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에 정하신 뜻
이사야 25장
변함없는 통치
한 세대 전만 해도 각 가정마다 가훈이 있었습니다. 학교에는 급훈이 있었고, 개인에게는 좌우명이 있었습니다. 가훈이 있는 가정은 그런 가풍을 지니게 되고, 급훈을 매일 보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 정신이 삶에 묻어났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약해서 한번 정한 뜻을 끝까지 관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지금은 가훈도, 급훈도, 개인의 좌우명도 희미해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입니까? 하나님은 뜻을 한번 세우시면 그 뜻을 변함없이 끝까지 관철시키시는 분입니다. 여기에 인간과 하나님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 안에서 사는 존재이기에 항상 급합니다. 지금 당장, 혹은 정해진 기간 안에 일을 이루어야 하기에 사람의 뜻은 손바닥 뒤집듯 바뀝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시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십니다. 뜻을 한번 정하시면 오랜 기간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때로는 일하시고, 때로는 기다리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실과 진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이사야 25:1)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옛적에 정하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옛적'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를 의미합니다. 시간이 있기 전, 공간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그 뜻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옛적에 정하신 뜻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실함이요, 또 하나는 진실함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로 태초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세상과 인간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창조와 보전의 성실
첫째로 하나님의 성실함은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책임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창조하신 분은 책임도 지십니다. 창조만 해놓고 던져두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보전하십니다. 창조와 보전은 분리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깊이 개입하시고, 시마다 때마다 자연만물을 운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을 지금도 다스리시고, 만드신 공간 안에서 주인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통치하고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고침받도록 기도하고 엎드려야 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구해야지 누구에게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라는 육체를 만드시고, 나라는 가정과 존재를 창조하셨다면 하나님께 책임지시도록 계속해서 부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계속 구하고 또 구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성실
둘째로 하나님의 성실함은 구원으로 나타납니다. 에덴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구원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갈아입어야 하는 가죽옷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예시였습니다.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구원을 이루어가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인류 역사의 구원의 물줄기를 바꾸신 하나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시고 700여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성실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초지일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주시고 그 직분에 합당한 사명을 주셨다면, 성실하게 그 직분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취미생활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성실하게 생명 다하는 날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는 먹고사는 일에는 성실하고, 돈 버는 일에는 부지런하며, 자기 오락과 유익에는 열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직분에 성실하지 않고 영혼 구원에 성실하지 않다면, 과연 그 사람을 성실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말하는 부지런함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성실함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거짓 없는 진실
하나님이 진실하시다는 것은 거짓말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속인 적이 있습니까? 노아에게 "사람의 날이 120년이 될 것이다. 내가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하셨고, 120년이 지나자 홍수 사건이 진실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내뱉은 말을 식언하지 않는 분입니다.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으면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고난당하고, 죽고, 부활하고, 승천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은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종말을 말씀하셨고, 심판을 말씀하셨으며,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진실하시다면 이 말씀도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어서 2천 년 동안 오지 않은 예수님이 어떻게 다시 오시겠는가, 이 세상은 그런 식으로 종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교만이요, 미련이요, 어리석음입니다. 도둑같이 세상의 종말이 이를 것입니다. 분명히 천국과 지옥은 있고, 분명히 이 세상의 마지막 종말이 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실함을 본받아 직분과 영혼 구원에 성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와 구원에 성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받은 직분과 사명에 끝까지 성실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진실함을 믿고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재림과 심판의 약속도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셋째, 초지일관하는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처럼, 우리도 변함없는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죄짓지 않고 진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초지일관의 정신, 성실함과 진실함을 양손에 붙잡고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