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모압
이사야 15장
관계 속에 사는 인생
우리는 살면서 많은 관계들 가운데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바로 만들어지는 혈연관계가 있고, 지연과 학연을 비롯한 여러 사회적 관계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인간은 관계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관계 안에는 좋은 관계도 있고 나쁜 관계도 있으며, 애달픈 관계도 있고 복잡한 관계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많아지고, 많아질수록 그 관계는 복잡해집니다. 그러므로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보다 행복하고 풍성할 수도 있으며, 더 복잡하고 힘겨워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역시 우리 인간과 관계 안에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 안에 있는 자들도 있고, 하나님이 보실 때 나쁜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있으며, 하나님이 보실 때 가슴 아픈 손가락 같은 애통한 관계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압에 대한 경고와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모압을 애통하는 관계, 즉 아픈 손가락의 관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압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셨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주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 관계 안에 있는 자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이사야 15:1)
모압 알은 모압 북쪽에 있는 수도이고, 모압 기르는 모압 남쪽에 있는 견고한 요새입니다. 이 말씀은 모압의 북쪽부터 남쪽까지, 수도부터 견고한 요새까지 하나님이 철저하게 심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압을 이렇게 심판하려고 작정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압의 기원과 하나님의 마음
모압은 아브라함과 롯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이집트에 내려갔다가 온 이후에 그의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 이후로 롯은 항상 그 땅을 떠날 궁리만 하다가 기회가 되자 소돔 땅을 선택합니다. 당시 소돔 땅은 농사짓기 좋은 땅이었고 목축하기 좋은 땅이었으며, 부자로 살기에 아주 좋은 기회가 있을 만한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이 떠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셨고 아브라함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롯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사는 소돔 땅에 갔던 롯, 그 땅이 심판받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그곳에 심판이 내리는 날에 천사들을 보내서 롯과 그의 아내, 두 딸들을 겨우 탈출시켜 주십니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그 땅을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고, 두 딸들과 롯은 소알 성에 머물게 됩니다.
이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이 살던 삶의 터전은 불타고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롯의 두 딸들이 자기들끼리 공모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도리를 따라 아버지를 통해서 자손을 낳자"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아버지와 동침합니다. 그래서 태어난 자녀들이 모압과 암몬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모압도 큰 민족을 이루고 암몬도 큰 민족을 이룹니다.
비록 죄의 씨앗이었지만 하나님은 모압을 멀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보실 때는 하나님이 롯을 아끼고 사랑하셨던 것만큼 모압도 암몬도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심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피난민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이르고 울며 루히트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으니" (이사야 15:5)
하나님은 모압을 긍휼히 여기셨고 불쌍히 여기셨으며, 늘 가슴 한편에 쓰리고 아픈 손가락으로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모압이 잘 살기를,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믿음 생활 잘 하기를 하나님은 항상 기대하고 바라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압은 하나님의 기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소망대로 살아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오래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사야 시절까지도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가슴 아프게 하고 자기 멋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관점이 모압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보시는 관점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두렵고 무서운 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 급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참으시며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노아 홍수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홍수를 내려서 모든 사람을 다 멸하셨다, 쓸어버리셨다, 이것만 생각하면 하나님은 매우 두렵고 무서운 분이며 때로는 잔인한 분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단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노아를 주시고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120년의 기간은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산 꼭대기에서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들 눈에 다 보였습니다. 왜 방주를 만드는지, 왜 그가 산꼭대기에서 계속해서 나무를 켜고 배를 만들어야만 하는지 하나님은 그들에게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회를 주셨고 기다려주셨건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심판을 향하여 멀리 가버립니다.
여리고성 전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한 번에 무너뜨리시고 그들을 진멸시킨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돌게 하시고 7일 동안 그들로 하여금 돌아올 기회,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사람들을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직전까지도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 땅에 왔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 그로부터 또 다시 2천 년이 지났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은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런데도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속히 임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압을 위하여 애통히 여기고 부르짖었지만 결국 그들이 돌아오지 않으니 심판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못했는데, 제대로 하나님 말씀 붙들고 지켜내지 못했는데,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려주시고 내 인생을 울타리로 둘러주시고 견고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때 우리는 빠르게 정신 차리고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 방종의 구실로 삼는다면,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냥 두고 보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하면, 심판이 언제 어떤 식으로 임할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심판은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이 심판이 만약 일어날 때는 전면적이고 파괴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모압 알에서부터 모압 기르에 이르기까지, 수도에서부터 요새에 이르기까지, 북쪽에서부터 남쪽에 이르기까지, 그 심판을 막을 수 있는 자는 누구도 없습니다. 홍수처럼 다 쓸어버리는 심판, 그 심판이 임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잊은 민족
"니므림의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 (이사야 15:6-7)
모압이 심판당하는 날 그들이 피난 가는 행렬을 묘사합니다. 얻은 재물과 쌓았던 물질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넌다고 말씀하십니다. 피난갑니다.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빨리 도망가서 이 재앙을 피해야 하는데,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가는 피난 행렬에서 그들은 지금까지 모았던 물질과 재물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이고 지고 들고 그 시내를 건너가는 모습은 그 옛날 롯의 아내를 떠오르게 합니다.
롯의 아내가 소돔성이 유황과 불비로 망할 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내가 평생 동안 이곳에서 모았던 재산, 내가 누리고 살았던 물질이 불타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다가 결국 망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그의 조상과 똑같습니다. 심판당하는 그날 역시 물질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갑니다. 멀리 갈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재앙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 물질과 함께 그 시내를 건너기 전에 망해버릴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정말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은 그 조상의 실패로부터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조상 롯과 롯의 아내의 실패로부터 깨닫지 못한 모압 족속, 그들은 교훈을 붙들고 살지 못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저 흘러간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 과거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 가운데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나는 나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하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롯의 아내의 교훈은 그저 흘러간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아픈 손가락처럼 여기시며 오래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으셨듯이, 오늘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과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 사랑을 마음에 기억하고 간직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고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참으시고 기다려 주시는 놀라운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 귀한 사랑을 붙들고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속히 하나님 앞에 돌아서야 합니다.
셋째, 역사의 교훈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롯의 아내의 뒤돌아섬을 통해서 우리는 결코 뒤돌아서지 않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심판의 날에도 여전히 물질을 붙들고 있던 모압 족속들처럼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세상에 미련두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속히 피하는 지혜로운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