심을 믿는다면, 그 긴 간극을 어떻게 메워갈 것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매일같이 구원의 감격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실을 인지하고, 매 순간 구원받은 백성임을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나는 구원받은 백성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감격이 사라지는 순간, 예배의 은혜가 무뎌지는 순간, 우리의 구원의 확신도 점차 희미해집니다.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메시아를 보내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을 메워가는 일은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배생활을 잘하면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고 신뢰할 만한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주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말씀을 읽는 자리, 기도하는 자리, 예배드리는 자리에 자주 나오면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감격을 가지고 과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먼 미래까지 감사한다면, 우리는 오늘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미래를 당겨서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만 감사한다면, 미래와 현재는 감사할 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불안정하고 염려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지경을 넓혀가야 합니다. 과거에만 머물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미래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700년 후의 일을 가지고 오늘 감사하는 것처럼, 우리도 내일과 그 다음, 더 먼 미래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감사는 미래를 당겨서 하는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도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미리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이 확신이 흔들리지 않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가 가능합니다.
셋째, 구원의 우물에서 매일 물을 길어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 구원의 감격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의 입술은 항상 감사로 충만할 것입니다. 오늘도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