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라
이사야 16장
평소의 훈련이 위기를 결정한다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길을 가다가 갑자기 쓰러진 사람을 지나가는 시민이 구조하는 사례를 접합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런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해낸 사람들의 대부분이 경찰, 군인, 소방관, 의료업계 종사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 시민이라 할지라도 심폐소생술 훈련을 받았거나 구급 활동 경험이 있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평소에 훈련되어 있어야 급박한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런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당황하기만 합니다. 119 전화번호조차 생각나지 않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평소 훈련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힘든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겪으며, 예상치 못한 고난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인생의 위기가 찾아올 때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성전으로 향하는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신앙 훈련이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 생겨도 기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먼저 찾게 되는데, 이는 우리의 믿음생활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모압의 비극적 선택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압 백성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사야 13장부터 23장까지는 유다를 둘러싼 열국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통해 유다가 교훈을 얻기를 바라셨습니다. 주변 나라들의 멸망을 반면교사로 삼아 바른 길을 걷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특히 모압은 하나님께 아픈 손가락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롯과 그의 두 딸 사이에서 태어난 모압과 암몬,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애통하게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오래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만으로는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과 기다림에 응답하여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심판의 날에도 재산을 가지고 시내를 건너는, 롯의 아내와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이사야 16:1)
하나님께서는 모압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린 양을 가지고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기대한다면, 심판 중에라도 살 길을 찾는다면,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돌아오라는 초청이었습니다.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라도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오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이사야 16:2)
모압의 상태는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처럼 불쌍했습니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와야 하는데 오지 않으니 갈 곳을 잃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불쌍한 그들을 애통하게 여기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에 응답할 차례였습니다. 그 방법은 단 하나, 성전으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압은 끝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앙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은 찾아다니고 여러 방법을 모색하면서도, 정작 성전으로는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조상 롯과 그의 삼촌 아브라함이 믿었던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이사야 16:5)
다윗의 장막은 단순히 인간 다윗 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펼칠 정의와 공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정의와 공의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 "다윗의 장막에 피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성전으로 올라와야 합니다.
잘못된 눈물의 이유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이사야 16:7-8)
모압 백성들이 울고 통곡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건포도 떡 때문이었습니다. 포도나무가 말라서 통곡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해서 울어야 했는데, 오직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울었습니다. 철저히 현세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할 진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한 우리 자신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눈물이 단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라면, 그보다 한심한 눈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압 사람들은 통곡했지만 성전에서 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키는 회개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눈물은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흘리는 눈물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의 눈물이어야 합니다.
"모압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 (이사야 16:12)
모압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산당으로 갔고, 자기들의 성소에서 기도했습니다. 여전히 이방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애통히 여기시며, 아픈 손가락처럼 오래 참고 기다려주셨지만, 이토록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우상 앞에 무릎 꿇는다면 결국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첫째, 평소의 신앙 훈련이 위기의 순간을 결정합니다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님과 기도가 먼저 생각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살 길이 열렸다는 증거입니다. 기도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결코 막다른 골목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우리의 눈물이 올바른 이유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성전에서 우는 것입니다. 단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영혼의 문제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고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셋째, 위기의 때일수록 성전으로 향해야 합니다 모압의 실패는 우상의 산당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성전으로, 그리스도의 품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오는 백성을 하나님은 결코 망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믿음의 훈련을 계속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