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붙잡으라
이사야 18장
흔들리는 원칙과 타협하는 현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세우고 "이렇게 살겠다"고 뜻을 정합니다. 그런데 그 뜻을 끝까지 지켜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마 거의 없을지도 모릅니다. 초지일관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는 원칙과 기준을 세웁니다. "우리 가정은 자녀를 이렇게 키우겠다"고 나름의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 기준대로 양육하기 어려운 현실이 닥치면, 그 상황 앞에서 뜻을 잠시 보류하거나 접어버립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기업을 시작할 때 얼마나 원대한 뜻을 품겠습니까? 인사 관리는 이렇게, 재무 관리는 저렇게, 공정 관리는 이런 방식으로 하겠다는 기준과 원칙을 세웁니다. 그런데 운영 과정에서 복잡한 상황들이 발생합니다. 뜻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이 계속됩니다. 결국 "뜻은 있지만 지금 상황 때문에 잠시 접겠다"고 타협하게 됩니다.
우리 일상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세운 기준이기에 내가 접을 수도 있고 보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주신 원칙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멈추거나 보류하거나 접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원칙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살아가야 내가 너희를 책임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그 원칙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가 붙잡고 가야 합니다.
유다의 딜레마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정하신 원칙을 지켜달라고 부탁하시는 장면입니다. 기원전 8세기, 유다는 약소국이었습니다. 강대국들의 눈치만 살피는 처지였습니다. 다윗 시절의 왕성했던 부국, 솔로몬이 물려받았던 강대국의 영광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솔로몬 사후 나라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고, 힘을 잃은 나라는 주변 열강들의 침략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최강국 아시리아의 목표는 이집트였습니다. 서쪽으로 진군하여 이집트를 정복하려는데, 그 길목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있었습니다. 아시리아를 두려워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동맹을 맺고 유다에게도 동참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같으니 절대로 의지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만 붙들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주신 명확한 원칙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방 나라와 동맹을 맺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구스(지금의 에티오피아)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구스는 군사 대국으로 이집트를 정복하여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구스 역시 아시리아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아시리아가 이집트로 오는 길목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방패막이 되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구스가 남유다에게 동맹을 제안한 것입니다.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이사야 18:1-2)
구스의 사절단이 나일강에 배를 띄워 지중해를 거쳐 유다에 도착했습니다. 동맹을 제안하러 온 것입니다. 유다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은 분명했습니다. "이방과 동맹하지 말라. 하나님만 의지하라." 그런데 이미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 제안을 거절했고, 이제 구스와 이집트의 제안마저 거절하면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될 상황이었습니다.
조용히 감찰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우리가 매일 겪는 갈등과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원칙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기에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준이요 원칙입니다. 그런데 현실 상황이 그 원칙을 지키기 어렵게 만듭니다. 말씀을 붙잡고 살면 손해를 보고 어려움을 겪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원칙을 어기고 상황과 타협합니다. "하나님,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이 말씀을 붙잡을 상황이 아닙니다"라고 변명하며 현실과 타협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쌍풍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이사야 18:3-4)
하나님께서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기준과 원칙을 유다에게 전달하셨습니다. "이방과 동맹 맺지 말라"는 원칙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갈등하는 유다를 하나님은 당신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하고 계십니다.
이제 유다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상황을 선택하든지, 하나님의 기준을 선택하든지. 하나님의 기준을 선택하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어려움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시하신 기준을 선택했기 때문에, 조용히 감찰하시던 하나님이 직접 그들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반대로 그 기준을 무시하고 상황을 선택하면, 그때부터는 내가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합니다. 과연 구스와 이집트가,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유다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그들이 아시리아를 이길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원칙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율법을 두 가지로 정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십계명의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 사랑이고, 두 번째 돌판은 이웃 사랑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욕망을 가장 정확하게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합니다. 이웃보다도 당연히 나를 더 사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먼저이고, 그다음이 하나님이며, 그다음이 이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첫 번째요, 이웃이 두 번째요, 나는 세 번째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원칙은 하나님이 최고요, 그다음이 이웃이요, 그다음이 나 자신입니다. 우리가 이 원칙대로 살고 있습니까? 솔직히 이 기준대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내가 우선이 되고, 그다음에 하나님이 생각나며, 이웃은 여유가 있을 때만 돌아봅니다.
그러나 이 원칙대로 살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조용히 감찰하시며 지금도 우리 인생을 살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돌보실 것입니다. 한번 실천해 보십시오. 앞으로도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책임지시도록 하려면, 우리는 말씀의 기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운 기준은 바꿀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원칙은 우리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 원칙을 지킬 때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을 조용히 감찰하고 계십니다 갈등의 순간,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지켜보십니다. 말씀을 선택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고 책임지십니다.
셋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원칙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첫 번째로, 이웃을 두 번째로 두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삶의 원칙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과 타협하지 않고 말씀을 붙잡아 현실을 이겨내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