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도미노 현상
이사야 23장
연쇄반응의 원리
우리는 도미노 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조각들을 일렬로 세워두고 하나를 넘어뜨리면 연쇄적으로 모든 조각이 쓰러지는 놀이입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연쇄반응에 있습니다. 전체가 넘어지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기도 하고 입체적인 형상을 이루기도 하지만, 본질은 하나가 또 다른 하나에 영향을 주는 연쇄반응입니다. 하나의 조각이 다음 조각에 영향을 주지 못하면 도미노 게임은 실패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미노 현상은 게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회에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경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를 이루는 세 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입니다. 만약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그 영향은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기업에 종사하는 가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줍니다. 기업이 도산하면 가계 경제에 적신호가 켜지고 심각한 위기에 봉착합니다. 정부 역시 안전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기업과 가계로부터 세금을 받는데, 이 두 주체가 무너지면 세수가 급감하여 정부도 위기에 처합니다. 이런 일이 한두 기업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업이 동시에 직면한다면, 가계-기업-정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도미노처럼 무너져 국가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집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영향을 주고, 한 성도의 신앙이 주변 성도들의 믿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내 신앙을 잘 지키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만, 내가 무너지면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믿음도 함께 흔들릴 가능성이 큽니다.
두로와 시돈의 몰락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영적 도미노 현상을 보여줍니다. 두로와 시돈이 망하면 그 영향이 그들에게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돌아갈 곳도 없으며 이 소식이 기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 (이사야 23:1)
두로는 팔레스타인 서북쪽 끝에 있는 해안도시였습니다. 지중해와 연결되어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도시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산물을 스페인의 다시스로 수출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다시스 상인들이 배를 띄워 오던 중 기딤(현재의 키프로스)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두로가 황폐해졌다는 것입니다. 두로가 망했기 때문에 다시스 상인들이 아무리 배를 가져와도 실어갈 물건이 없게 된 것입니다. 두로가 망하면 다시스도 함께 망하는 구조였습니다.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주민들아 잠잠하라" (이사야 23:2)
시돈 상인들의 무역으로 먹고살던 해변 주민들에게 "잠잠하라", 즉 긴장하라는 경고입니다. 이제 너희에게도 비슷한 재앙이 닥칠 것이니 정신 차리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라는 말씀입니다.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송하여 두로의 수입이 되게 하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되었도다" (이사야 23:3)
시홀은 이집트의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 동쪽의 큰 도시였습니다. 나일강 삼각주에서 수확한 모든 곡식이 시홀로 모이고, 거기서 배에 실려 시돈과 두로로 운송되었습니다. 시돈과 두로는 이집트의 곡식과 팔레스타인의 산물을 모아 다시스로 수출했습니다. 해변 주민들은 이 무역의 이익으로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것이 중단되었습니다.
경제적 연쇄 붕괴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 (이사야 23:4)
시돈이 더 이상 산고를 겪지 못하고 청년과 처녀를 양육하지 못한다는 것은,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시돈이 더 이상 배를 띄울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시돈은 두로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로, 역시 해상무역으로 생존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두로와 시돈은 이세벨의 고향이며, 오래전부터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받으리로다" (이사야 23:5)
이집트가 고통받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일종의 무역 허브 역할을 했습니다. 이집트가 곡식을 공급하고, 두로가 그것을 받아 다시스로 보내며, 다시스는 이 곡식을 자국에 공급했습니다. 이제 이 공급망이 끊어지면서 다시스도, 이집트도 모두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해상무역으로 연결된 모든 나라가 함께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교만의 결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에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23:8-9)
결국 교만 때문입니다. 두로와 시돈이 극도로 교만해졌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게도, 다시스 사람들에게도 교만하게 굴었을 것입니다. 모든 무역이 그들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자 물질적 풍요가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교만한 나라를 심판하셨고, 그 결과 함께 연결되어 있던 모든 나라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13장부터 23장까지 유다를 둘러싼 열방에 대한 심판 예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심판받는 이유가 모두 교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겸손이 곧 살 길이라는 것을 이 말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내 신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넘어지면 여러 사람이 함께 넘어집니다. 반대로 내가 믿음을 굳게 지키면 나와 연결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둘째, 교만은 멸망의 시작입니다 두로와 시돈의 멸망 원인은 교만이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가 살아남을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영적 연결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면 주변 교회들도 은혜받고 함께 살아납니다. 한 나라의 믿음이 무너지면 연결된 수많은 영적 신경망이 함께 죽습니다. 우리는 국가와 교회,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며, 겸손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넘어지면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신앙으로 연결된 모든 사람이 함께 무너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믿음을 굳건히 지켜 하나님의 자랑이 되고 사랑받는 백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