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끝, 바벨론
이사야 13장
돌이킴의 은혜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곧 돌이킴입니다. 돌이키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는 자들, 죄 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는 결국 마지막에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크고 두려운 심판을 피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돌이키면 회복되리라, 돌이키면 너를 용서하고 모든 것을 흰 눈같이 희게 해줄 것이다" -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타종교는 구원을 위해 선행과 수행을 말합니다.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고 자신을 수양하면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성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성경 전체가 증언하듯이,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속 타고난 원죄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가운데도 우리는 죄가 있고, 그 죄가 우리를 항상 악으로 끌고 가며 파멸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돌이키는 것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 죄인이 되어야, 그다음 선을 행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아서, 교만과 강포로 행하다가 결국 심판받는 한 나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제국
이사야서 1장부터 12장까지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말씀입니다. 13장부터 23장까지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예고입니다. 남유다를 둘러싼 열강들, 이방 민족과 나라들이 왜 심판받는지, 그들이 멸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심판을 예고하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비록 이방이라 하더라도, 믿지 않는 나라라 하더라도, 이 예고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회개하고 돌이키면 얼마든지 회복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첫 번째 열방에 대한 심판으로 바벨론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사야 선지자와 제국 바벨론은 시대가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이사야 13:1)
이사야 선지자는 기원전 740년부터 기원전 681년까지 예언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절은 앗수르가 제국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흔적만 있었습니다. 갈대아인의 나라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지, 제국으로 군림하거나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바벨론을 심판하겠다고 예고하십니다. 이것이 먼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온 세상 만물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메대가 올 것이다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충동하여 그들을 치게 하리니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애석하게 보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13:17-18)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이 멸망하는데, 그때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사야 선지자의 때에 이것을 정확하게 예고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역사를 이끌어가시며 심판주로 계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이사야 13:19)
바벨론이 소돔과 고모라같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과 불로 멸망당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것처럼, 그 정도로 철저한 심판이 바벨론에게 임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교만과 강포
그렇다면 아직 역사에 나타나지도 않은 바벨론이 왜 이렇게 멸망해야 합니까?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이사야 13:11)
두 가지 이유를 명확히 하셨습니다. 첫째는 교만이요, 둘째는 강포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교만이며, 그 교만이 낳는 또 하나의 괴물이 강포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자가 교만합니까? 능력 있는 자가 대체로 교만합니다. 바벨론은 강력한 제국이 됩니다.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킬 만큼 강력했고, 능력이 있었으며, 물질도 풍부했습니다. 능력이 바로 교만을 만들어내는 온상이 됩니다.
지식도 교만을 만들어냅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세상 지식과 지혜를 다 가졌다고 여기면 결국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 역시 교만을 만들어냅니다. 다른 사람보다 경험이 많다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내 몸으로 다 체험했다고 생각할 때 교만이 자라납니다.
바벨론은 그런 나라였습니다. 능력 있고, 지식 있고, 경험 있는 나라. 결국 그것이 교만을 낳았고, 그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만한 자의 특징은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이 알고 있다고, 많이 가지고 있다고, 경험이 많다고 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결국 심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심판받지 않으려면, 멸망을 피하려면 절대로 교만하지 말고 매 순간 기도로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교만한 자는 결국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이것이 강포로 나타납니다. 바벨론은 주변 나라들을 괴롭혔습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합니다. 느부갓네살 왕 시대에 그들은 주변 나라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습니다. 성전을 불태웠고,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으며, 심지어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뽑아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 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자리에 올라앉아서 강포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이렇게 강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훈
바벨론의 멸망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어떻게 하면 멸망하는지, 반대로 어떻게 하면 멸망을 피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교만하지 않아야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많이 알겠습니까? 하나님보다 경험이 많겠습니까? 하나님보다 가진 것이 많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바벨론이 멸망한 이유가 교만과 강포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인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엎드리면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미리 예고하시는 이유는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돌이킬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아직 역사에 등장하지도 않은 바벨론에게조차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한 영혼도 잃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회개와 돌이킴이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선행과 수행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둘째,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며 강포는 그 열매입니다. 능력과 지식과 경험이 교만을 낳고, 교만은 필연적으로 강포로 이어집니다.
셋째, 겸손한 기도가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매 순간 무릎 꿇고 엎드리는 것이 멸망을 피하는 지혜입니다.
오늘도 겸손히 기도하며 주변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여, 멸망이 아닌 생명과 은혜의 길을 걷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